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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사칼럼] 보이지 않는 여성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MeToo/ #WithYou). 서지현 검사의 성폭력 피해 드러내기를 응원하며 이 땅의 용기 있는 피해자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함께 하겠습니다.” 지난 2일자 한겨레 1면에 더불어민주당 정책의견·정치행동 그룹인 ‘더좋은미래’가 낸 지지광고다. 생각 있는 여당 의원들이 뜻을 모아 시의적절하게 대처한 것으로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내 눈엔 ‘용기 있는 피해자들’이란 대목이 걸린다. 용기가 없거나 용기를 내지 못한 그 많은 여성들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지워지지 않는 몇 개의 기억으로 종일 마음이 무겁다.
 
 국립대학에서 벌어진 남자 교수의 여학생 성추행사건을 해결하고자 연대했던 민우회는 이런저런 시달림을 겪어야 했다. 평소 민우회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모 교수는 민우회가 왜 이런 일에까지 나서냐며 항의를 해왔고, 어떻게 교수가 되었는데 그만한 일로 밥줄을 끊느냐, 여성들이 겁 없이 나댄다, 밤길 조심하라는 그 학과 출신의 남학생 동문들로부터 협박성 막말을 들어야 했다. 민우회뿐 아니라 10여개의 시민사회단체가 나서서 총장을 면담하고 지난한 싸움 끝에 문제의 교수는 해직되었지만 여학생들이 당했을 고통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뿐 아니라 민우회 사무실을 찾은 사적이고 은밀한 성폭력 사건들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
 
 중·고등학교 때 복도를 지나가던 남자 선생님이 여학생의 브래지어 끈을 잡았다 놓거나 그 얼굴로 어떻게 시집을 가느냐는 소리를 예사로 들어야 했던 학창시절을 보냈다. 군에 가기 전이나 다녀온 남학생들은 ‘딱지’ 떼는 이야기를 무용담으로 늘어놓았고, 직장에서는 언제나 차 심부름과 잔일은 여성들 차지인 것을 당연시 하는 사회에서 살아왔다. 자기 의견을 가진 여자아이는 드세다는 핀잔을 듣거나 결혼을 해서도 집안을 시끄럽게 할 문제의 여성으로 낙인찍힌다. 밥자리에서는 전골을 퍼 나르고 술자리에서는 원치 않아도 술을 받아야 하며 노래방에서는 술 따르기나 블루스 추기가 강요된다. 이것이 보편적인 문화이고 보면 술을 빙자해 장소불문 예상되는 어떤 행위와 맞닥뜨린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여성이 꽃에 비유되거나 ‘먹는다’라는 표현이 사라지지 않는 한, 여성을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는 사회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남성의 성욕은 자연스럽고 때로 주체할 수 없으며 그 책임은 짧은 옷을 입었거나 늦은 밤 돌아다니는 여성에게로 돌아온다. 성폭력과 관련된 여타의 사안들은 그래서 보고도 믿기지 않는 뉴스를 일상으로 접해야 한다. 교사와 교수가 학생을, 임원이 부하 여직원을, 국회의원이 여기자를, 의사가 환자를, 작가가 독자를, 사장이 알바생을 성추행하고 시아버지가 외국에서 온 며느리를 성폭행하는가 하면 아버지가 딸의 친구를 성추행하다 목숨까지 빼앗는 극단의 상황을 보고 있다.
 
 여성은 언제나 약자였다. 남자친구나 남편, 아버지나 친지, 직장상사나 동료, 스승까지 적이 될 수 있는 상황 아래 살아왔다. ‘#MeToo/ #WithYou’ 운동은 그런 의미에서 반갑지만 불행한 운동이다. 한 번도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지 못하고 고통 속에 살아가는 모든 피해 여성들에게까지 힘이 되는 운동은 무엇인가. 종일 생각해봐도 쉬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남궁순금 (전 춘천여성민우회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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