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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_터_view] “사랑은 오직 실천, 말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줄 뿐”

천주교 춘천교구장 김운회(루카) 주교

11면, 김운회 주교

 춘천 교구장으로 착좌하신지 어느새 6년째를 맞이하셨습니다. 그 동안 교구 차원에서 계획하셨던 일도 많으실 테고 성과도 있었을 텐데요. 춘천에서의 생활은 어떠셨는지요.

 처음 왔을 때, 사목 표어를 ‘사랑으로 하나 되어’라고 했습니다. ‘뜻을 같이하고, 같은 사랑을 지니고, 같은 마음에 같은 생각을 이루어 우리의 기쁨을 완전하게 해주십사’하는 의미에서 정한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반목과 갈등이 과도합니다. 신앙공동체라는 교회 안에서도 빈부, 보수, 진보로 갈라져 있고, 나라는 남북으로 분단돼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거대한 삶의 실천을 통해 하나 되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런데 사랑은 그냥 말로 하는 게 아니에요.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요. 우리 신앙인들이 먼저 사랑함으로 살아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 실천 목표를 세워 가야 합니다. 교황님께서 금년을 ‘자비의 희년’으로 선포하면서 신자들에게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하고 용서하는 삶에 대해 강조하셨습니다. 저도 교회가 먼저, 그리고 사제가 먼저 사랑을 솔선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 성직자들과 회의를 해서 솔선을 위한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어요. ‘자비로운 사제는 행복합니다’ 하고. ‘우리 사제가 신자들에게 원하는 것을 먼저 솔선하자’는 것이지요. 3가지 사제단 실천운동을 하면서 늘 마음으로 새기자고 했습니다. 우리가 먼저 그렇게 사랑을 실천하며 살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종교인이 아무리 많아도, 신앙 안에서 말씀대로 사는 게 아니라 몸만 다니는 경우가 많아요. ‘완벽하지 않아도 사제들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신자들도 따르지 않겠는가. 작은 실천이라도 포기하지 말자. 우리에겐 그리스도를 향한 미래가 있으니까’라는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배려, 이해, 용서…
교회가 먼저, 사제가 먼저, 신앙인이 먼저!

 김운회 주교가 작은 액자를 건넨다. ‘자비로운 사제는 행복합니다’라는 큰 글씨 옆으로 ‘고해소를 사랑하자. 십일조로 자선을 베풀자. 친절과 소통의 삶을 살자’가 쓰여 있다. 사소하고 당연해 보이는 것들이지만, 외침만 있고 실천이 없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교님에게 그 사랑은 무엇이며 어떻게 실천되는 것일까.

 사랑은 배려지요.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한 발짝만 뒤로 물러서면 더 많은 것이 보입니다. 장기에서도 거리를 두고 훈수 두는 사람이 자기 장기를 두는 고수보다 더 묘한 수를 두지요. 그렇게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상대의 입장에서 보는 사람의 지혜가 있어요. 삶이라는 게 집착을 하게 되면 본질을 잃고 더 꼬입니다. 신앙적으로도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우리를 만들고 보니 좋더라 하셨지요. 누구에게나 하느님의 심상이 있다고 봐요. 열 가지 잘못한 사람에게도 한 가지 하느님의 모습이 있어요. 그 작은 하나를 찾아서 배려하고 관심을 가지면 미워하는 마음도 내려놔지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우리는 사람 안의 하느님을 보는 대신, 편협한 눈, 아집의 마음으로 재단하지요. 사랑은 ‘이런 거다’하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삶으로써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이의 이웃을, 나의 눈이 아니라 그의 입장에서 보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사랑의 실천입니다.

11면, 인터뷰2

시대의 어른,
고 김수환 추기경의 사랑 실천을 따르는 삶

 우리 안에서 신의 모습을 찾는다… 신문을 펼치면 우울한 기사들이 가득하고, 가까이 이웃하고도 다정히 인사를 나누지 않는 우리의 삶에도 신이 계실까. 문득 우리가 자기 안의 신은 들여다보지 않고, 타인의 모습만 비난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의 실천과 배려를 강조하는 김운회 주교의 얼굴은 온화하고 말투는 단호하다. 고 김수환 추기경님의 사랑 실천 모습과도 닮아있다.

 그분은 정말 큰 어른이셨어요. 우리가 젊은 혈기와 의협심에 당장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흥분하고 조급하게 뛰어들려고 하면 그분은 그냥 웃으시거나 기다리셨어요. 당장 목소리 높이는 것은 쉽지만 한 호흡 하고 멀리 봐야 큰 과오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나중에 돌이켜보면 그 기다림이 이해가 되요. 그분은 늘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편에 서셨지요. 그렇다고 근엄하신 것은 아니었어요. 새로운 유행가가 나오면 열심히 가사를 외우시고 재미있는 유머도 꼭 기억했다가 식탁에서 미리 써보셨어요. ‘향수’, ‘애모’, ‘만남’ 등의 노래가 추기경님이 부르신 덕에 외국 신자들에게 많이 퍼졌어요. 일반 대중들 앞에서 정말 구수하게 부르셨어요. 세상 사람들의 애환과 마음을 그렇게 이해하고, 사람들의 방식으로 표현하시려고 노력하셨던 거지요. 그게 진정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말씀으로가 아니라 몸소 보여주심으로써 깨닫게 하셨지요.

종교가 누군가의 곁에
우선해서 서야 한다면 그건 어렵고 소외된 자들…

민중의 언어와 감성으로 다가가는 것, 그것이 고 김수환 추기경의 민중사랑법이었고, 김운회 주교도 그의 그런 사랑을 깊이 흠모하고 따라왔다. 그러나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일부 종교 지도자들은 지나치게 침묵하거나 지나치게 보수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이 시대 천주교는 신앙 공동체를 넘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교회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난한 이도 있고 부유한 이도 있고, 보수도 진보도 있어요. 교회는 모두를 사랑으로 인도해야 하지만, 누군가의 곁에 우선해서 서야 한다면 그건 어렵고 소외된 자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힘이 되고 기둥이 돼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사제의 사명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서로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부자의 잔치상을 받았으나, 그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소홀한 것에 대해서는 가르침을 주고 야단을 치셨어요. 종교의 집에서 배척되어야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부유한 사람이 은혜로 재물을 얻었다면 그것을 어려운 사람들과 나눠 함께 잘 살도록 교회가 가르쳐야할 일이지요.

 ‘종교의 집에선 누구도 배척돼선 안 된다’는 그의 말이 아름답게 메아리친다. 배척 받아서는 안 되는 그 ‘누구’에는 북녘의 우리 동포도 포함된다. 함흥교구장 서리를 겸임하고, 카톨릭 구호단체인 한국 까리따스의 이사장직을 맡고 있는 김운회 주교가 들여다본 북한주민의 삶은 참혹했고, 교회의 인도주의적 접근조차 차단당한 현재 그의 마음은 더욱 무거웠다.

 남북관계가 지금과 같이 경색돼 가는 것이 무엇보다 안타깝지요. 정치적인 힘으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어요. 정치인은 정치력으로, 종교인들은 인도주의적인 측면에서 도와야 해요. 통일은 힘으로, 물리력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 정부가 모든 것을 힘으로 제어하려는 것은 안타깝지요. 양측 지도자들의 강경한 입장으로 인해 주민들이 고통 받고 있어요. 종교는 정치력이나 물리력이 해낼 수 없는 역할을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감화시키고, 자연스럽게 소통하게 하는 일이예요. 종교인들에게조차 대화나 관계개선을 위한 방안을 차단하고 있는 게 안타깝습니다. 차라리 우리 종교인들이 하는 인도적인 활동을 ‘모른 척’이라도 해주었으면 싶어요. 진짜 문을 열고 소통하게 하려면, 인도적인 지원의 길을 열어두고 그 길을 따라서 사람도, 물자도 흐르게 해야 해요. 그러다보면 사람들이 저절로 마음을 열어요. 공포나 두려움으로 몰아가려 해도, 서로 마음이 열린 다음에는 쉽지 않지요. 정말로 통일을 원한다면 우리 종교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북한이 추운 곳이다 보니 난방이 큰 문제예요. 태양열 집열판과 묘목을 심을 수 있는 묘목판을 요청하는데, 국산이 품질이 좋아도 북한과 거래가 안 돼 중국산을 보내요. 안타깝지요.

<춘천사람들>은 의식 있는
시민들의 깨어있는 소리!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기를

 이야기를 듣다보니 약속한 시간이 어느덧 훌쩍 지나고 있었다. 서둘러 나서며 <춘천사람들> 창간 1주년 및 지령 50호 기념으로 한 말씀 청했다. <  신문이 상당히 알차고 훌륭합니다. 의식 있는 시민들의 깨어있는 소리를 담아내는 일에 많은 사람들이 동참했으면 좋겠어요. ‘시민과 동행하는 신문’이라는 모토도 마음에 듭니다. 상업성을 떠나 우리 춘천시민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춘천시민들의 힘으로 아름답게 꾸려가기를 바랍니다.  김운회 주교와의 만남은 내내 따뜻하고 진지했다. 권위와 위엄보다는 온화함으로 함께 있는 시간 동안 저절로 마음이 정화되고 감화되는 느낌이었다. 그는 말한다. “사랑은 구호나 가르침이 아니라 실천”이라고. 그를 통해 ‘사랑’이 명사가 아니라 ‘동사’임을 다시 생각한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신문’으로 의로움과 사랑을 실천하는 일임을! 허소영 시민기자 바로잡습니다 지난 제49호 인터뷰의 ‘박민수’ 씨는 ‘박문수’ 씨로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