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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번째 마실 – 북산면 조교리] 원시림을 간직한 오지마을 계곡으로 떠나는 마실 여행

중밭골 계곡의 작은 계곡.
 
 춘천IC에서 동홍천IC로 빠져나와 인제 방면 44번 국도를 탔다. 누리삼 마을을 네비에 검색하니 소요시간이 한 시간 걸린다고 나온다. 이번 춘천마실은 여행이나 다름없다. 철정삼거리를 지나 약 10km쯤 가면 원동리로 이끄는 이정표가 있다. 좌회전을 하면 원동2리를 지나 한적한 홍천고개를 구불구불 넘어야 한다. 뿌리가 얕은 여름 들꽃들이 속이 타서 잎이 누렇게 변한 상태에서 모가지를 떨굴 때, 극심한 여름가뭄에도 뿌리 깊은 칡덩굴은 넓은 잎을 부채처럼 펼치고 길가로 휘휘 커튼처럼 드리우며 싱싱한 칡꽃을 뽐내고 있었다.
 
 드문드문 집들이 보이기 시작하니 길옆으로 조교리와 물로리 안내도가 서 있다. 지나는 차들이 거의 없어 길 한가운데에서 마을지도를 살폈다. 길은 매우 단순했다. 안내도를 조금 지나면 왼편으로 물로리 가는 길이 있고 개천을 따라 원동조교로를 타고 직진하면 보건지소가 있는 곳이 조교1리, 누리삼 마을은 배터가 있는 조교2리.
 
 물로리 가는 삼거리를 지나니 곧 조교보건지소가 있다. 지소 길 건너에는 폐교된 조교분교가 있다. 학교 입구 정자 지붕에는 조교리 방범기동순찰대라는 간판이 있다. 운동장은 제초작업을 했지만 노랗고 빨갛게 칠한 페인트가 곳곳이 벗겨지고 건물 옆 벤치와 가지에 다닥다닥 열린 배나무는 사람 손이 닿지 않은 지 오랜 듯했다. 학교 앞 버스정류소는 좀 신기했다. 버스에 번호가 없었다.

상천초등학교 조교 분교.
 
 “우리 동네는 버스라는 게 없었어요. 마을버스가 생긴 지 몇 년 안 돼요. 얼마나 좋은지 몰라. 원래 여기 조교1리는 홍천고개로 막힌 산골짜기였어요. 소양댐 아래 마을이 거지반 잠겨서 그렇지 그 전에는 그쪽이 아주 들이 넓어 메밀을 많이 심었어. 사람도 많이 살았지. 전쟁 끝나고 홍천고개를 공사한다더니 소양댐 들어오고는 그것도 하다 말았어. 그러니 내내 배로만 다녔지. 물길만 있고 찻길이 없으니 산고개를 겨우 넘어서 두촌 오일장에 나가기도 하고 물건 파는 트럭이라도 오는 날엔 동네사람들이 다 반가워했지.”
 
 보건소 앞을 지나는 할머니의 말씀이었다. 살갗이 따갑고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흐르는 터라 말을 더 잇기도 미안했다.
 
 처음 와 본 마을이라 길을 따라 곧장 갔더니 나루가 나왔다. 선착장에는 보트가 두어 채 있었고 소양호를 무대로 넓게 펼쳐진 절벽 숲과 건너편 초지 사이로 뭉게구름이 호수에 떴다. 이런저런 도시의 아우성들로 찢어질 듯 예민했던 귀가 너무도 적막해서 먹먹해지더니 먼 데서 들리는 “구구구구” 촌스런 산비둘기 소리를 따라 흉내를 내는 내 소리를 들으니 귀와 입이 다 순해진다. 반딧불이가 날고 별이 쏟아지는 무애골 골짜기에서 하룻밤 묵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배터 바로 위에는 ‘누리삼’ 마을 휴양지가 있다. 건강과 장수, 행복을 누리라는 의미와 마을 특산물인 삼을 널리 알리고픈 마음을 담아 명명한 누리삼 마을휴양지는 소양호와 노송이 내려다보이는 숲 언덕에 숙박시설을 갖추고 계절별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봄엔 산과 들에 퍼져 있는 산나물을 채취하고 봄기운 물씬 담은 산채음식도 맛 볼 수 있는 산촌음식축제가 있고, 여름엔 쏘가리 잡기 체험과 산골 작은음악회가 열리고, 가을에는 숲트레킹도 그만이지만 마을의 특산품인 장뇌삼 체험도 특별하다.

누리삼 마을 휴양지.
 
 마을 체험장 위에 무애골 가는 삼거리가 있다. 계곡으로 향한 가파른 길은 겨우 차 한 대만이 지날 수 있고 소양호로 흘러드는 무애골 계곡은 수 km나 이어진다. 두 달 동안 거의 비가 내리지 않아 수량은 적었지만 몸을 담그기엔 충분하고 곳곳에 깊은 웅덩이도 제법 많다. 길이 매우 협소해서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은데도 노는 곳 가까이 주차하는 이기심으로 좁은 길은 더욱 불편했다. 계곡 하류에 마을에서 만들어 놓은 주차장은 오히려 텅 비어 그곳에 텐트를 치고 야영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원래는 야영 취사가 안 되는 곳인데 한여름에는 막을 도리가 없어요. 제발 설거지 하지 말고 쓰레기만이라도 가져가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다니지요. 며칠 전에는 음식을 해먹고 남은 기름을 물에 버리는 몰지각한 사람들이랑 한바탕 했어요. 밑에서 놀던 아이들이 머리에 기름이 묻었다며 기겁을 하고 찾아온 거예요. 도리어 큰소리 치고 대드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럴 땐 신고하는 수밖에 없어요.”
 
 맘씨 좋은 김동준(59) 이장은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 김 이장은 4대째 현재의 집에서 살고 있다. 집 바로 아래 계곡에 발 담그고 물놀이하는 아이들 웃음소리처럼 반짝이는 햇살을 흘려보내며 이장의 이야기를 한참 들었다. 김 이장은 지금은 소양호 100m 수심에 자리한 초등학교를 다녔었다. 집이 멀어서 조교분교로 전학을 했다. 현재는 마을아이들 몇이 두촌초등학교를 다닌다. 초등학교는 스쿨버스를 운행하지만 중학교는 마을버스를 이용한다.

조교2리 이장 김동준 씨.
 
 “지정 정류소가 있기는 해도 마을버스 기사 두 분이 다 마을 주민이다 보니 길 아무데서나 서요. 어르신들이 생필품을 부탁하면 사다 주기도 하고요. 조교2리는 23가구 정도 되는데 10가구 정도는 도시사람들이 주말주택으로 사용하고 대부분 삼 농사를 지어요. 농지는 다 수몰되고 화전도 못하게 되니 농토도 줄고 인구수가 급감했어요. 게다가 소양댐이 생기고는 소양호의 찬 냉기로 안개가 많고 팥이나 콩이 꼬투리는 달려도 열매가 여물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주로 우리 마을은 산채나 장뇌삼을 많이 해요.”
 
 한창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계곡에서 놀던 한 사람이 다가와 김 이장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김 이장의 막내동생과 동창이었고 여름휴가를 왔단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살았는데 그때가 너무 그리워요. 버스도 없고 어디 갈 데도 없었지만 바로 여기 이장님네 이 개울이 우리 놀이터였어요. 그땐 반딧불이가 어찌나 많았는지 몰라요. 다슬기, 물고기 잡고 헤엄치고 겨울에는 개구리 잡고 얼음판에서 놀고요. 해질녘에는 이 개울가로 엄마들이 ‘밥 먹어라’ 하며 부르러 오셨죠. 그때를 생각하면 늘 행복하고 우린 이런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어서 복 받은 거예요.”
 
 그녀의 가족들이 노는 모습을 보며 흐뭇한 마음으로 길을 다시 나섰다.
 
 선착장에서 걸어서 20분쯤 걸어 계곡을 따라 길을 거슬러 오르면 매봉 등산로 입구에 이른다. 계곡 아래 조교2교를 건너 조금만 지나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이 중밭골 가는 길이고 오른쪽 계곡은 무애골로 이어진다. 조교2교 주변에는 피서객이 많았다. 무애골 방향으로 조금 더 오르니 숲길도 계곡도 온통 그늘이 진 한적한 곳에 홀로 노인이 발을 담그고 있었다.
 
 “아휴, 집이 화로 속 같이 달아서 선풍기를 돌려도 뜨거운 바람이 나오니 피서 나왔어요. 혼자 사니 혼자 와야지요.”
 
 조교1리에 사는 전영길(76) 어르신은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었다. 쪄온 옥수수 한 개를 건네며 말을 잇는다.

나홀로 피서를 나온 전영길 씨.
 
 “댐 생기기 전에는 조교1리에 80~90여 호가 있었지요. 어른들 말씀이 왜정 때는 최씨네가 이 마을 땅을 대부분 가지고 있는 큰 부자였는데 그 집 품을 팔아야 점심이라도 얻어먹으니 그 집 농사짓고, 남은 시간에 작은 화전이라도 일구니 농사도 제대로 안되고 늘 곡식이 부족해서 빌려다 먹고 농사지어 곱절로 갚거나 품 팔거나 했대요. 우리 때도 별반 사정은 좋지 않았어요. 그래도 우리는 땅이 조금 있어서 화전민들 이주할 때도 고향에 남았지. 우리집도 가난해서 짚으로 초가를 못 올리고 산에 가서 사초를 베어다가 이엉을 올렸지. 1년에 한 번씩 하는데 마을사람들이 품앗이로 하는 거지. 그때는 없이 살아도 집집마다 먹을 것 나누고 가족이 없으면 들여다 봐주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런 게 참 아쉽지. 그래도 시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반찬을 가져다주니 그건 참 고마워.”
 
 잠시 땀을 식히고 무애골에서 내려와 중밭골로 향했다. 이곳은 출입통제구간이다. 이장의 도움을 받아 비밀의 숲으로 들어섰다. 인적이 드문 숲길에는 맑은 대쑥이 허리만큼 웃자라고 풀섶 사이로 원추리와 마타리가 수줍다. 노송과 어우러진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우거진 그곳은 원시림이었다. 개울 건너기를 십여 차례, 가물어서 바닥을 기는 개울물에서 기대했던 검푸른 소가 나올까 싶었는데 선녀탕이 눈앞에 펼쳐쳤다. 계곡을 따라 2km쯤 더 올라가니 작은 폭포아래 깊은 소와 넓은 자갈밭이 무릉도원이었다. 어느 골짜기로 들어서든 매봉 정상으로 연결되지만 중밭골 쪽 숲길이 길고도 아름답다. 이 길은 북산면 대동리와 인제군 수산리로 이어진다. 아무도 없는 원시림의 한가운데에서 깊은 소에 몸을 담그고 싶지 않은가!

김예진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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