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사람들 / 人_터_view / [광복 73주년 특별 인터뷰] “할아버지를 잊지 않았으면 해요.”

[광복 73주년 특별 인터뷰] “할아버지를 잊지 않았으면 해요.”

단재 신채호 선생 증손녀 신효지 양

단재 신채호 선생의 증손녀 신효지 양.
사진=김예진 시민기자
 
 《춘천사람들》이 광복 73주년을 맞아 단재 신채호 선생의 증손녀 신효지(여·18) 양을 만났다. 러시아 모스크바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는 신양은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한 ‘재외동포 청소년 모국연수’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달 잠시 한국을 방문했다. 마침 춘천에도 들러 신사우동 ‘청소년문화의집’에 머문다기에 그곳에서 신양을 만나 단재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편집자 주]
 
 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은 그 정체성이 다양하다. 선생은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에서 논설위원과 주필로 활동한 언론인이었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 이후 일본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이듬해인 1910년 중국으로 망명한다. 그곳에서 우리 역사의 주 무대가 만주벌판이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역사적 고증을 통해 전 국민적 각성을 도모한다. 이전에도 《독사신론》을 통해 민족사학의 효시를 알렸지만, 실제 우리 역사의 흔적을 확인하고 추적한 것은 중국으로 망명한 이후의 일이다. 언론인에서 역사학자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당시의 존화주의적 사상과 일제의 식민사관 앞에서도 선생은 민족의 역사적 반경을 흑룡강성(헤이룽장성) 부근까지 넓혀놓았다. 무엇보다 선생은 항일 독립운동가였다.
 
 “영어로 이야기하는 게 가장 편해요.”
 
 국제학교를 다니고 있는 신효지 양은 영어와 러시아어, 한국어까지 3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선생의 증손녀라는 이미지를 너무 무겁게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첫 만남의 신양은 야무지고 앳된 얼굴의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지난달 23일 연수차 한국에 온 신양은 춘천이 시골이라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도시에 가까워서 놀랐다고 한다. 한창 더울 때라 불편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음식도 입에 잘 맞고 지내기도 편하다고 했다.
 
 신양의 아버지는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 탓인지 그녀도 대학에 진학하면 비즈니스 관련 공부를 해 사업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증조할아버지인 선생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단지 신채호 선생의 증손녀라는 사실만으로 한국에 와서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게 좀 신기하긴 해요.”
 
 인터뷰를 하는 그녀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미 여러 매체와 장시간의 인터뷰를 가졌기 때문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후손이라는 사실만으로 주변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 열여덟의 소녀에게 너무 지나친 관심을 보인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제가 스스로 뭔가를 이루어낸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가 대단한 분이셔서 이런 인터뷰를 하고 있지만, 저도 뭐든지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어요.”
 
 그녀는 러시아에 살면서 한국을 대표한다는 생각으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까운 러시아 친구들에게는 한국의 문화를 안내하거나 한국어를 알려주기도 한다. 그런 그녀의 러시아 생활은 어떨까? 그녀는 러시아 친구들이 한국가수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며 웃는다. K-POP 열풍 덕에 러시아 친구들도 한국문화에 대해 호기심이 많다. 그래서 현재 러시아 친구와 함께 유튜브나 브이로그에 올릴 영상을 구상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한국에는 러시아를 알리고, 러시아에는 한국을 알리는 가교역할을 하고 싶다. 그녀는 가수 EXO를 좋아하고 TV프로그램은 ‘고등 래퍼’를 좋아한다.
 
 얼마 전 러시아 월드컵이 끝났다. 외국인들로 붐비고 거리는 축구열기로 신나는 분위기였다. 그녀는 어느 나라를 응원했을까? 한국과 러시아가 경기를 하게 되면 어디를 응원하겠냐는 다소 유치한 질문에 그녀는 크게 웃으며 “한국”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러시아 팀에도 많은 격려를 보낼 것이라고 했다. 한국과 러시아를 모두 사랑하는 그녀다.
 
 “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라고 생각합니다.”
 
 증조할아버지에 대한 질문에 짧게 대답했지만 의미는 충분했다. 그녀는 연수기간 중 독립기념관에서 독립운동과 관련된 연극을 관람했다. 극을 보면서 일제강점기의 녹록치 않은 상황 속에서 독립운동을 하신 할아버지가 떠올랐고 정말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아직 읽어보지 못한 《독사신론》도 곧 읽어 볼 계획이다.
 
 “할아버지를 잊지 않았으면 해요.”
 
 그녀는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독립운동을 한 모든 사람들을 오랫동안 기억했으면 한다는 어른스런 소망을 내비쳤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는 단재 선생의 당부를 그의 증손녀의 입에서 전해 들으니 감회가 남달랐다. 평생을 바쳐 나라의 독립을 위해 살다 간 할아버지도, 그리고 수많은 독립운동가들도 모두 우리의 역사이기에 미래를 위해 잊지 말아줬으면 한다는 그녀의 바람이었다.
 
 “역사는 애국심의 원천이라. 고로 사필(史筆)이 강하여야 민족이 강하고 사필이 무(武)하여야 민족이 무(武)하는 배이어늘….” 《단재 신채호 전집 4권 ‘역사’》
 
 선생이 남긴 말이다. 구국을 위한 영웅의 탄생을 기다리며 민중을 격려하고 각성시키는 한편, 역사 속 영웅들의 활약을 통해 과거를 재인식하려는 선생의 애국과 애민이 진하게 느껴진다. 독립 운동가이자 역사학자, 언론인이자 문인으로서 평생을 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썼던 단재 신채호. 살아생전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이국 땅 뤼순에서 옥사했으나, 선생의 역사관과 애국정신은 여전히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배정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