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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을 따라 북한강을 걷다 11] 신연나루 – 신연강 바람에 허리띠가 나부끼네

 현등협을 지나 석문에서 배를 멈추고 맥국을 떠올리면서 어리석은 통치자를 비판하다보니 시간이 지체됐다. 덕두원 입구를 지나 신연나루에 이르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다. 1820년의 일이다. 정약용은 맏형 정약현을 모시고 춘천으로 오는 중이다. 형의 둘째 아들인 학순(學淳)이 샘밭에 사는 경주 이씨 여자와 혼례를 올리게 되자, 평소 춘천 일대를 여행하고 싶었던 다산이 함께 춘천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신연나루에서 시를 짓지 않을 수 없다. ‘신연나루에서 두보의 길백도시에 화답하다[新淵渡和桔柏渡]’란 시다.
 
사랑스러워라 이 무릉도원의 물은 愛此仙源水
본디 금강산에서 나온 것인데 本出長安橋
평소 명산을 구경하고픈 소원을 夙昔名山願
늘그막에도 끝내 이루지 못했다가 到老竟蕭蕭
이번 길에야 다 구경하게 되니 今行可窮覽
허리띠가 멀리 바람에 나부끼네 衣帶遠飄颻

 
 길백도(桔柏渡)는 중국 땅 문주(文州)와 가릉(嘉陵)의 두 강물이 합류하는 곳이다. 화천에서 오는 강물과 인제에서 내려오는 소양강물이 합쳐지는 곳 바로 밑에 신연나루가 있는 것과 같다. 그는 늘 한강의 근원과 주변의 강에 대해서 알고 싶었는데 실제로 방문하게 됐다. 바람에 나부끼는 옷자락은 한껏 고양된 다산의 마음이다. 들뜬 마음으로 신연나루를 지나고 있었다.
다산은 두 번의 춘천여행을 마치고 《산수심원기》를 저술한다. 그 책의 앞 부분을 읽어본다.

 북한강의 물은 모두 뭇 산골짜기에서 나오니 이것이 산수(汕水)요, 남한강의 물은 모두 원습지(原隰地)에서 나오니 이것이 습수(隰水)다. 글자의 의미로 보아 아주 명확하여 혼동할 수 없는 사실이며, 몸소 답사하고 목격한 결과 전연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나는 춘천과 화천의 물이 산수(汕水)가 된다는 것을 단정 지었다. 근년에 재차 춘천에 들어가 옛날에 들은 말로 새로이 살핀 것을 징험하여 다음과 같이 심원기(尋源記)를 쓴다.

 다산에 의하면 북한강은 산수(汕水)고, 산수에 대한 자세한 보고서가 《산수심원기》다. 여행을 다녔다고 해서 유람만 한 줄 알았는데 여행이 끝날 때마다 책 한 권씩 출간했으니 먹고 놀기에 바쁜 우리네 유람에 대한 일침이다.

 신연강은 소양강과 북한강이 합쳐서 가평 쪽으로 흐르는 강이다. 신연강나루를 건넌 후 덕두원을 거쳐 석파령을 넘는 길은 서울과 춘천을 잇는 주요한 길이었다. 1939년에 신연교가 만들어지면서 쇠퇴했지만, 신연강나루는 춘천의 관문이 되어 번창하였다. 춘천으로 새로 온 관리를 신연나루에서 맞이하고 떠나는 관리를 이곳에서 보냈다. 보내고 맞이할 때 아전과 군사, 악공들이 모두 동원되어서 악기를 연주하였고 깃발은 하늘을 가릴 정도였다.

내 들으니 화천의 협곡은 吾聞狌首峽
여울이 더욱 위세를 부린다기에 灘瀨益宣驕
서운하게 중도에 길을 바꾸니 悵然中改路
후일의 기약은 바랄 수도 없고 後期不可要
처자식이 한가한 몸 구속을 하니 妻孥絆閒身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붉어지네 愧赧顔發潮

 집안의 혼사는 핑계고 북한강에 대한 연구가 첫째 목적이었다. 먼저 화천으로 향하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아 청평사로 갔다. 그러나 1823년에 기어코 화천으로 향했다.

9정

 “처자식이 내 몸을 구속하니 부끄럽다”고 한 다산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집안일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로이 학문에만 열중하고 싶다는 것이었을까? 가장으로 집안일을 처리하면서도 사소한 일에 얽매이는 자신이 부끄럽다고 실토한 까닭은 자존심 때문일까? 훗날 독자들에게 책잡힐 줄은 몰랐으리라.

권혁진 (강원한문고전연구소장)

권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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