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은 학창시절 그림을 무척 잘 그렸다. 하지만 미대 진학을 꿈꾼 적은 없었다. 4대째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기에 부모님은 아들이 신학대에 진학해 목회자가 되길 바랐다. 어려서부터 ‘목회자의 길’이 당연하게 정해져 있었기에 자신도 다른 진로를 맘에 품지 않았다.군대는 정훈장교로 복무했다. 전역 후엔 부모님의 바람대로 목회자가 되어서 한동안 교회 강단에 섰다. 교계 매거진 출판업도 10년 넘게 했다. 모든 활동에 진심인 그에겐 모든 게 본업이다. 부모님이 바라는 아들로도 살았고 가족에게 성실한 가장으로도 살았다. 인생 2막에 들어선
김재덕은 지난 8월 15일 오전 9시부터 4부작으로 송출되는 TBN 강원교통방송의 뮤지컬 형식 라디오 웹드라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작품에 작곡가 겸 음악감독으로 참여했다. 한서 남궁억 선생에 관한 이야기라 광복절에 걸맞은 작품이었다. 또한, 9월부터는 춘천에서 활동하는 연출가 장혁우와 함께 대학로에서 뮤지컬 ‘썸데이’를 1년 동안 올릴 예정이다. “음악 작업의 가장 큰 장점은 자기 자신에 대한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존재에 대한 인식을 대화 없이 전달할 수 있고 감정의 공유가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죠.” 춘천에서 음악
삶은 가끔 예상치 못한 길을 스스로 만든다. 김윤정은 둘째 아이가 발달장애가 있다는 걸 알고 나서 삶의 진로가 확연히 바뀌었다. 이전까지 학생들을 만나고 연구를 하던 그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장애인의 삶에 관심을 두게 됐고, 장애인의 삶은 비장애인의 삶과 분리돼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를 초등학생에 입학시키고 나니 덜컥 겁이 났다.그러다 그가 찾아간 곳은 대구의 안심마을. 장애인과 비장애인 학생들이 통합교육을 하고 마을 안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곳. 가족들과 다 같이 찾아간
동내면 거두리에서 한국무용 전문학원인 ‘흩무용학원’을 운영하는 김유희는 한국무용이 춘천 시민들에게 쉽고 친근하게 다가가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1994년생인 그는 세 살 때부터 민요와 장구를 배웠고 여섯 살에 국악학원 선생님의 권유로 한국무용을 시작했다. 이후 내내 한국무용 한길만 걸으면서 한국무용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전파하고 싶어 지난해 8월 대학 동기와 함께 ‘흩무용학원’을 열었다. 그는 현재 강원대 공연예술학과 박사과정 중에 있다.“대학 졸업을 앞두고 고민이 좀 됐어요. ‘내가 한국무용을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그러나 결국엔
일찌감치 시설을 갖추고 오픈준비를 마친 강촌 구곡폭포 캠핑장은 코로나19 여파로 이제야 조금씩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다. 뒤늦게 입소문을 탄 구곡폭포 캠핑장의 홍보 주역은 춘천도시공사 직원인 캠핑장 지킴이 김영준. 이용객마다 직원이 참 친절하고 꼼꼼하게 잘 챙겨준다며 호평하게 만드는 비결이 궁금했다.“저도 전문적인 캠핑족은 아니에요. 여기서 근무하기 전까지는 사실 호캉스를 더 선호했는걸요. 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어떻게 하면 이용객들이 더 편안하게 쉬다 갈 수 있을까 고민하고 먼저 체험해 보면서 챙겼더니 이용객들 만족도도 높
‘인테리어 언니’ 김연희는 학교 졸업을 앞두고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VMD(Visual MerchanDiser) 아카데미를 등록하고 디스플레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다 운 좋게 나이키에서 일하게 되었다. VMD는 매장 콘셉트에 맞춰 매장 전체를 꾸미는 일이다. 전국에 있는 나이키 매장을 꾸미다 VMD의 끝판왕이라는 인테리어 부서까지 갔다. 학사를 취득할 때쯤 결혼하고 남편의 직장이 있는 춘천으로 왔고 아기도 생겼다.VMD를 할 때의 경험을 살려 블로그를 시작했다. 지인이 만든 옷이 예뻐서 블로그로
김수림에게 춘천은 ‘ㅈㅈ’ 그 자체다. 고통과 불행으로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힘든 시절을 보냈다. 우연히 들른 친구의 작업실에서 노래하는 순간 새로운 우주가 펼쳐진 것 같았다. 그것을 계기로 예술 활동을 시작했다. 글을 쓰고 노래를 만들면서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괴로운 기억으로 가득한 춘천을 떠나고 싶었지만, 과거의 일들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글을 쓰고 노래하지 않았다면 복수심으로 가득한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이다.대학에 진학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예전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1990년대 초반 어린이 전문서점이 생길 무렵이었다. 김성란은 직접 어린이 전문서점을 운영해 보고 싶어 1993년 부안초 앞에서 10년 동안 ‘동화나라’라는 서점을 운영했다. 2006년 어린이도서관을 만들자는 제안에 따라 ‘어린이도서관건립추진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그것을 인연으로 2008년 ‘담작은도서관’을 개관한 이래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도서관은 책을 빌려주는 곳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인식이 바뀌어 도서관은 책을 빌리거나 공부하는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해 여러 활동이 이루어지는 재미있는 공간으로 탈바꿈
“위 사람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빠짐없이 자연과 하나 되고, 지구와 하나 되는 흙길 맨발 걷기 100일(2023.4.10.~ 2023.7.19.)을 완수하였으며, 그 100일간의 노력으로 스스로 감동받아 나의 꿈과 가치와 자신감이 폭풍 성장하였으므로 그 정성을 기리어 내가 나에게 상장을 주어 칭찬합니다. 2023년 7월 19일. 작은 것의 꾸준한 실천이 기적을 만든다. 스마일 김선희.” ‘맨발 걷기’ 100일째 되는 날, 김선희가 자신에게 수여한 상장에 쓴 글이다. 춘천문화재단 문화도시 조성사업의 하나로 추진 중인 ‘20
‘모두의 살롱’에서 김선미를 만났다. 빈집을 재생해 조성한 커뮤니티 공간인 ‘모두의 살롱’은 회의실과 공유 부엌, 테라스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누구나 자유롭게 대여해 사용할 수 있다. 그는 ‘모두의 살롱’ 프로그램 ‘아침마당’의 ‘작심한달’에 참여해 매주 토요일 8시에 걷고 뛰었다. 익명으로 만난 벗들은 정이 두터워지면서 ‘로망실현’ 프로그램까지 함께하게 됐다.남편 직장 때문에 7년 동안 주말부부로 지내다 아이들 교육 문제로 2년 전 춘천으로 이사했다. 처음에는 춘천에서 이웃들이 장애 아이에 대해 직설적인 화법으로 묻는 게 많이
완도가 고향인 김상나는 중학교 시절까지 완도에서 보낸 뒤 서울로 전학해 1995년 강원대 무용학과에 1기로 입학했다. 춘천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졸업 후 지금까지 25년 가까이 춘천에서 활동하고 있다.무용학과에 처음 들어갈 때만 해도 아는 선배도 없이 밤늦은 시간에 12시까지 연습하고 또 다음 날 아침 7시에 다시 나와 연습을 반복하는 생활이 무척 힘들었다. 그렇게 무용학과를 졸업한 뒤 학교에서 예술강사로서 아이들에게 무용도 가르치고 무용단원으로도 활동했다. 2010년 무용단 ‘김상나댄스프로젝트’를 창단해 대
무대감독 김빛나는 극장 세팅은 기본이고 공연 일정 조정과 안전 관리까지 맡고 있다. 이 일을 하기 전에는 연극을 했다. 삼인조 극단을 구성해 작품을 만들었지만, 영세한 살림에 스태프를 따로 고용할 수 없어 극단 내에서 일을 도맡아 했다. 일을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우고 관리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공연예술 전문스태프 아카데미 ‘막’을 알게 돼 열심히 참여했다. 열심히 하다 보니 공연예술전문스태프협동조합 ‘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작품을 만드는 것이 재밌어요. 하고 싶었던 일을 하니까 만족도도 높아요. 다만 일의 강도가 높은
김병찬은 춘천 출신의 영상제작 프로듀서다. 한림대 디지털미디어콘텐츠 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해 공급하는 ‘플로잉미디어’에 재직 중이다. 수자원공사에서 실시한 영화공모전에 ‘바다에게’라는 제목의 독립영화를 출품한 경력이 있다.그에게 춘천은 끝없는 청춘과 같다. 태어나 지금껏 살아온 곳이고,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춘천사람이다. 그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사람에게서 에너지를 얻는다고 말한다. 그도 마찬가지다. 가족과 친구 들을 통해 늘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는다. 언제나 변함없이 아름다운 공지천의 노을을 닮은 춘천은, 그래
김민혜는 밝다. 무대에 서는 걸 좋아하고 사람을 만나 춤을 알려주는 걸 좋아한다. 무용을 배우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기꺼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걸 공유하려 노력하고 교감한다. 그는 무용이 낯선 사람들이 무용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가 7년간 무용을 강의하면서 알게 된 건 단 한 명도 무용이 어려워서 못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무용을 접하고 생각보다 쉽고 너무 즐겁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몸을 움직인다는 두려움을 기쁨으로 바꾸는 게 그의 일이다.“사실 한국무용을 취미로 갖기는 어렵잖아요. 어
어릴 때부터 그림에 흥미가 많았지만 다른 길을 걸어야 했던 김민지는 2년 전 춘천 토박이인 남편을 따라 춘천으로 왔다. 맛난 빵집을 찾아 사람들에게 소개하다 보니 자연스레 인스타툰을 하게 됐다.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춘천댁 J’로 활동하는 그는 더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 그림 실력과 이야기 발굴에 더 매진하고 있다. 김민지는 어릴 적부터 그림에 흥미가 많았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친구들과 떡볶이를 사 먹을 돈으로 그림 재료를 사 모았고, 유행하는 드라마를 볼 시간에 그림을 더 잘
춘천에서 나고 자란 김민영은 청소년 시기에 학업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자신이 돋보이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누군가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진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들어주고 알려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방송 분야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론적인 것보다 현장 경험을 더 하고 싶다는 생각에 예능프로그램 방송 작가에게 메일을 보내 방송 작가의 길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기도 했다.카페 서빙이나 물류센터에서 생계형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에도 문화예술 분야나 방송·영상편집·글쓰기 등에 꾸준히 관심을 가졌다.
20년 동안 세 아이의 엄마로 전업주부로 살던 김라윤이 라인댄스 강사가 된 것은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21년의 일이다.“원래는 취미로 라인댄스를 하고 있었어요. 코로나가 터지면서 홈플러스 문화센터가 문을 닫자 같이 댄스를 하던 분들이 그럼 우리끼리라도 모여서 연습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셨어요. 그게 시작이 되어 자격증을 따서 강습을 시작했죠.”그에게 코로나19는 기회였다. 주민센터도 문화센터도 다 문을 닫자 갈 곳 없는 수강생들이 그를 찾아왔다. 틈새시장이 생긴 것이다. 비대면 수업의 필요성도 느껴 영상을 찍었고 그러
10년간 교사로 지내며 학생들을 만난 김다인은 아이들에게 중요한 건 무엇보다 정서발달이라고 생각한다.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고. 학교에서도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했지만, 더 깊게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지는 못해 늘 아쉬웠다. 교사로 일하면서도 스스로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누군가는 그냥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어떤 일에서든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학교 밖에서 아이들의 정서발달을 지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답을 얻었다. 10년간 학교에서 최선을 다하고 열의를 다해 아이들을
차 없이는 이동이 불편한 요즘이다. 물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생업이나 직장 생활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기본적으로 운전면허증을 취득해야 한다. 김남은은 춘천에서 초·중·고를 나와 자동차운전 전문학원에서 학감으로 일하고 있다. 전반적인 학원의 운영과 경영은 물론 강사와 수강생 관리가 그의 주된 일이다.이제 춘천에 남은 자동차운전학원은 단 두 곳뿐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학원이 없는 게 장점이기도 하지만, 학원이 잘 운영된다고 오래 꾸준히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일은 내가 좋아해서 즐길 수 있어야 하고, 일과 삶의 균형이
자전거 마니아 김금식은 춘천으로 주거를 옮긴 지 올해로 13년이 되었다. 자전거 대여점 ‘오후oho’를 운영하며 홈페이지 제작 일을 병행하고 있다. 춘천으로 이사하면서 학창시절부터 종종 탔던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했다. 자전거가 좋아서 시작한 자전거 대여점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퇴계동, 공지천을 가로지르는 효자교 근처에 있는 자전거카페 ‘오후oho’의 주인장 김금식이 직장을 그만두고 자전거 대여점을 시작한 건 2015년이었다. 학교에 다닐 때부터 자전거를 타긴 했지만, 2010년 춘천으로 주거를 옮기면서부터 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