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뉴스 / 정치경제 / ‘2년의 약속’을 마치며

‘2년의 약속’을 마치며

내가 경험하고 있는 시민사회 활동이란 그림자 노동과 감정노동이 섞여있는 특이한 업종 중의 하나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쉬어야 할 시간에 이 업종의 노동이 시작된다. 일종의 시간외 근무 같은 개념인데, 그러다 보니 힘들 때는 그 피로감이 훨씬 누적된다. 오늘 같은 경우도 시민민회를 준비하는 모임에 참석했는데 7시 반에 시작된 논의가 밤 10시가 다 돼서야 끝났다. 게다가 이 일은 대부분 눈에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모임장소를 예약하고 회원들에게 연락을 하고 간식거리를 준비하고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은 무대 위에 서는 일은 결코 아니다. 무대 뒤에서 진행되는 그림자 노동의 영역이다. 모임이 끝나고 자리를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는 사람보다는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거나 인사를 하는 사람들이 더 기억되는 것은 시민사회 영역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시민사회 활동이란 게 특별하긴 하지만 그 사람들이 특별한 건 아니다. 나를 포함해서 그저 평범한, 어쩌면 평범 이하의 사람들이기도 한 이들이 모여서 하는 일이고, 그러다보니 그 틈바구니에서 이리저리 생채기가 나고 아픔을 겪기도 한다. 오히려 좋은 의도를 가지고 모인 곳일수록 나쁜 경험을 하게 되면서 생기는 감정노동의 강도도 더 심하다. 내 주변의 몇 사람도 그렇게 해서 활동을 접는 것을 봤다. 거꾸로 생각하면 그래서 더 특별한 것인지도 모른다. 평범한 사람들이 그런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서도 이런 뜻 깊은 활동을 해 낸다는 점에서.
 
 그런데도 왜 나는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단지 필요하니까, 의미가 있으니까 하는 것이리라. 그 의미란 것도 과정 전체가 의미로 충만하다기보다는 특별한 한 순간이 주는 의미인 경우가 더 많다. 그 한 순간의 의미로 인해 나머지 순간의 무의미를 견디기도 하고, 간혹 조명탄처럼 전체를 밝혀주는 어떤 순간을 마주함으로써 전체의 의미를 깨닫게 될 때도 있다. 얼마 전 모임에서 나도 그런 특별한 순간을 마주했다. 바닥 난 모임의 운영기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고민하다 회비납부를 게을리 했던 회원들에게 독촉하자는 얘기를 한참 하던 중이었다. 회부납부 현황을 점검했던 회원 한 사람이 문득 이런 소감을 얘기했다.
 
 “누가 얼마를 냈는지 확인해보려고 장부를 보는 데 정기적으로 내지 못하고 간헐적으로 내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각자의 위치에서 여건이 될 때마다 오만원, 만원, 어떨 땐 오천원을 보내 주신 거죠. 띄엄띄엄 내 주신 그 금액들을 보면서 그 마음이 참 고맙더라고요. 그래서 이분들에게 감사의 편지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분들 덕분에 저희가 여기까지 왔습니다’라고요.”
 
 그날 우리는 독촉편지가 아니라 감사편지를 쓰기로 했다. ‘2년의 약속’이라는 기금이 있다. 몇 년 전 파업 중에 해고된 춘천 진흥고속 노조위원장의 활동을 지지하기 위해 시민들이 모은 기금이다. 제안은 했지만 얼마나 모을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은행 창구 앞에 선 날, 기나긴 후원자들의 명단을 확인했던 일은 내겐 뜻 깊은 순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 기금의 일부가 민주버스 강원협의회에 전달되고 180만원 정도가 남았다. 후원해준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 남은 기금을 춘천시 환경사업소 일을 하다 최근에 해고된 노동자들에게 보내주기로 했다.
 
 ‘2년의 약속’ 후원통장을 노동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전달하는 집회에서 나는 통장에 적혀있는 후원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노동자들에게 낭송했다. 노동자들이 후원자들을 기억해줬으면 하는 내 마음은 나와 같은 춘천시민들이 48명 노조원들의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 기억하는 날이 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이어져 있었다. 농약병이 터져 병원에 실려 가도, 황산이 튀어서 화상을 입어도 멈출 수 없었던 쓰레기를 치우는 일. 사람이 사람에게 시켜서는 안 되는 일을 우리가 그들에게 시켰고,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기억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동네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 2년의 약속은 그 책임감의 한 표현이었다. 하지만 책임감이란 말로는 뭔가 부족하다. 내게 2년의 약속은 편지였다. 나는 운 좋게 우체부가 되어 그 편지를 나르며 행복했다. 편지를 보내는 이들도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 편지를 받은 이들도 결국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리되도록 나도 작은 힘을 보태려 한다.

양창모 (녹색평론 춘천독자모임 회원)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