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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사칼럼] 이곳에 살기 위하여

서울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20대의 일곱 해를 춘천에서 살았다. 81학번으로 사범대를 졸업하고 첫 발령을 받은 곳이 서울 중랑구의 한 고등학교였다. 20대 끄트머리에 시작한 교직생활 스무 해 만에 서울에서 강원도로 옮겨왔다. 그때부터 아직도 만나는 이들마다 ‘그 좋은 서울에서 왜 내려왔느냐’고 묻는다. 특별한 선생 취급을 할 때마다 딱히 무어라고 답을 할 수 없다. 그냥 ‘마누라가 무서워서 도망 왔다’며 실실 웃는다.
 
 중랑구와 구로구에 있는 학교들에서 일하다 ‘물이 좋다’는 강남으로 발령을 받았는데, 처음 만나는 교장이 말했다. “강남 입성을 축하합니다.” 이후 춘천의 특목고로 갔을 때도 같은 말을 들었다. 주로 교장이나 교감이 쓰는 말이었는데, 몇몇 교사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입성이라는 말을 입에 올렸다. 그렇게 명문이라거나 특목고·외고·자사고와 같이 특별하다고 여기는 학교들은 관리자들이나 교사들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게 만드는 곳이었다.
 
 여기에 더해 중등교사들에게 자신을 더 특별한 존재로 여기게끔 만드는 것이 고3 담임을 맡는 것이다. 현행 대학입시와 수능이 변하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떤 교장은 자신이 춘천의 명문고 3학년 부장으로 있을 때 서울대에 수십 명을 진학시킨 것을 필생의 보람으로 여기며 퇴임했다. ‘서연고(포카), 서성한, 중경외시, 국숭세단…한서삼, 이하잡!’이라는 말이 견고하게 고착되어 있다. 대학의 서열화에서 서울대는 ‘지존’으로 굳건하다. 나 또한 ‘인서울’에도 끼지 못하는 ‘이하잡(이하 잡대)’에 속하는 ‘지거국(지방거점국립대학)’ 출신의 ‘특별한’ 교사로 살아 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북유럽 사람들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는 ‘얀테의 법칙’을 알게 되면서,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뒤늦게 알았다. 그 첫 번째가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You’re not to think you are anything special’ 아니던가. 재작년 김도연의 소설 《마지막 정육점》의 한 문장에서 일생패궐(一生敗闕)을 읽고는 그 생각을 더욱 굳혔다. “어차피 인생은 균열과 붕괴의 과정”이라고 말한 철학자도 있었다. 그 어떤 인간도 자연의 섭리 앞에서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가정과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너는 잘할 수 있어! 하면 돼! 너는 특별하니까!’라는 말들이 넘친다. 지난 이명박근혜 정부의 교육정책은 이러한 경쟁과 특별함을 앞세워 막장 중의 막장으로 치달은 것이다. 전교조 죽이기부터 시작해 그 결정판이 체육·스포츠 분야에서 K스포츠, 미르재단,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특혜입학이었다. 자신들을 특별하게 여기던 세력들이 온갖 특권과 특혜를 누리고 ‘갑질’과 악행을 저지르다 촛불시민혁명의 심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나 또한 체육선생으로 일해 오면서 많은 날들을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여겼다는 생각을 해본다. 특별한(체육특기자) 아이들로 만들어진 야구나 농구팀을 경기에 데리고 나가면, 부장님이나 감독님으로 호명되었으니 그랬을 것이다. 어리석고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또한 나는 전교조가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참여해 지금까지 전교조 교사로 살아왔다. 특별할 일이 없는 교육노동자의 길을 걸어 온 것이다. 전교조 조합원으로서의 삶이 내 생애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면서 이제는 서울에서 강원도로 온 이유를 물으면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 ‘바로 지금, 이곳에 살기 위하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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