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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째 마실 – 동면 품걸리] 초록물결의 오지 숲속으로 트레킹을 떠나다

소양강댐에서 동면 품걸리로 가는 소양호 물길.
 
 아침 8시 30분. 소양강댐 선착장에서 품걸리행 배를 탔다. 승객은 아무도 없었다. 아침햇살이 부서져 내리는 호수의 윤슬이 흩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스쳐갔다. 뱃머리에 앉아 온몸으로 맞는 바람이 몸과 마음을 가볍게 했다. 주변 산들의 녹음이 깊게 내려와 더욱 짙어진 초록물결에는 파란 하늘도 들어왔다.
 
 물길은 소양강댐 선착장에서 오전 8시 30분과 오후 4시, 하루에 두 번 열린다. 8시 30분 배는 품걸리-신이리-품안리, 4시 배는 품안리-신이리-품걸리 순으로 내려준다. 품걸리에서 소양강댐으로 나올 때에는 두 번째 배가 4시 40분쯤 품걸리에 도착하는 배를 타야 한다.

더덕밭에서 공동작업하는 마을사람들.
 
 40여분 만에 품걸리에서 내렸다. 이정표는 물론이고 그 아무 것도 없는 오지의 선착장에는 호숫가를 따라 고부랑 작은 언덕길이 마을로 향하고 있을 뿐이다. 언덕길의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부드럽다. 언덕을 넘어 초지를 지나면 품걸1리다.
 
 드문드문 집 몇 채와 더덕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봄내길 5코스는 소양호 나루터길이다. 12km 거리로 갈골을 지나 물로리 선착장으로 가는 구간으로 네 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국적인 광활한 초지. 그늘 한 점 없는 초지와 소양호변을 걷다가 임도에서 만나는 계곡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물로리 길에서 돌아 나와 품걸1리 ‘별마당펜션’이라는 2층집에서 김호성(63) 씨를 만났다. 마을 정보를 찾다가 ‘품안마을펜션’을 알게 되었고, 그곳을 통해 이장인 김씨와 사전 약속이 가능했다.
 
 “‘품안마을펜션’은 우리 모교에요. 품안초등학교인데, 품안리에 있던 걸 소양강댐이 생기고 품안리가 잠기면서 이쪽으로 옮긴 거예요. 우리 손으로 학교터를 다지고 그랬어요. 나는 학교 옮겨오기 전에 거기서 졸업을 했어요. 그때만 해도 학생이 360명이나 되는 큰 학교였지요. 여기서 4대째 살고 있는데 우리 손녀까지 하면 아이코~ 5대로구나!”
 
 김씨는 품걸1리 이장이자 우체부다. 소양호 선착장에서 배로 품걸리 선착장에 우편물을 내려주면 일주일에 서너 번 오토바이를 타고 산길을 오르내리며 택배니 우편물을 집집마다 배달한다. 때론 어르신들을 위해 우편물의 내용을 읽어주기도 하고 심부름도 해준다.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김씨는 마을 구석구석 집안 사정까지 속속들이 안다.
 
 “겨울엔 오토바이로 못가요. 그래도 지금은 길도 넓어지고 겨울에는 4륜차로 다녀요. 품걸1리에 스물대여섯 가구 살고, 품걸2리에 서른서너 가구, 그래서 60가구 정도 살아요. 품걸2리는 가리산 밑이라서 고랭지 채소를 많이 재배하고 우리 마을은 주로 더덕을 많이 심어요.

품걸1리 이장인 김호성 씨가 운영하는 ‘별마당펜션’ 안채는 옛 집의 구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대들보와 서까래가 반들반들 윤이 난다.
 
 김씨는 ‘별마당펜션’이란 이름의 민박집도 운영하고 있다. 아주 오래 전에 아버지를 도와 집을 지었다고 한다. 1969년에 상량식을 했다며 마룻대의 상량문을 보여주었다. 증개축을 한 ‘별마당’은 겉보기에 벽돌집이지만, 안쪽 방문을 여니 옛집의 보와 서까래가 반들반들 윤이 났다. 이 집의 역사가 천정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내 집도 아닌데 이렇게 숨 쉬는 보가 있어 고마웠다.
 
 “중학교를 가야 하는데 아버지가 이 집을 짓기 시작하셨어요.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고 집짓는 일을 도와야했어요. 중학교 유학은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소양강댐이 생기기 전에는 품걸리에서 배를 탄 후 부창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샘밭을 지나 춘천시내를 나왔다고 한다. 부창은 북산면 부귀리와 청평리 사이에 있는 고개 이름이다. 조선시대에는 부창역이 있었다. 북산면의 부귀천과 동면의 품걸리 물길이 합류하던 지점인데, 부창나루와 부창주막이 있었다. 원주나 홍천에서 화천, 양구, 철원을 가려면 ‘늘목재’를 넘어 부창을 거쳐서 갔다고 한다.
 
 “옛날에 어르신들 말씀이 학교까지 10리, 배터까지 10리였대요. 뱃사공이 강바닥을 삿대로 밀어 나룻배로 건네다주면, 부창까지 걸어가서 양구에서 나오는 버스를 타고 샘밭을 지나 시내로 나갔어요. 작은 장은 서부시장, 큰 장은 중앙시장으로 다녔는데, 장 한 번 보러 나가면 한나절이었어요.”
 
 객지로 나가본 적이 없는 김씨에게 마을의 내력과 학교가 펜션으로 바뀌게 된 사연, 마을사람들의 얘기를 듣다가 손님들이 방문하고, 시간도 너무 뺏은 듯해 다음에 놀러오겠노라 하고 홍천 야시대리로 향했다. 그 산길은 ‘봄내길’ 6코스로, 품걸2리로 가는 길이다.

‘봄내길’ 6코스에 놓여있는 벤치.
 
 자동차로 느랏재를 넘어 상걸리 낚시터에서 품걸리로 들어오는 임도가 있다. 마을이 궁금해질 무렵 ‘품안마을펜션’ 이정표가 남은 거리를 알려주었다. 품안마을 10km 남은 지점에 산 너머로 멀리 소양호가 보이는 전망대가 있다. 굽이굽이 산허리를 돌아 품걸리로 들어가는 임도를 보면서 그야말로 첩첩산중임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다.
 
 2000년 초에 이 길을 여러 번 지난 적이 있다. 임도 중간쯤 신이리와 품걸리 분기점에서 품걸리로 가는 길은 좁은 산길이었다. 그곳 길가엔 오미자가 주렁주렁 열려있었다. 처음 늘목재를 넘어 야시대리로 가는 산길에서 간간히 들리는 새소리는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더욱 적막하게 들렸었다. 깊어가는 가을 숲에서 하얗게 쏟아지는 계곡을 따라 불붙은 단풍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품걸2리에서 품걸1리로 가는 산길에서 바라보면 더덕밭이 차밭처럼 펼쳐져있다.
 
 품걸리는 사진작가 임재천 씨가 2010년에 ‘소양호 사람들’이란 전시를 하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최근엔 ‘문화커뮤니티 금토’와 춘천시가 함께 만든 ‘봄내길’과 ‘아빠 어디 가’ 방송으로 품걸리를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어느 기업체가 연수원으로 사용하던 학교터는 개인이 사들여 ‘품안마을펜션’으로 바꾸었다. 운동장에는 잔디가 시원스럽고 수영장도 있어 가족 단위 손님이 많다고 했다.
 
 품걸2리로 가는 초입의 산길에서는 품걸1리가 한눈에 보인다. 더덕밭이 차밭처럼 펼쳐지고, 숲길로 더 가면 봄내길 이정표와 벤치가 있다. 커다란 소나무 옆의 숲속 벤치는 안락의자보다도 편했고, 숨을 쉴 때마다 피톤치드향이 깊숙이 들어왔다. 꼭 한 번은 이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길 권한다.
 
 ‘봄내길’ 6코스는 세 길로 구분되어 있다. 옛 광산길을 따라 늘목정상에서 사오랑계곡을 따라 마을로 내려오는 코스, 품걸2리 방향으로 임도를 따라 더 가다보면 품걸1리로 내려가는 지름길, 그리고 임도와 능선구간을 지나 마을로 내려오는 길이다.
 
 일제강점기에 개발돼 ‘광산골’이란 이름으로 남아있는 가리산 남쪽의 중석광산은 폐광된 지 오래지만, 품걸1리에서 2리로 가는 임도는 당시 마을주민을 동원해 강제노역으로 만든 길이다. 당시 주민들은 대부분 화전민이었다. 임도 아래를 내려다보니 잣나무 숲이 빼곡하고 아득한 계곡 자락은 무명실타래처럼 풀어져있다. 딱따구리 구멍 파는 소리가 곡괭이 치는 소리 같다.
 
 짚신나물 꽃이 가련하게 바람에 흔들거린다. 초여름 한낮, 이 오지 숲에서는 잠시 숨 고르는 사이에도 이마가 서늘해진다. 산길을 거의 내려왔다 싶으니 왼편으로 전원주택이 아름다운 품걸2리가 보인다. 광산골 가는 길도 있다. 갈림길 아래 가리산교 부근에 장독대가 늘어선 아담한 학교가 있다. 옛 품걸분교는 몇 칸 안 되는 작은 건물만 남아있고, 장과 조청을 만들어 파는 집으로 바뀌었다. 운동장 입구에 1947년 품걸분교로 개교한 이래 2005년 가산초등학교로 통폐합되었다가 폐교된 상황을 알려주는 오래된 안내판이 있다.

품걸리 선착장. 이곳으로 오는 길은 소양강댐에서 오전 8시 30분과 오후 4시 두 번 열린다.
 
 여기부터 포장이 잘 된 길로 가리산교를 지나면 홍천군 야시대리다. 춘천까지는 30분 정도면 올 수 있다. 봄내길을 걷고 품걸1리나 물로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소양강댐으로 오는 뱃길여행도 신선하다. 선장으로부터 비슷비슷해 보이는 물길 사이로 보이는 골짜기 집들에 대해 듣는 재미도 좋았다. 신이리에서 탄 할머니는 새벽밥을 먹고 나와 시장하단다. 초코파이를 건넸더니 다음에 놀러오면 밥을 해주겠노라 약속했다. 듣기만 해도 배부르다. 대충 뜯은 푸성귀 쌈과 된장찌개를 상상하며 꼭 들르리라.

김예진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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