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시기다! 눈길을 사로잡는 마법이다!나에게는 이의 이별의 아름다움이 즐겁다.자연의 화려한 쇠퇴를 사랑한다.- 알레크산도르 푸시킨가을이 끝나가고 있다. 내가 거의 매일 집에서 남춘천역으로 가는 길을 따라 서 있는 은행나무의 마지막 잎들은 차가운 11월의 바람에 흩날려 버렸다. 날이 점점 짧아졌고, 아침 해가 침실을 비추기 전에 일어나기 시작했다.나는 한국에 추위가 연해주보다 약 2주 늦게 온다는 것에 익숙해졌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10월 10일 이후에 추워지기 시작하는데, 춘천에서는 10월 말쯤 추워지는 것 같다. 하지만 올해
아주 만족도가 높은 갭이어(Gap Year)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 어쩌면 인생에 다시 없을 나에게 주는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얽매이지 않는 일상에 무료하고 나태해지는 건 아닐까 살짝 불안함도 들지만, ‘괜찮다’ ‘좋구나’ 하는 마음을 알아차린다. 매일매일 무언가 깊이 없는 의무감처럼 분주히 움직이는 몸을 멈추니 내 마음이 느껴지고 세상을 마음의 눈으로 마주하게 되는 설렘들이 있다.적은 보수에도 4~5시간 걸리는 곳에 나를 기다리는 낯선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강의가 그렇고, 몸이 이끄는 대로 늘어지게 종일 뒹굴며 잠을
“우리나라에서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들을 주요보직에 쓸 때는 대개 비슷한 문제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과거에도 그래 왔고요.”지난 10월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의 공직자 재산신고 누락을 지적하고 법무부 인사 검증 시스템의 문제점을 질의하는 상황에서 나온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답변이다. 그러니까 시골 장판의 언어로 번역해보면 ‘이 나라의 고관대작들은 예나 지금이나 좌우를 가리지 않고 편법과 권모술수로 그 자리에 올라가 있으니 모두 아가리를 닥쳐 주세요~’ 이런 말이 되겠다. 내가 이래서 이 똘똘이 스머프를 좋
한국 땅에 첫발을 내디딘 날, 비가 많이 내렸다. 나는 지금은 강원고속 버스를 타고 여기저기 다녀보고 인천국제공항에도 여러 번 갔었다. 그런데 처음 춘천에 올 때 비가 많이 내리고 한국에 홍수가 난다는 소식에 인천에서 춘천으로 갈 길이 무척 걱정됐다. 언제 도착할지 생각하면서 밤새 비행기를 탔더니 온몸에 피로가 몰려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었다.버스가 멈추는 그 순간, ‘나는 드디어 춘천에 도착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도로 옆 어디인지 모르는 곳에서 버스 기사가 춘천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라고 했다. 버스에서 내리려고 준비하면서
‘2023 춘천 모두의 미술 - 바람·햇빛·강물, 그리고 사람’이 19일까지 춘천문화예술회관 전시장·춘천미술관·문화공간 역, 세 곳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회는 춘천 미술의 터를 닦은 작고(作故) 작가부터 춘천을 대표하는 원로작가, 중견 신진작가 126명이 참여 춘천 미술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자리다. 전시회가 특별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바로 춘천 미술인의 화합과 상생의 상징이라는 점이다. 오랜 세월 교직 생활과 도예 작업 그리고 전시 활동은 나만의 만족으로 이어져 왔었다. 대외 활동이라고 해야 춘천미
운전하다 라디오 광고를 들었다. 춘천 로컬푸드 직매장 몇 곳이 행사를 벌이고 있으니 와 보시라 한다. 여러 감정이 교차하며 씁쓸했다. 시청과 농협이 주도하는 로컬푸드가 최선일까? 그럴 리가! 앞으로는 어떨까? 그건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로컬푸드 운동과 사업 안팎을 맴돈 세월이 15년쯤이다. 문득 짧은 기록을 남기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춘천의 사람들과 로컬푸드 이야기를 5회 정도로 압축해 써볼까 한다. 어떤 가치가 높고 크고 고귀하다면 그 바탕의 현실은 낮고 옹색하고 비루하다. 예컨대 100년 전의 시대정신이자 절대적 가
30년 전 유난히 춥던 어느 날, 여행 가방 하나 들고 김포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출구로 나가자 남편이 웃는 얼굴로 나를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차가 없던 남편은 춘천에서 김포까지 그 당시 돈으로 10만 원의 거금을 내고 택시를 타고 왔다고 했습니다. 서울에 살던 아주버님의 차를 타고 춘천으로 내려가는 길에 아름답게 펼쳐진 의암호의 풍경을 보면서 ‘앞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살게 되겠구나’라는 생각에 기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하지만 풍경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내가 도착한 남편의 집은 엄청난 시골이었습니
안녕하세요. 저는 중국에서 온 유학생 ‘윤위’입니다. 현재 강원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한국어를 전공했고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한국에 오기 전의 심정은 복잡했습니다. 기대감에 설레면서도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것을 생각하면 두렵기도 했습니다. 8년 전에도 한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었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처럼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한국을 생각하면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컸습니다.그런데 춘천에 도착하자 오래된 기억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릿속에 확 펼쳐졌
올해 초 춘천시가 법정 문화도시 ‘최우수도시’로 선정된 이후, 많은 사업이 탄력을 받는 듯하다. 시민의 일상이 문화가 되고 문화적 삶이 보장되는 문화도시를 표방하며 춘천 곳곳에서 크고 작은 문화행사가 열렸다. 특히, ‘석사천 재즈페스타’가 성황을 이루면서 ‘문화슬세권’이라는, 지방에서 좀처럼 나오기 힘든 키워드를 뽑아내기도 했다. 춘천은 이제 그 어떤 도시보다 ‘힙(hip)한’ 전시와 공연, 축제가 넘치는 곳이 됐다. 문화도시는 빽빽한 축제 일정만큼 스마트폰 속 달력에 다양한 커뮤니티 일정을 선물했다. 시민들은 커뮤니티를 통해 자존
최근 경제적으로 어려운 미등록 외국인 남성을 지원한 일이 있었다. 그는 한국에서 교환학생으로 2년 정도 대학에 다니다 내전 중이던 고국 콩고로 돌아갔다. 고향 콩고에서 당시 한국 교환학생으로 만났던 아내와 결혼했고 지금은 아내와 한국으로 들어와 살고 있다. 그는 아내와 함께 한국에 들어올 때 3개월 단기 비자로 들어와 3년째 미등록 신분으로 체류하고 있다고 했다.그는 콩고에 있을 때 컴퓨터 프로그래머 전공을 살려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고 그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대한민국을 찾았다. 주로 토마토 농장과 깻잎 농장을 전전하면서 한국에 온
신문이 매일 쌓인다. 눈은 하루가 다르게 침침한데, 활자에 대한 욕심은 어찌나 많은지…. 또 지역 신문을 구독하는 것이 대단한 의리나 의무인 듯 구색 맞춰 신문을 받고 있다. 하지만 욕심과 다르게 햇살 좋은 창가에서 신문을 읽는 여유로움은 많지 않다. 업무와 관련된 일들이 기사화되는 것이 불편해 일부러 눈길을 주지 않기도 한다. 이럴 땐 신문이 무겁다.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춘천사람들》이 의욕과 열정으로 20면으로 증면했을 때, 내가 쓰는 기사도 아니고 내가 마감할 일도 아니지만 나는 무거웠다. 20면의 《춘천사람들》이 발행
춘천에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던 2019년 당시 내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가족을 잃었고 경제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호흡곤란으로 구급차에 실려 가면서 들었던 생각은 ‘살고 싶다’ 였다. 그 이후 내 삶이 왜 이리 고달프고 힘든지 그 원인을 차근차근 하나씩 되짚어보았다. 그 과정에서 10여 년 전 직장에서 성폭력을 겪은 것이 떠올랐고 10년이 지난 뒤에야 내가 피해자라는 것을 인지했다. 너무 늦은 건 아닌가, 혹시라도 내가 잘못한 것은 없나 하는 물음표가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다녔다.그러던 중 ‘성폭력상담소’를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고 하늘길이 열리면서 지난해부터 루마니아·핀란드·몬트리올·카자흐스탄·일본 등 부지런히 해외 인형극제를 다녔다. 외국의 여러 축제를 보러 다니며 스스로 물었다. 축제가 뭘까? 난 무엇을 위해 일하는 사람인가?이렇게 답을 써본다. 축제는 ‘모여서 신나고 힘이 나서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럼 공연예술축제는 뭘까? 어떻게 해야 즐겁고 힘이 날 수 있을까? 결국 ‘좋은 작품’이란 생각이다. 첫 이야기에서 먼저 얘기했던 성인 인형극 관객의 확장 역시 결국은 좋은 작품, 곧 콘텐츠다. 이번 샤를르빌 인형극제는 28개 극장
춘천은 산과 아름다운 호수와 강으로 둘러싸인 도시로, 자연의 품에서 편안한 휴식과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기에 완벽한 장소다. 고층 건물들이 즐비한 도심에서 자전거로 단 15분 정도만 나가면 논과 밭, 산과 강에 도달할 수 있다. 물론 곳곳에 가로등과 깔끔한 산책로, 그리고 공공 화장실 같은 현대 문명의 흔적을 볼 수 있지만, 수도권 공원처럼 인공적인 자연과는 크게 다르다. 춘천의 색과 향기는 모두 진실하다. 이런 곳에서는 아파트에 살아도 무위자연에 더 가까워지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작은 정원을 가꾸거나 애완동물을 기른다
핵 오염수 방류가 과학적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적잖이 당황스러워 한마디 한다. 농식품부에서 인증하는 제도가 여럿 있는데 농산물을 인증하기 위한 제도로는 친환경농산물인증과 GAP(농산물우수관리) 인증제도가 대표적이다. 친환경농산물인증은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재배방식으로 병해충 발생 시 식물에서 추출한 농약 성분을 이용해 방제하는 반면, GAP 인증제도는 농가에 병해충이 발생했을 때 농약을 기준치에 맞춰 적절하게 사용해 안심하고 농산물을 섭취하도록 하는 제도다.GAP 인증제도는 농약을 안전하게 사용하도록 ‘농약 안전사용기준’을 토대
거창하게 얘기하자면 사반세기를 일한 직장생활이 실패로 끝났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 같은 건 없었지만, 지역문화 창달이라든지 ‘문화 사랑방’이라는 자부심 따위의 소명이 박봉의 세월을 견디게 해준 이유쯤이 되었는데, 서점도 망하고 나도 대충 경제적으로 망했다.맞다. 부도난 ‘광장서적’ 얘기다. 쉬는 날 오후에 부도 소식을 들었는데 하필 당일 저녁에 민주노총이 주관하는 민중대회에서 ‘호수를닮은사람들’ 멤버로서 노래공연이 예정돼 있었기에 참말로 웃다가 울다가 노래하다가 그랬다.종이책 유통시장은 완벽한 사양산업이다. 스마트폰이 처음
프랑스의 작은 도시 샤를르빌메지에르는 1961년에 국제인형극제를 시작해 축제를 여는 도시에서 세계인형극의 메카로 자리를 잡았다. 1981년에는 국제꼭두극연맹((UNIMA) 세계 본부를 유치했고, 1981년부터 국제꼭두연구소(Institut international de la marionnette)를 개설했으며, 1987년부터는 국립꼭두고등예술학교(Institut international de la marionnette ; ESNAM), 흔히 ‘에스남 국립인형극학교’라는 학교를 세웠다. 한마디로 인형극 관련 주요 단체는 다 모였다고
나는 미얀마의 작은 도시 타칠릭에서 왔다. 어릴 때부터 계속 타칠릭에서 살았다. 집안의 막내로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점수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족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기 위해 대학교를 선택했다. 대학교에 입학신청서를 내야 하는데 고민 끝에 공대와 치과대·약학대, 그리고 만달레이 외국어대 독일어과를 선택했다. 각 대학교 합격자 결과가 나왔는데 아무리 찾아도 내 이름을 찾을 수 없어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많았다. 어떤 부분을 잘못 제출했을까 싶어 복사해 둔 입학신청서를 찾아봤더니 만달레이 외국어대 독일어과에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이 읽고 찾는 신문. 그런 신문이 신문으로서 역할을 잘할 수 있지 않을까?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현실적으로 실현되기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신문, 언론이 되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일전에 《춘천사람들》의 독자층에서 젊은층이 거의 없다 보니 젊은 기사, 청년 관련 기사가 많이 부족해 아쉽다는 의견을 낸 적이 있다. 이후 이러한 의견을 적극 반영해 청년 관련 기사도 많이 나오고, 춘천시의 다양한 연령층을 위한 내용도 많아지고 있다. 또한, 요즘은 신문을 종이보다 모바일이나 컴퓨
마을 일과 포도 농사에 진심이었던 선배 같은 후배. 암 투병 끝에 결국 떠났다는 소식에 경상도로 달려갔다. 마지막 인사를 위해 많은 이들이 모였고, 늙은 농부들은 젊은 사람 앞세웠다며 상심하고 있었다. 몇 년 만에 본 얼굴들이 반갑고 근황이 궁금했지만, 인사를 주고받는 말 밖에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배는 고파서 육개장을 퍼먹고 있었는데.“요즘 춘천 공기가 별로라며?” 경상도에서 민주당으로 고군분투 정치하고 있는 선배가 소주잔을 따라 채워 건넨 말. 공기? 뜬금없어 어리둥절하다가 겨우 알아챘다. 도지사나 시장이 바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