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사람들 / 人_터_view / [人_터_view] ‘내 일(My work)’을 통해 ‘내일(Tomorrow)’을 연다

[人_터_view] ‘내 일(My work)’을 통해 ‘내일(Tomorrow)’을 연다

‘내일을 여는 멋진 여성 강원협회’ 김수진 회장

장애란 단지 불편하고 조금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김수진 회장. 김예진 시민기자
 
 지난 12월 ‘내일을 여는 멋진 여성 강원협회’의 소박한 기념식에서 김수진 회장은 아버지와의 일화로 인사말을 열었다.
 
 “문밖의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모습을 보고,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했더니, 아빠는 ‘물론 탈 수 있지. 그러려면 다리부터 튼튼해지고 노력을 많이 해야 해’ 하시고는 다음날부터 혼자서 학교에 걸어 다니도록 했어요. 몇 발짝 걸을 때마다 넘어지곤 했죠. 그게 세상과의 첫 대면이었습니다. 생일에 아버지가 파란 자전거를 사오셨는데, 발을 페달에 올리고 굴려도 힘이 들어가질 않았어요. 비탈길에서 타면 페달을 밟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친구들과 함께 언덕으로 올라갔지요. 친구가 잡고 있던 손을 놓자 자전거가 사정없이 내달리더니 공중에 붕 떴다가 바닥에 나동그라졌어요. 아프고 고통스러웠지만 바람 속을 날던 그 기분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의 경험은 나에게 ‘도전’이라는 두 글자를 가슴에 심어주었습니다. 하고 싶은 간절함은 행동하게 하고, 기적을 만듭니다.”
 
 하늘을 날던 그 짧은 순간의 자유로움을 이야기할 때, 그녀는 다시 그 시절의 언덕 위에 가 있는 듯했다. 여전히 고통과 맞바꿀 만한 그녀의 도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을까. 그녀의 삶, 그녀가 살아온 세상으로 한 발 한 발 들어가 본다.

‘멋진 여성’의 CI.
 
 여성 장애인은 여성이라는 1차적 차별에, 장애라는 2차적 차별로 2중 차별의 어려움을 겪는다고 합니다. 이곳 ‘내일을 여는 멋진 여성’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회원들의 삶에 대해서도 경험한 바가 많으실 듯합니다.
 
 저는 다양한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여성들과 함께 해왔어요. ‘장애’가 있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우리들의 역량이나 자질을 폄훼하고 심지어 인격까지도 내려다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발달장애 여성들에게는 나이가 많아도 함부로 반말을 하거나 아이 다루듯 하죠. 장애는 그 종류와 정도가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합니다. 비장애인의 역량과 생김새가 다 다르듯, 우리도 다를 뿐입니다.
 
 선천적으로 한 쪽 눈의 시력이 없고, 척추관절이 틀어져 외관상으로 드러나는 장애를 가진 한 친구는 결혼을 해서 남편과 시아버지의 간병, 그리고 자녀양육 등 몇 겹의 일을 혼자 감당하며 살고 있어요. SNS에 글을 올리면서 애환을 달래고 있는 이 친구의 꿈은 시인입니다. 지체 1급 장애를 가진 어떤 분은 남편의 설교문을 검토하고 집안에서는 모든 가사 일을 일일이 챙깁니다. 아이를 살뜰히 씻기고 입혀서 자신의 무릎에 앉혀 휠체어에 태워 가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그러나 사람들의 편견 어린 시선은 평범한 그 장면을 끊임없이 불편해합니다. 차라리 눈앞에 나타나지 말았으면 하는 거지요. 저도 큰 아이를 낳아 다른 이들처럼 업고 다녔는데, 뒤뚱거리는 모습이 우스웠는지 아니면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할까 염려했는지 이웃 아주머니가 제 시어머니에게 걱정스런 말을 했다고 해요.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아이 고생시키지 말고 집에 있어라. 남세스럽다’고 타박을 하셨어요. 그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요. 비장애인이 그러하듯 우리도 훌륭한 어머니이자 아내나 딸이 되고 싶고, 충분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키가 큰 사람, 작은 사람, 쌍꺼풀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다를 뿐이지 어느 하나가 틀린 게 아니잖아요? 장애 역시 신체와 정신의 조건이 다를 뿐, 똑같은 사람입니다.

 
 깊이 공감합니다. 언젠가 장애인에 대한 글에서 장애인을 바라보는 두 가지 불편한 시선을 본 일이 있습니다. 하나는 과도한 ‘신성화’인데 모든 장애인은 마치 자신의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불쌍하다는 연민이었어요. 전자의 경우, ‘헬렌 켈러’처럼 극적으로 자기 장애를 극복한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적 시각인 것이고, 후자의 경우 일방적인 도움의 대상으로 축소시킨 것이죠. 우리 안의 다양성과 개별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관점인데요. ‘내일을 여는 멋진 여성’은 장애 여성들의 개별성과 독립성을 강조하고 주체적 역량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돋보입니다.
 
 네. <내일을 여는 멋진 여성>은 장애인 단체임에도 ‘장애’라는 말을 굳이 넣지 않았어요. 우리 스스로 한계 짓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내일’은 두 가지 뜻이 있어요. ‘내 일(my work)’과 ‘내일(tomorrow)’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장애 여성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일자리를 통한 경제적 자립입니다. 모든 장애인에게 일할 기회는 제한적인데, 장애 여성들에게는 더욱 냉혹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동물자원 전공으로 대학에 수석 입학해서 상당히 촉망받는 학생이었지만, 어느 곳에도 취업할 수 없었어요.
 
 도서관에서 일하면 좋을 듯해서 사서학을 공부했지만, 역시나 어디서도 저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좋은 학부를 나와도, 좋은 성적을 가졌어도 취업이 쉽지 않은 게 우리 현실입니다. 그러나 경제적 자립만이 우리를 사회적 소외에서 벗어나게 하고 사회의 구성으로서 살게 합니다. 장애 자체만으로도 큰 제약이 되지만, 여성이라는 조건은 거기에 몇 배의 어려움을 줍니다. 그럼에도 저를 비롯해서 제가 만난 장애 여성은, 자신이 여성으로서 갖는 모성과 책임감을 소홀히 하지 않았어요. 우리 협회의 로고는 이런 우리의 마음을 잘 표현해주고 있어요.
 
 팔로 꽃을 안고 있는 모습인데, 팔과 손가락은 나팔관을 의미해요. 비대칭한 모양이 장애를 나타내고, 꽃은 질을 의미하는데, 미래를 연결하는 소중한 문이죠. 아이를 품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은 여성의 자궁 모양입니다. 우리 회원은 장애 유형과 등급이 다양합니다. 현재는 장애 여성들의 건강·여가활동을 지원하는 한편, 다양한 공예제품을 만들어 판로를 고민하고 있어요. 협회 예산이 부족해서 다양한 이들의 욕구를 반영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큽니다.
 
 제대로 된 자립까지 이뤄내려면 꾸준한 투입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비장애인들도 나이 들면서 늙고 기능이 쇠퇴해지듯이, 장애인들도 여러 가지 기형과 장애가 진행되기도 합니다. 그 힘든 과정에서도 우리 회원들은 여기에서 배우고 사회에 진출해서 당당한 자립을 이뤄내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경제적 자립에 목적이 있다면, 여기 오래 머무르는 게 아니라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형태로 발전해서 나아가야 하는 것이죠.

 
 자궁과 질, 나팔관을 이렇게 자랑스럽게 당당히 이미지로 사용한 곳은 ‘멋진 여성’이 최초일 것 같아요. 회장님은 어떤 계기로 이곳에서 활동하게 되었는지요.
 
 원래 서울에 살다가 개인 사정으로 춘천에 내려왔어요. 그리고 5년 전에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시작한 사회활동이 자폐와 지적 장애를 가진 이를 씻기고 보살피는 일이었는데 나름대로 보람도 있고 의미도 있었죠. 그러다가 2010년 춘천에서 ‘내일을 여는 멋진 여성협회’의 상담사로 근무하며 동료 장애인 회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제게도 그렇지만, 장애는 조금 불편할 뿐이지 무엇을 할 수 없다는 건 아니라는 점을 더욱 명확하게 느끼게 되었죠. 저는 이곳에서 잠재되어 있던 제 도전의식과 바람을 일깨울 수 있었어요. 2016년 강원협회장 제안을 받으면서 회원들과 더 깊이 있게 소통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제가 ‘멋진 여성’을 통해 얻은 힘과 가능성을 우리 회원들에게 나눠주고 싶어요. 장애여성들의 주체적 삶을 위해서는 경제적 자립이 정말 중요해요. 금년에는 여성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꾸려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각오가 단단해 보입니다. 지역 사회에서 여성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녹록치 않으리라 봅니다. 시민들과 새해 나누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여러분의 눈에 우리들은 어떤 모습일까요? 함께 살고 있지만, 비장애인분들에게 우리는 조금 불편해 보이고 불행을 안고 사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겠지요.
 
 장애를 미화하기도 하고, 극복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당위를 붙이기도 합니다. 장애는 좋은 것은 아니지만, 저와 함께 평생 가야 하는 제 모습입니다. 저 자신도 장애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했어요. 20대 후반, 공부를 해도 성적이 좋아도 취업이 안 되자 마지막으로 기댄 게 장애 등급을 받는 것이었어요. 저를 편견의 눈으로 보든 애처롭게 보든 그 모든 사람들에게 저를 해명하고 인정 받으려고 하는 노력들이 결국 제 자신에 대한 절규라는 것을 알았어요. 모든 생명은 귀하고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옆에 목발을 짚고, 휠체어를 타고, 흰 지팡이를 짚고 가거나 목이 흔들리거나 입이 비틀어지는 사람들을 본다면, ‘아, 다른 한 사람이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따뜻한 눈빛과 배려를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장애는 전염병도 불행도 아닌 것이 됩니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그녀는 “이쁘게 찍어주세요~”하며 웃는다. 이쁘다. 표정의 선을 따라 유난히 굵은 주름도 이쁘고, 가끔 뒤틀리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웃는 모습도 이쁘다. 자전거를 타보고 싶다는 무모한 열망이 없었다면, 그녀는 자전거와 함께 공중을 나는 놀라운 경험을 하지 못했을 것이고, 다른 도전도 없었을 터이다. 그녀의 비상은 위험하지만, 계속될 것이다. 여성 장애인이 소외되지 않고, 어떤 인권도 무시되지 않는 세상을 향한 그녀의 도전은 오늘도 자전거와 함께 날고 있다.

허소영 시민기자

Check Also

[人_터_view] “한글 알고 감동을 표현할 수 있으면 누구나 시인”

우리시대의 시선(詩仙) 이은무 시인    “난 ‘종북’은 아니지만 반미친북이야.”    시인이 대뜸 아주 당당하게 말한다. …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