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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따라가는 춘천여행] 장학리 소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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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수지리는 산, 땅, 물 등 주변의 자연을 살펴 이것을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에 연결시켜 온 우리의 생활문화유산이다.

 음택 풍수는 죽은 사람이 누워 영원한 안식처를 찾는 것이고, 양택 풍수는 산 사람이 사는 집터나 공공기관, 개인 사무실, 절터 등을 찾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명당이라는 땅은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로 불리는 지형에 혈(穴)이 둘러싸여 모여 있는 땅이 좋은 기운을 갖고 있는 명당이다.

 소나무 숲은 민성기 가옥(강원도문화재 자료 제66호) 옆에 있다. 민성기 가옥은 묘막으로 무덤을 관리하기 위한 집이다. 이 숲은 풍수지리설에 따라 지세의 허약한 곳에 나무를 심어 보완했다. 비보림(裨補林) 혹은 보허림(補虛林)이라고도 불린다. 좋은 기운이 나가는 것을 막고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친일 인사를 지키는 풍수림

 소나무 숲은 부귀영화를 누리다 죽은 친일 인물의 사후를 지키고 있다. 무덤의 주인은 민영휘(1852∼1902)라는 인물로 친일인명사전에 올라 있을 만큼 대표적인 친일 인사다.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고 조선 최고의 갑부로 이름을 날렸던 민영휘의 춘천 인연은 아버지 민두호로부터 시작된다.

 춘천부 유수로 부임해 있는 동안 민두호는 고종의 밀지를 받아 춘천이궁을 짓는다. 임금의 피난처를 짓는다는 핑계로 주민들에게 막대한 세금을 부과해 재원을 마련했다. 백성들의 원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세금을 갈취해 ‘쇠갈고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

 춘천지역의 백성들로부터 뜯어낸 돈이 조선 최고의 부자를 만드는 종자돈이 된 것이다. 이런 배경으로 1895년 춘천에서 을미의병이 일어나 전국적인 의병투쟁의 도화선이 됐다.

구한말 대표적인 탐관오리 민형휘

 부친에 이어 재산을 물려받은 민영휘(본명: 민영준)는 민씨 외척의 권위를 십분 발휘해 매관매직과 가렴주구를 통해 재산을 불렸다.

 1882년 임오군란 때는 난군의 습격으로 가옥이 파손될 정도로 탐관오리의 대표적 인물로 지탄을 받았다. 1884년 갑신정변 때는 청나라에 지원을 요청해 난을 수습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청나라의 원세개에 지원을 요청, 농민군 토벌에 앞장섰다. 청일전쟁 이후 칩거해 있다가 갑오개력으로 민씨 척족과 함께 실각해 전남 영광군 임자도에 유배된다. 이후 유배지를 탈출해 평양으로 숨어들어 청군에 몸을 맡겨 지내다 중국으로 도망한다. 이듬해 일본 측의 농간으로 대원군 측의 이준용과 교환 형식으로 대사령 자격으로 귀국했다.

 중추원의장, 시종원경, 헌병대사령관, 표충원총재를 엮임했다. 천일은행과 휘문고의 설립자가 됐다. 민두호로부터 시작된 춘천과의 인연은 장학리에 남아있는 민영휘 묘와 남이섬으로 남아 있다. 남이섬은 현재 민영휘 후손의 소유다.

근현대사를 증언하는 숲

 일제 강점기 돈 많은 귀족으로 살다가 죽은 민영휘는 춘천 장학리에 묘를 썼다. 묏자리는 춘천의 대표적인 명당자리로 알려져 있다. 다만 왼쪽 청룡 위치가 풍수적으로 약하다 보니 기운을 보충하기 위해 소나무를 심어 풍수요건을 충족했다. 묘를 쓴 자리의 산자락은 대룡산에서 흘러내린 줄기가 마치 살아있는 뱀의 형상처럼 S자 모양으로 활력이 넘치며 힘이 있어 보인다. 그 기운이 묏자리에 와서 멈춰서 좋은 혈을 갖고 있다고 풍수 전문가는 훈수를 둔다.

 20여 그루의 소나무들은 대부분 100년생이 넘어 보인다. 춘천의 나무 중에 풍수와 관련된 나무는 일부 마을 숲을 제외하고 많지 않다. 이곳의 소나무는 춘천의 역사는 물론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품고 있어 청소년들에게 교육자료로 활용되면 좋을 것 같다.

김정운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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