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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무용하는가 ⑤] 무용언어와 일상언어

시(詩)를 공부하면서 부딪쳤던 문제 중의 하나는 시어(詩語)와 일상 언어의 구분이었다. 과연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시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문제였다. 답을 얻지 못해 지금도 계속되는 이들 물음은 도리어 시를 이해하고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는 초석이 되고 있다.
 
 무용을 공부하면서 동일한 문제에 봉착했다. 신체언어를 사용하는 무용에 있어 무용움직임과 일상움직임이 따로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두 움직임이 구분될 수도 있고 구분할 수도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 문제를 놓고 반복적으로 고민을 한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움직임이 무용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반드시 넘어야할 중요한 고개였다.
 
 나의 따뜻한 무용스승에게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승은 몸소 동작을 보여주면서 신체 언어에 대해 설명을 주셨다. 내 앞을 가로질러 걸으면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특별한 게 없었다고 했다. 이번에는 나를 이끌고 무대가 있는 곳으로 가서 이번에는 무엇을 보았느냐고 했다. 나는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하겠다고 했다.
 
 스승은 동일한 동작을 보여주었고 거리와 무대라는 차이 외에는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었던 나는 쉽게 같은 동작 아니냐고 답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실은 배경 차이 말고 스승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나의 심리적 자세가 다르다는 걸 어렴풋이 감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작품에 대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지 미처 깨닫지 못했기에 간과했던 것이다.
 
 스승은 자분자분 설명하기 시작했다. “길거리에서 보여준 동작은 우리의 일상 동작이었다. 매일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무대에서 보여준 동작은 동작하는 사람이 심리적으로 다르다. 자신의 움직임에 의미를 지녔기 때문에 신체 각 부위의 움직임이 예민하다. 허튼 움직임이나 막연한 동작은 없고 모두 세밀하게 훈련된 것들을 보여준 것이다.”
 
 비로소 나는 일상움직임과 무용움직임이 같으면서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움직임들을 구분하고 경계 짓는 것이 무용만의 특정한 동작을 만들어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움직임을 예술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리려는 의도가 담겨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하여 ‘일상을 예술화’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깨닫게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분주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움직임에 대해 그리고 그것에 매몰되어 부수적으로 동작하는 우리의 신체에 대해 새롭게 의미를 찾아주고 그들의 연속적인 움직임이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게 하는 것이 무용의 궁극적인 목표다. 무용은 우리의 신체와 움직임을 일깨워 일상의 가치를 깨우치게 하는 예술적 가르침이다.

이정배 (문화비평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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