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풀렸다. 춘천으로 이주하여 열 번째 맞는 봄이다. 춘천의 사계가 적응하기 어려웠는데 이제는 견딜 만하다. 겨울이 끝날 즈음이면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에 윤기가 느껴져서 좋다. 겨우내 꽝꽝 얼어 단단했던 얼음이 풀리면서 사람들의 마음도 풀리는 것 같다. 강변을 산책하면서 만나는 나무들의 물오르는 모습도 좋다. 이제는 제법 설레며 봄을 기다린다. 껀터를 떠나 이곳에 와서 만난 첫 계절은 겨울이었다. 눈 쌓인 길을 따라 들어간 골목 안 끝 집, 겨울 햇살이 길게 들던 어머님 방에는 붉은 꽃이 피고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인
갑진년 새 학기가 시작되고 며칠 되지 않은 지난 7일 인천 송도에서 GTX-B 노선 착공식이 열렸다. 동시에 GTX-B 춘천 연장에 대한 환호의 현수막이 시내 곳곳에 걸렸다. 춘천의 ‘수도권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수도권 시대’라는 구호에 만감이 교차한다. 모든 지역이 수도권이 될 수도 없고 되어야 할 이유도 없다. 부를 추구하는 건 인지상정이니 GTX-B 춘천 연장 자체는 환영할 만하더라도 지역의 주체성을 잃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사대주의와 관련하여 합종연횡의 중국 고사가 떠 오른다. 진나라가 강성해지자 진을 제외한 나머지
조국혁신당의 돌풍이 예사롭지 않다. 캠페인은 선명하고 군더더기 없으며 언어는 정갈하다. 듣도 보도 못한 ‘괴랄한’ 정권과 그 주구走狗들이 내뱉는 오염된 언어에 지친 시민들은 환호한다. 조국은 그가 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엘리트라는 레테르letter를 떼지 못한 채 위선자로 조롱받고 멸문지화 당했다. 빵 몇 조각 훔친 죄로 교수형을 당했을 만큼 그에게 주어진 무도한 형벌은 그 크기만큼의 연민으로 스토리텔링 되었다. 대체로 마음에 빚을 진 정치인들에게 권력을 주었던 역사로 보아 조국 역시 큰 정치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의
요즘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다. 곧 나무에 잎이 돋고 잔디밭과 들판에 풀과 꽃이 피기 시작할 것이다. 최근 추가된 봄의 징후 중 하나로 임대 자전거와 전동 킥보드의 활발한 이용을 들 수 있다. 이 자체는 아주 멋진 일이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사용하여 단 몇 분 만에 친환경 교통수단을 임대하여 짧은 거리를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이용하지 않고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스마트한 교통수단을 타고 공원이나 강변을 따라 달리면 즐겁게 여가를 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교통수단은 아주 결정적인 단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단속이 부족하다는 것
“Devil is in the details”라는 서양의 경구가 요즈음 여기저기서 자주 눈에 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라고 직역되는 이 표현의 의미는 어떤 사태가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 그 세부사항들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이런 요인들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라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나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나 한국의 역사적·사회적 변천사를 살펴보면, 왜 이 경구가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는지 이해가 간다. 오랫동안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쳐온 우리의 정서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지’라거나 ‘지나간 일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일본으로 이주하고 싶었던 마음을 접었다. 3년 후 아이를 낳았고 방사능과 환경오염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들의 모임인 차일드세이브 카페에 가입해서 방사능에 대한 공부도 하고 아기띠를 매고 외교부 앞에서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지 피켓도 들었다. 내 아이는 6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생선을 먹었다. 왜 이렇게 맛있는 걸 이제야 줬냐는 원망도 들었다. 나는 아이가 다니는 생태육아공동체에 방사능 검출 위험이 있는 표고버섯과 동태를 식재료에서 제외시켜 달라고 요청하기도
때는 한국의 여름, 강원대 후문에 있는 삼겹살집에서 고기랑 소주 한잔을 마시고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어를 전공했고 한국으로 유학 왔다는 것은 나한테 꿈에도 없었던 일이었다. 과거에 한국어과를 졸업하고 미얀마에 있는 한국 회사에서 일하며 미얀마에만 계속 살고 있을 줄 알았던 내가 현재 춘천에서 삼겹살과 고기를 먹고 있었다. 내 미래를 어떻게 꾸밀까 고민하면서 밥을 먹다가 시계를 보니까 저녁 8시가 됐다. 밥값을 계산하고 식당에서 나왔더니 여름이라 날씨가 따뜻하면서도 저녁때라 시원한 바람이 불어 춘천의 밤 환경이 좋게
자주 보는 드라마가 하나 있다. 완성되지 않은 인생, 성공을 위해 달리지만, 다다르지 못한 이들을 담고 있는 ‘미생’이란 드라마다. 그 드라마 중 인상 깊은 대사 하나로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대학교수가 수업에서 사회정의라는 말을 꺼낼 때도 손발이 오그라지는 시대” 그리고 하나의 여론 조사 결과를 공유하고 싶다. 2021년 11월 퓨리서치센터에서 발표한 세계 17개국 성인 1만9천여 명을 대상으로 한 “당신의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의미, 가치는 무엇입니까?”라는 설문의 답변 결과다. 우리나라 성인들은 인생의 최고 의미와 가치로 ‘돈
직관적으로 생각하면, 로컬푸드는 춘천산 쌀이든 감자든 먹거리 실물로 귀결된다. 감자 한 알에 하나의 농식품이 생산되고 유통되어 소비되는 전 과정이 내포되어 있다지만, 사실 감자는 그저 감자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발전하고 확장된 것이 ‘푸드플랜’이다. 2017년 출범한 문재인 정부. 시민사회 특히 먹거리운동과 농민운동 진영은 로컬푸드에서 진보하기를 바랐다. 시장에 방치되고 지역으로 쪼개진 ‘농農’과 ‘식食’의 문제를 국가가 총체적으로 계획적으로 접근하기를 바랐다. 거기에 이름을 붙인다면 먹거리계획, 즉 푸드플랜이다.농업 생산만이 아
아이들이 고3·고1이 되는 해에 서면 애니메이션고등학교에서 청소 일을 맡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기에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과 일해본 적이 없었고, 언어와 문화의 벽 때문에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청소는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일은 아니었고, 혼자 생각하면서 순서대로 하면 되는 일이여서 다른 일보다는 마음 편히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큰 결심을 해야 했다.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익숙하지 않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점심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한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춘천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는 올해 사업의 핵심 키워드를 ‘ESG+경영’으로 설정하고, 춘천형 ESG+ 지표 개발, 사회적경제 기업의 ESG+경영 평가·보고·컨설팅 지원, ESG 파트너십 구축, 사회적 금융 및 공공조달 연계, 네트워크 구축 및 정책환경 조성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ESG+경영을 올해 센터의 핵심 의제로 설정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ESG+경영은 사회혁신 조직에 요구되는 시대적 과제이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ESG+경영은 최근의 시장환경 및 정책변화에 대응하여 사회적경제 기업이 생존하고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백 년까지 누리리라고려 말 이방원이 충신 정몽주에게 읊은 시 ‘하여가何如歌’. 이방원이 전하고자 했던 포인트는 ‘누리리라’ 부분이다. 그 것도 백 년이나! 정절이고 나발이고 나와 함께하면 한 평생 권력을 보장하겠다는 달콤한 언변이 꼭 누구를 떠올리게 된다. 이방원과 달리 그가 꾀는 대상은 국민이다. 이방원은 우회적인 기교와 느긋함을 동반한 얽힘의 논리로 화해를 갈구하고 있다. 내가 떠올린 그 역시 기교와 여유를 장착한 네거티브로 국민을 꾀어내고 있다
‘귀안歸雁’은 고향을 떠난 시인 두보가 지은 망향 시다.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첫 설을 보내자니 새삼스레 두보의 시가 가슴에 닿는다.봄에 와 있는 만리 밖의 나그네는 난이 그치거든 어느 해에 돌아갈까 강성의 기러기 똑바로 높이 북쪽으로 날아가니 애를 끓는구나친정어머니는 갓난아기일 때 외할머니의 품에 안겨 만주로 이주했다. 노년을 우리 집에서 보내신 외할머니와는 추억이 많다. 중국은 시어머니를 모시는 집도 있지만,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집도 많다. 외할머니는 공무원으로 일과 살림을 병행하는 어머니 대신 살림을 맡아주셨는데 명절
재단법인 춘천지혜의숲이 무엇을 하는 곳이냐고 물었을 때 처음 듣는 사람들은 ‘나무를 심고 키우는 곳!, 혹은 도서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에 사업 내용을 말하고 기관 이름이 어떠냐고 물으면 사업 취지에 맞는 멋진 이름이라고 말한다.춘천지혜의숲(이사장 신용준)은 신중년과 노인 세대의 맞춤형 생애 재설계를 지원하고 성공적인 노후 생활을 위한 사회활동과 일자리를 지원하기 위해 2021년 1월 춘천시가 설립한 기관이다. 신중년과 노인 세대가 지닌 지혜와 경험이 지역사회에 환원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특히 노인 세대의 경우
2년 전 한 공중파 방송에서 ‘곰손카페’를 운영할 스태프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냈다. 곰손카페의 직원들은 손님들에게 얼굴을 내보이지 않고 오로지 털이 숭숭 난 곰손으로만 손님들과 소통한다. 희한한 운영 방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카페의 구인 조건을 보면 왜 그런지 이해할 것이다. 바로 1년 이상 타인과 관계를 맺지 않았거나 일정 공간 안에서만 지낸 ‘은둔 경력자’만 곰손 카페에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 2주간의 모집 기간에 무려 7백여 명의 청년들이 지원했으며 17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스태프들들은 좌충우돌하며
러시아에서 봄이 언제 시작하는지 묻는다면 질문에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봄에 대한 개념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 봄의 시작은 먼저 기온이 영상으로 오르고, 눈더미가 녹기 시작하며, 겨울에는 느낄 수 없었던 다양한 냄새로 공기가 가득 차는 시점과 관련이 있다. 러시아에는 “봄은 누가 어디에 똥을 쌌는지를 보여준다”라는 농담이 있는데, 이는 눈이 녹으면서 땅이 드러나는 봄의 시작을 잘 설명하고 있는 말로 비밀은 결국 밝혀진다는 뜻이다.하지만 춘천의 거리는 연중 눈이 쌓여 있지 않다.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높은
2021년 1월, 춘천이 법정 문화도시로 선정됐다. 그 후 3년간 춘천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는 ‘시민이 낭만 이웃으로 전환하는 문화도시 춘천’을 비전으로 삼아 의미 있는 삶의 변화를 지향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진심과 정성을 다해왔다. 지역문화의 성장과 확장을 위한 ‘사람 경영’, 도심의 작은 빈집과 빈 상가를 활용해 시민의 문화 활동을 연결하는 ‘문화 슬세권’, 호수와 축제 자원을 결합한 ‘특화 콘텐츠’ 사업으로 춘천만의 매력과 이미지를 전국적으로 전파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는 2023년 최우수 문화도시라는 평가를 통해 더 널리 인
잘 모르는 사람의 무덤에 헌화했다. 목발을 짚은 허름한 사내가 등장하자 말끔한 사람들의 입가에 옅고 온화한 미소가 번지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것은 경외를 품은 행동처럼 보였는데, 마치 청룡영화상에서 배우 안성기가 공로상을 받았을 때 후배 배우들의 마음가짐 같아 보였다. 사람들은 그를 ‘서림 형님’이라고 불렀고 몸이 좋지 않아 보였던 그이의 건강이 쾌차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나환목. 어릴 적 강변에서 불발탄 폭발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뒤 평생 장애를 딛고 살았던 사람. 1986년 강원대 앞에서 사회과학서점 ‘춘천서림’
지난 60여 년 동안 우리는 국가 주도의 자원 집중과 인적 자원의 동원체제를 통하여 최대한 능률적 성장을 만들면서 세계가 놀라는 ‘위대한 한강의 시대’를 열었다. 동시에 우리는 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수도권 초집중과 소득과 자산 격차로 인해 ‘성공한 국가와 행복하지 못한 국민’이라는 질곡을 겪고 있다. 참여하는 시민은 있으나 자치하는 주민은 없는, 선거 중심의 정치로 왜곡되어버린 민주주의에 불신과 염증만 키우고 있다. 민주화 이후의 선진국에 태어난 세대는 그들만의 라이프 스타일이 사회 변화의 에너지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의 미
정치권에서 종종 노인 비하 발언으로 노인들의 심기를 거슬리게 하거나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는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의 저출생·고령화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 전반적으로 미칠 영향, 특히 향후 경제문제의 측면에서 어떤 돌파구를 찾아보자는 발상에서 비롯된 발언인 것 같다.대한민국은 인구의 20% 이상이 노인인 초고령사회를 코앞에 두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노인 인구는 모두 95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8.4%였고, 2025년에는 1천5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0.6%를 차지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2035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