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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마실 – 동산면 원창리] 물길과 숲길이 전하는 비밀을 찾아가다

대룡산 계곡물은 기암절벽들과 세거리를 지나 쉰동골 원창저수지로 흘러들어 원창리, 군자리, 증리, 혈동리, 팔미리, 의암리를 거쳐 북한강으로 흐른다.

학곡리, 사암리, 봉명리, 군자리, 증리와 홍천 북방면에 닿아있으며 5개리나 될 만큼 넓은 원창리는 금병산, 대룡산, 연엽산, 구절산에 둘러싸여 있는 깊은 곳이다. 게다가 원창고개는 또 얼마나 높은가! 넓고 깊고 높은 마을을 찾아다니는 낯선 여정이 숨은 그림 찾기 같았다.

답사 당일의 일기를 살피는 일을 깜빡 잊었다. 비가 곧 그칠 듯 말 듯 부슬부슬 내리는 하늘과 시계만 보다가 늦은 오후가 되어버렸다. 지도를 몇 날 며칠 들여다보던 터라 조급증도 나고 비 맞는 시골길이 궁금해 길을 나섰다. 사방이 어스름한데 하늘은 오히려 멀겋다.

재취골에서 원창고개로 향하는 40번 버스.

김유정문학촌과 삼포유원지가 있는 증리를 지나 새술막막국수에 이르는 마을길로 향했다. 팔미천을 거슬러 오르는 길이다. 맑은 날엔 좁은 길 따라 붉은 병꽃이 주렁주렁 열리고, 쥐오줌풀, 수영이 바람에 한들거리는 모습도 어둠 속에 묻히고, 논물에 대기 중인 모판의 모와 이제 아주심기를 마친 논의 연둣빛 모는 어린아이의 엉덩이만큼이나 예뻤는데, 산자락을 덮고 마을까지 내려온 운무와 빈 논의 산 그림자는 돌보지 않던 가슴 어딘가를 뭉클하게 했다. 인적이 없는 재취골, 하루 세 번 다닌다는 40번 버스에는 단 한 명의 승객도 없이 새술막막국수 집을 돌아 구름 덮인 원창고개 너머로 사라졌다.

금병산 줄기와 길게 누운 대룡산의 중간에 위치한 원창고개는 춘천의 남쪽 관문으로 굽이굽이 산길이 높고도 깊었다. 먼 길을 갔다가 고개를 앞에 두고 있는 나그네에게도, 춘천에서 고개를 넘어 떠나는 이에게도 힘겨운 고개였다. 그 지점에 새로 주막이 여럿 생겨나 그 마을을 새술막(신점리)이라고 했다. 새술막막국수집 할머니는 그 집에서 50년을 일했다.

“시집오고 얼마 안 돼서 이집에서 일을 하게 되었어. 남의 집살이를 10년 하고, 내가 이집을 이어받았지. 그러고 40년이 넘었나? 그래. 처음엔 이 부근에 술집이며 여관이 몇 있었지.”

조선시대에는 역마를 갈아타던 원창역이 있었다. 원창리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한다. 팔미천을 따라 증리와 군자리를 지나면 새술막막국수에 이르기 전이 원창1리로, 구암갤러리와 마을회관, 전인학교가 있다. 구암동은 규암층 바위에 뚫린 굴속에 비둘기가 많이 살아서 ‘굴아우’, 또는 ‘구암(鳩岩)마을’이라 불렸다. 금병산 자락이 포근하게 둘러있고, 앞으로는 팔미천이 흐르는 평온한 마을로, 이 일대는 주로 논밭이다. 구암갤러리는 예쁜 화실 같은 작은 갤러리로 최찬희 작가의 상설전시가 대부분이다. 전시가 없을 때는 문이 닫혀 있는 날도 많아 전시 일정을 홈페이지에서 확인해야 한다.

원창1리 팔미천에서 피라미 잡는 아이들.

팔미천에는 보가 많은데, 전인학교 부근의 보는 돌들을 깔아서 만든 어로보다. 많은 보들 중에 몇 개에만 물고기가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준 것이다. 보 공사가 많았던 탓인지 모래톱은 사라지고 갈대만 많았다. 파인 하천 바닥으로는 자갈만 뒹굴고, 둑이 높은 어로는 무용지물이다. 팔미천에서 족대로 피라미를 잡으며 휴일을 보내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피라미라며 좀 싱거워했다. 다양한 수생생물이 살지 못한다면 대룡산 맑은 물이 흘러도 물은 죽어가는 것이다. 주민들은 새 농촌 기초마을사업을 통해 현장포럼을 실시해 팔미천을 따라 꽃과 나무를 심는 등 산책로 조성과 다슬기를 방류하는 등 생태하천 가꾸기에 노력하고 있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나 옳은 처방을 내리길 바라는 마음이다.

새술막막국수에서 5번 국도를 가로질러 맞은편으로 난 마을길은 원창3리로, 가재가 많아 ‘가지울’이라 불렀다. 가지울은 U자로 마을을 빙 돌아 5번 국도로 나오게 되는데, 이 마을을 포함해 동산면은 춘천에서 한우 축산농가가 제일 많았다. 한 주민은 횡성한우보다도 품질이 좋다고 자랑했다.

가재울을 나와 ‘수용골’로 가려면 홍천방향으로 조금 내려와야 한다. 원창5리 마을회관 앞길로 약 2.7km 구간의 작은 계곡을 따라 가면서 산 쪽으로 길게 형성된 마을이라 논밭보다는 과수원이 많다. 특히, 이 지역의 복숭아는 일교차가 커 당도가 높아 인기가 좋다. 처음 가본 마을길이다. 길 중간쯤 오른편에 작은 공터가 있는 골짜기는 4월까지도 얼음이 안 녹아 ‘얼음골’이라 불렸다고 한다. 길은 막혀 되돌아 나와야했지만 물소리 들리는 5월의 과수원 숲길이 싱그럽다.

태양광 발전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쉰동골 민가.

다시 5번 국도다. 원창저수지로 향했다. 원창저수지 초입은 관거리 길인데 옛날 역사(驛舍)와 역졸(驛卒)들의 관사가 있었던 마을로 관의 행차가 있었던 길이다. 5번 국도 바로 옆 원창2리 경로당 주변으로는 제법 몸피가 굵은 은행나무들이 죽 늘어서 있고, 오래되고 낡은 원창교 앞에는 그에 걸맞은 오래된 간판이 재미있었다. ‘여관’, ‘개울가집’, ‘윤서방네’ 등 프레임이 녹슬고 글자도 희미한 이 간판들을 끼고 저수지 길로 올랐다. 이 길도 관거리인데, 하늘로 시원스레 치솟은 키가 큰 나무가 여러 그루 줄지어 서 있었다. 한눈에 딱 봐도 수령이 제법 돼 보이는 황철나무로 깊은 숲의 계곡에 많이 있다고 한다. ‘이 나무도 관거리와 관계가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품으며 오르다 보니, 저수지 둑은 벤치와 생활체육시설, 헬기장이 광장처럼 잘 꾸며져 있으나 어린 나무들로 그늘이 없고 인적도 드물어 광장의 보도블록 사이로는 개망초와 명아주순, 사초들만 빼곡했다.

‘쉰동골’ 민가까지는 차량진입이 가능했다. 서너 사람쯤 저수지 길에 산책 나온 사람들이 보였을 뿐 온통 자연 그 자체였다. 현재 쉰동골에는 세 가구가 있다. 한 가구를 제외하면 주말에만 온다. 저수지 가장 끝에 위치한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시내에서 자영업을 하는 정씨는 저수지 아랫마을께 살았다. 그 마을에는 경주정씨 일가가 모여 살았다고 한다.

3년 전에 한전에서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해 주기 전까지 쉰동골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집 왼쪽으로는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까투리가 개울가로 날아들었다. 마당에는 토종 벌통이 많았는데, 벌 한 통으로 석 달 동안 아홉 통을 만든다고 했다. 정씨 집 앞에는 바리게이트가 잠겨 있었는데, 안쪽 길이 궁금해 부탁했더니 흔쾌히 친절을 베풀어 준다.

쉰동골에서 학술림 원창초소로 가는 임도 풍경.

‘미나리냉이’와 ‘나도냉이’가 길가에 흐드러지고 언덕에서 ‘큰꽃으아리’도 활짝 핀 채 까만 ‘긴꼬리제비나비’의 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길 중간 중간 저수지의 초록 물빛과 윤슬이 소나무사이로 반짝였다. 길지 않은 저수지 임도는 1km 정도 떨어진 곳에 또 하나의 높은 철문으로 닫혀 있었다. 강원대 학술림 원창 초소였다. 임도는 넓었으나 들어갈 수가 없었다. 강원대 학술림 원창초소 임도는 왁박골을 지나 연엽산에 이르는 길이다. 학술림은 사암리 대룡산 일대로부터 연엽산과 구절산, 홍천 북방에 걸쳐 3천146ha의 방대한 산림으로 일반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학술림 철문다리의 왼쪽 계곡은 길이 없는데, 사암리 세거분교가 있던 곳으로 이어지는 길이라고 했다. 저수지로 인해 쉰동골 일부는 수몰되고, 쉰동골 윗마을 세거리는 고립되었다. 산골의 길이 삼거리라서 동네이름도 세거리이다. 저수지가 없던 시절에는 화전민이 많았고 쉰동골 아이들도 세거분교를 다녔고, 상류인 세거리에서 오른쪽 산길은 홍천군 북방면으로 넘나들던 길목이었다고 한다.

원창저수지로 접어들어 원창2리에 가면 닭백숙을 파는 ‘윤서방네’가 있다.

궁금하지만 더는 갈 수 없는 길을 돌아 나와 닭백숙과 보신탕을 파는 ‘개울가집’과 ‘윤서방네’를 찾아갔다. ‘윤서방네’ 주인마님은 이곳에 산 지 20년이 되었고, 아이들은 모두 춘천 시내로 통학을 시켰다. 그때만 해도 찾는 손님이 많았는데, 지금은 여름 두 달 장사라 용돈이나 번다고 했다.

“아휴, 시내 나가면 못살아요. 조용하고 공기 좋고 이웃도 있고 맘이 편해서 여길 못 떠나요.”

‘개울가집’과 몇 년 전 ‘윤서방네’ 옆으로 이사 온 세 가구가 나란히 산다. 세거분교와 북방으로 넘어 다니는 길을 아느냐고 했더니 ‘개울가집’ 아주머니를 만나보라 권한다.

“나는 원창리 부녀회장이고, ‘개울가집’ 형님은 동산면 부녀회장이에요. 그 형님은 여기가 고향이고 계속 여기서만 사셨어요. 말씀도 재미나게 잘하셔.”

토박이 동산면 부녀회장님은 세거분교를 다녔다.

“대룡산 군부대 쪽으로 가다가 전망대 나오기 전에 수리봉 가는 길이 있어요. 그리 가지 말고 바로 아래 산길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쭉 가면 무슨 기도원인가 있거든. 거기가 세거분교 자리야. 거기서 북방 가는 길은 이제 없어졌지. 아마 딱 한 집인가 살거에요.”

대룡산 수리봉 분기점에서 세거리로 가는 임도와 기암절벽.

동창들은 1년에 몇 번씩은 보고 산다고 했다. 세거리는 사암리에 속하지만 쉰동골과 원창저수지와는 떼어 생각하기가 어려웠다. 대체 세거리는 어떤 마을이었을까? ‘곧 어두워질 텐데’라고 입으로는 걱정했지만 발은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사암리 군부대 나도냉이 꽃길에 잠시 눈길만 주고는 수리봉 갈림길까지 부지런히 왔다. 조금은 두려운 마음에 임도에 발을 들여놓았다. 맑은 대룡산 계곡물은 기암절벽들과 세거리를 지나 쉰동골 원창저수지로 흘러간다. 그리고 원창리, 군자리, 증리, 혈동리, 팔미리, 의암리를 거쳐 북한강으로 흘러간다. 원창저수지 수로를 통해서는 학곡리, 갈기리, 신천천에 합류해 공지천에 이른다. 마을은 아주 을씨년스러웠다. 건물들은 흉물스러웠고, 민가로 보이는 집 굴뚝에서 연기는 나지만 인기척은 없다. 깊은 숲이고 여자인지라 공포심이 들어 바로 자리를 떠났지만 세거리를 보게 되어 행복했다. 대룡산 정기 받은 것 맞다.

김예진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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