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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_터_view]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판 벌려볼 것”

문화인력양성소 협동조합 ‘판’ 오석조 대표

문화인력양성소 협동조합 판 오석조 대표. 강두환 시민기자
 
 한림대에서 사학을 전공하며 백제사를 연구하고 싶었던 청년. 학부 때 고대사 연구학회 활동을 했던 그 청년은 교내 노래패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학생회에 들어가게 된다. 학생회와 노래패 활동을 통해 박물관에서 일하고 싶었던 청년의 꿈은 변화를 맞이한다. 지역에 남아서 일을 하고 싶다는 것. ‘문화예술교육론’ 강의에서 뉴욕의 할렘가나 서울 홍대거리에 문화예술활동이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바뀐 사례들을 만난 후 청년 오석조(32)는 결심했다. 내 고향에 남자! 지역사회를 지키며 또래들을 모으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만들자! 춘천에서 재미있게 문화예술의 ‘판’을 벌여보자!
 
 청년들이 지역사회에 정착하기가 쉽지 않은 여건이다. 문화예술 분야는 더 어려울 텐데, 춘천에서 문화예술활동을 하는 데 유리한 점이 있었을까?
 
 내가 나고 자란 곳이기에 어디를 가도 내가 함께 한 이야기가 있는 거예요. 이런 익숙하고 친근한 고향을 등지고 굳이 타지로 나갈 이유가 없었어요. 둘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그런 뻔한 익숙함 때문에 일부러 대도시로 나가거나 반대로 그것이 좋아서 남는 친구들도 있죠. 춘천이라는 지역이 다양한 축제를 통해 문화적 소스가 많았던 것도 제가 창업까지 하게 된 좋은 여건이긴 했어요. 하지만 제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만들고 싶었어요.
 
 ‘문화인력양성소 판’의 대표를 맡고 있는데, 이름만으로는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잘 모르겠다.
 
 문화예술에 종사하고 싶어 하는 비슷한 청년들이 그 판에 끼어들 진입장벽이 참 높다고 생각했어요. 지방에서는 더 심하죠. 저처럼 전공도 아니면서 도전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서울로 나가지 않고도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내가 고향을 터전 삼아 문화예술로 놀고 싶어 남았는데 제 또래가 없는 거예요. 스스로 내 친구들을 만들자는 생각을 했죠. ‘판’의 사명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기획을 하는 거예요. 그 재미를 지역사회의 문제들과 엮어서 기획하고 풀어내보자. 그런 일을 함께 할 젊은 문화인력도 우리가 키우자는 것이 ‘판’의 미션과 비전입니다.
 
 회사를 세웠다고 해서 일이 술술 들어오진 않았을 터. 많은 중소기업들이 창업과 폐업을 반복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은 현상이다. 젊은이들이 어떻게 모였고, 간판을 건 다음에는 무슨 일을 먼저 했을까?
 
 ‘문화프로덕션 도모’라는 사회적기업에서 3년간 일을 배웠어요. 1년 정도 프리랜서로 일을 하다 처음에는 두 명이 먼저 의기투합했죠. 이후 4명이 모여 ‘문화인력양성소 판’을 창업하게 되었어요. 기술이 가장 기본적인 토대가 된다는 생각으로 기술팀에서 일을 익힌 덕분에 회사를 창업하고 처음엔 주로 기술적인 일들이 들어왔어요. 조명, 음향, 포스터 붙이기, 장비 나르기 등의 일들을 했죠. 그러나 저희가 추구한 것이 재미있는 판을 기획하자는 것이었기에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기술지원 쪽 일을 줄였어요.
 
 처음 맡은 기획이 춘천시에 제안해서 추진하게 된 ‘주지육림’이었어요. 그 다음이 원주 문화융성웅성포럼 공간조성사업이었죠. ‘주지육림도, 원주 문화융성웅성포럼 사업도 의미 있는 사업이었어요. 그 이후 가장 큰 계약 건이 평창동계올림픽 행사의 일환이었던 사회적경제상품관 사업이었어요. 3개월 간 진행된 억 단위의 입찰계약이었죠. 회사규모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당장의 경제적 어려움에도 본인들의 신념을 지키며 도전한 끝에 창업 3년차에 억 단위 계약을 따게 됐다. 현재 직원은 11명. 올해 비상근 인력 6명을 전원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가장 어린 직원이 24세고, 직원들의 평균연령은 27~28세. 오 대표는 선후배들 사이에서 신망이 높다고들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지금까지 당찬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쑥스러워한다.
 
 저도 도움 받은 선배가 많았어요. 동네방네협동조합을 먼저 이끌고 있던 선배를 많이 의지했고, 이전 직장의 대표님이나 문화예술을 고민하는 많은 선배님들의 솔선수범을 따라 했을 뿐입니다.
 
 ‘문화인력양성소 판’을 어떻게 키워내고 어떤 모습으로 정착시켜나가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다시 자세를 고쳐 앉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3년째 배움학교, 들개페스티발학교, 축제학교 세 가지 큰 사업의 인큐베이팅을 진행해왔어요. 저는 3단계 과정을 내다보고 있어요. 1단계 인큐베이팅 과정을 지나 전업을 고민하고 결심하는 단계에서 그 이후 과정을 어떻게 이끌어주느냐가 남았죠. 경쟁에서 버티는 힘을 키워주는 가속화의 단계까지가 ‘판’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경제로 접근해서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나 꿈만으로도 지원 가능한 사회적 기금, 펀드, 지자체의 지원 등을 통해 환경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지난해 ‘주지육림’ 행사 중 옛 육림극장 앞에서 ‘보여, 주지육림’을 둘러보고 있는 시민들.
 
 문화예술사업이 펀드, 기금, 혹은 지자체의 지원으로 진행되는 사업이 대부분인데, 특히 지역의 문화예술은 관 주도 사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것 같다. 자생력을 갖추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강원문화재단이나 춘천시문화재단처럼 관이 지역의 문화예술사업을 주도하고 있죠. 순수 민간단체는 현재 저희 ‘판’이 유일합니다. 저희도 처음에는 100% 문화재단 지원으로 사업을 진행했죠. 이후에는 50%, 그리고 지금은 자체 예산만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어요. 기금에만 의존하다 보면 거기에 매몰되기가 십상이거든요. 재미있는 것은 세 가지 축제학교를 진행하면서 활동할 청년들을 모집해 보니 청년들의 필요나 욕구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어요. 사람도 매번 바뀌고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하며 겹치지 않는다는 건 다양한 역할의 요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고민이 ‘판’이 해야 할 일인 거죠.
 
 문화예술분야 이외에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의견수렴이나 정책제안을 위한 활동을 해왔으리라 짐작했는데, 역시 소신 있는 답변이 돌아온다.
 
 요즘 선거시즌이라 청년 관련 정책포럼이나 토론 자리들이 많아요. 하지만 현재 선거공약들이 과연 질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것인지 의구심이 생겨요. 일단 주거문제는 아예 빠져 있어요. 세 명의 시장후보 공약을 살펴보니 공단 중심의 제조업에 편중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조업 중심이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인지 고민해주면 좋겠어요. 일자리 개수로 포장된 청년 일자리 창출은 현실성이 없어요. 청년들이 바라는 일자리 기준과 차이가 커요. 실제로 춘천에 거주하는 청년인구 중 춘천 출신이 거의 없어요. 주거문제가 빠진 청년 정주환경 조성은 공약을 위한 공약에 불과하죠.
 
 청년들의 고민과 애환은 전국적으로 비슷할 것이다. 전국 규모의 청년네트워크 구축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데, 벌써 활동계획까지 세워 놓았는지 말 떨어지기 무섭게 청산유수다.
 
 강원도청년네트워크에서 활동 중입니다. 강릉, 춘천, 원주 청년들이 모여서 3년차 활동을 하고 있죠. 올해는 저희 판에서 7월 스터디 투어와 8월 청년포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조급하게 진행해서 정책을 위한 정책을 만들지 않으려고 해요. 궁극적으로 리빙랩(Living Lab) 활동을 통해 성과를 분석해 보려고 해요. 그것을 바탕으로 필요한 정책을 제안도 해보고 사업도 구상해 보려고 합니다.
 
 시흥이 청년정책을 선도적으로 잘 하고 있어요. 청년활동에 참여했던 인력들이 실제 청년분과에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어서 청년중심 정책과 인큐베이팅 사례들도 알아보려고 해요. 대전은 우리 세 지역의 인구를 합친 것보다도 훨씬 큰 광역시인데, 고민은 비슷하더군요. 청년들의 문제는 인구나 도시규모에 따라 다른 게 아니었어요. 대전을 연구해 보면 뭔가 해결점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문화예술 분야에 종사하고 싶어 하는 청년들이 활동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고 무한한 성장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성장의 척도에서 보면 ‘판’은 좋은 일자리다. 그러나 지역에서 11명의 급여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최저임금을 조금 웃도는 급여만을 생각하면 주거비가 비싼 춘천에서 좋은 일자리가 아닐 수도 있다. 그가 요즘 청년을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뼈있는 한 마디를 던진다.
 
 저는 요즘 ‘청년’을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세대를 갈라놓고 고립시키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저 지나가는 과정인데 너무 청년을 강조하다 보면 질시와 적대의 대상이 되기도 하죠. 그것이 소통의 단절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봐요. ‘청년문화’, ‘청년기업’ 이런 어휘들이 그래서 불편해요. 취업사관학교로 전락한 대학의 문제와 그 문제를 양산하는 시발점인 초·중·고의 입시 경쟁구도가 먼저 개선되어야 하는 거죠. 다들 치열하게 살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 참 부지런해요. 돈도 벌고, 관계도 맺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고 봅니다.
 
 요즘 축제의 추세는 가족단위 체험이나, 관광형, 락페스티발, 콘서트 형식이 인기를 받고 있단다. 그에 비하면 춘천의 축제들은 가장 비주류 축제들이지만, 그 비주류를 세계적 축제로 진행하고 있고 민간 중심으로 이끌어 온 것은 춘천의 저력이다. 자기가 좋아하고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해 당당히 이야기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가고 있는 요즘이 위기를 기회로 맞을 시기라고 말하는 청년 오석조. 개인적인 영예보다 또래들이 공감하고 추구하는 삶이 현실이 되는 경험을 남겨주고 싶다는 그다. 꿈을 꾸지만 않고 이루기 위해 실천하는 오늘의 청년이다. 이 땅의 청년들과 그들의 꿈을 응원한다.

임희경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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