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조선일보’라는 불편함

‘조선일보’라는 불편함

 중국 속담에 “하늘이 장난을 칠 때는 살길이 있어도(天作孼猶可活), 스스로 악한 일을 하면 살 길이 없다(自作孼不可活)”라는 게 있다. 이즈음 만인의 공적이 되어 있는 최순실을 보면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사실 이 속담에는 논리적 함정이 숨어 있다. 하늘이 장난을 친다는 것 – 이게 바로 함정이다. 이것이 함정인 이유는 하늘이 장난을 쳤다고 해도 장난의 주체가 ‘하늘’이란 사실을 누구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 말은 사필귀정(事必歸正)과 같은 맥락으로, 화란 본래 자초하는 것이니 악한 일을 아예 하지 않는 게 스스로를 구제하는 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최순실은 물론 그녀에게 아예 통치를 맡겨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대통령, 그리고 그녀와 어떤 식으로든 ‘끈’이 닿아 있는 정치인과 공직자들 역시 “스스로 악한 일을 행한”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식으로 ‘끈’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박근혜 씨를 대통령으로 뽑은 유권자들에게까지 닿게 되는데, 이 논리에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여기에 어떤 식으로든 입을 댄다는 게 오히려 ‘구린 속내’를 드러내는 일이란 사실을 인지할 것이다. 대학을 중심으로 학생과 교수들이 연일 시국선언을 발표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보수원로’를 자처해온 사람들까지 여기에 동참하는 걸 보고 있으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이 절로 일어난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싶은 기이한 감회를 분출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조선일보다. 이즈음의 조선일보를, 적어도 최순실 사건을 둘러싸고 청와대를 향해 맹공을 퍼붓고 있는 그들의 보도를 보고 있으면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으로 착각할 정도인데,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종합편성채널인 ‘TV조선’은 한술 더 떠 그 어투에 조롱과 냉소와 비아냥이 때로는 육두문자에서 느껴지는 ‘명랑한’ 기운마저 묻어난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를 ‘조중동’이라는 한 우리에 몰아넣고 ‘보수꼴통’의 앞잡이 노릇하는 사이비언론으로 야유를 퍼붓던 시절이 있었다. ‘시절’이라는 단어를 쓰기엔 매우 최근까지 그런 모양새를 하고 있긴 했지만, 어쨌든 지금은 일정 부분 이 틀이 와해된 것처럼 보인다. 알다시피 와해의 양상을 주도한 것은 ‘보도담당 사장’이라는 근사한 명함을 파주고 손석희를 방송으로 귀환시킨 Jtbc, 그러니까 중앙일보였다. 손석희의 사장직 수락 기사가 났을 때, 필자는 “왜 손석희가?”라는 제목의 포스팅을 SNS에 올려 사적인 분노와 두려움을 드러내보였는데, 복귀 후 곧 그가 보여준 놀라운, 실은 매우 그다운 행보들을 지켜보면서 중앙일보의 구악까지 덤으로 용서(!)했었다. 그렇다면 최순실이라는 ‘공공의 적’이 독보적으로 욕을 ‘쳐드시고’ 있는 와중에 그간의 행보를 돌연히 바꾸어버린 조선일보는? 이 물음은 얼핏 곤혹스러워 보이지만 대답은 사실 자명하다. 그들이 ‘행보를 바꾼’ 결정적 이유가 몹시 구리기 때문이다. 손석희의 활약과는 상관없이 중앙일보의 본질적 논조는 여전히 완고하게 보수적이라는 것 또한 조선일보에 대한 시각을 교정하지는 못한다. 적어도 아직은!

하창수 (소설가)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