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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세상 ②] 장애의 미학

‘장애에도 아름다움이 있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해보자.

내가 시각장애인이라서 그런지 다양한 장애를 겪고 있는 친구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았던 것 같다. 농아인 친구도 있었고, 다리가 불편한 친구도 있었고, 휠체어를 타는 친구도 있었다. 함께 지내다 보면 그들에게 도움을 줄 때도 있었고, 도움을 받을 때도 있었다. 어떤 친구는 길 안내를 해주기도 했고, 어떤 친구는 책을 읽어 주기도 했다. 땅에 떨어진 물건을 찾아 주는 친구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도움을 준 것보다는 도움을 받은 것이 훨씬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시각장애를 지녔기 때문에 타인으로부터 도움만 받은 것은 아니다. 전구가 나간 공중전화 부스에서 난처해하고 있는 사람에게 거침없는 손놀림으로 전화를 대신 걸어준 적도 있었고, 프랑스 에펠탑의 야경을 보러 갔다가 캄캄한 밤에 말소리만 듣고서도 사진을 찍어줄 한국사람을 찾아 낸 것도 나였다. 시각장애인이 무슨 야경을 보러 가느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지만 꼭 눈으로 보는 것만 관광이 아니다. 발로 밟는 것도 관광이요, 다양한 외국인들 사이에서 왁자지껄하는 분위기를 느끼는 것도 관광의 한 부분이다.

내가 느끼는 장애인에 대한 생각은 여느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다를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보이는 것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상대가 뚱뚱한지 말랐는지, 피부색이 까만지 하얀지, 얼굴에 주름이 있는지 없는지, 얼굴이 잘 생겼는지 못 생겼는지 나에게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시각장애인인 내게 있어 보이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편견이나 차별이나 외면 같은 것들은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보이기 때문에 좋은 것도 있으나, 보이기 때문에 빚어지는 문제들도 많다. 흑백간의 갈등이나 노인이나 장애인을 향한 ‘묻지마 폭행’ 같은 일, 또는 내 집 주변에 특수학교 건립을 반대하는 일 등이 그러한 예일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뉴스로 접할 때면 보는 것으로부터의 자유가 갖는 장점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은 멋지고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기 좋아한다. 역으로 부자연스럽고 부조화스러운 것은 불편해하고 부담스러워하고 피하고 싶어 한다.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본능에 가까운 듯하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그 아름다움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작품이나 물건이지 그 대상이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사람의 아름다움은 외면보다는 내면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있어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보이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면 차라리 시각장애로 남는 것이 어떨지 모르겠다. 조명이 어두운 데에서는 모두가 미남미녀로 보인다고 한다. 그럴 것도 같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의 시력이 지금보다 조금씩만 약해진다면 그만큼 세상은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다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사람을 바라볼 때만큼은 시각장애인이 되어 봄이 어떨까?

우리는 사랑에 빠져 있는 연인에게 흔히 사랑에 눈이 멀었다는 둥 눈에 콩깍지가 씌웠다는 둥의 말을 한다. 그들은 사랑하기에 서로의 문제가 문제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리라. 모두가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조화를 이루어가는 세상이 아름답다. 나 자신이 소중하고 아름답게 보이고, 또 서로를 바라볼 때 아름답고 소중하게 보인다면 그 사람은 사랑에 눈 먼 사람이다.

나는 눈 먼 사람을 좋아한다. 특히, 사랑에 눈 먼 사람을 좋아한다. 그들이야말로 세상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이라 믿기 때문이다.

김호경
(목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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