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골의 한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나이가 들어 학교 동창들을 만나니 엷은 주름과 서서히 올라오는 흰 머리카락 너머로 예전 모습이 그대로 읽힙니다. 오늘은 그 옛 친구 중 한 명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초등학교 시절을 지나서는 서로의 삶이 한 번도 겹치지 않아 이 친구를 만난 것은 몇 년 전 동창회 자리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얼마 후, 한두 사람을 거쳐 가면 이 친구의 이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대부분 아이들을 기르는 엄마들이나 선생님을 통해서였습니다. 이 친구가 무슨 일을 하냐고요? 내 친구 ‘안경술’은 자그마한 키에 조곤조곤 말씨 고운 발도르프 교육 활동가입니다. 발도르프라는 말도 생소하지요? 그럼 저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실래요?

발도르프 교육이 뭐니? 학자 이름을 딴 건가?

(웃음)발도르프는 독일의 담배공장이름이라고 해. 발도르프 교육 창시자인 슈타이너 박사의 뜻을 이해한 당시 사장이 직장 내에 발도르프 학교를 개설한 것이 자유학교의 시작이었대. 발도르프 교육에 대해 짧은 시간에 설명하는 게 쉽진 않아. 또 내 경험과 지식만으로 전달하는 게 조심스럽기도 하고…

우선 발도르프 교육은 아이들이 나이마다 익혀야할 내용들을 단계별로 촘촘하게 구성하는데, ‘이야기’를 중요한 전달매체로 생각해. 예를 들면, 유아나 초등 1-2학년 정도 아이들에게는 그 나라에서 전승되는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익히게 하고, 나이 들면서 우화, 성경구약, 세계 신화를 통해서 문화를 자연스럽게 배우는 거야. 정신발달의 단계에 따라 전달매체의 수준을 달리 해서 접근하는 거지. 전래되어 오는 ‘이야기’의 전승을 자기 정체성을 가르치는데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지.

교육은 국가나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 대신, 스스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 되도록 돕는 과정… 전승되는 이야기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자연스레 이해하도록 해

맞아, 이야기는 전달자를 통해 끊임없이 재구성되면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지. 네게 발도르프 교육은 또 어떤 게 매력이었어?

아이들을 씨앗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참 신선했어. 씨앗 안에는 열매도, 잎사귀도 다 들어 있는 거잖아. 스스로 자기 안에서 발아할 때가 있다는 것을 믿어. 무리해서 하는 조기교육과 거리를 두는 이유이기도 해. 어른들이 해아 할 것은 다만 모방할 만한 좋은 삶을 사는 거야. 옛날에 학교가 제도화되기 이전에 우리가 이미 하고 있었던 것들의 회복이라고 할 수도 있어. 학교라는 제도가 없었을 때,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것은 의사소통이나 일상생활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과정이었지. 이를테면 아버지가 농사짓기 위해 씨앗을 고르는 것을 보며, 곡식 키우는 기초를 배우고, 어른이나 아이를 먼저 배려하는 것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배우는 거야. ‘삶과 배움’이 통합되는 것이랄까. 그래서 발도르프에서는 선생님이 갖는 일상의 태도나 관점이 무척 중요하다고 봐. 아이들이 선생님을 모방하면서 학습한다고 보기 때문이지.

아이들은 씨앗. 저마다 스스로 발아할 때가 있어. 어른의 역할은 아이들이 닮을 만한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발도르프 선생님이 된다는 건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거 같아. 참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발도르프 인형극도 한다고 들었어.

 

 

 

응. 발도르프에서는 수공예 같은 손동작이나 다양한 예술 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해. 나는 최근에 인형극을 많이 활용하는데, 어른들도 인형극을 보고 치유되는 느낌을 갖는다고 해. 편안한 곳에서 쉬다 나오는 느낌이랄까. 인형극 주인공이 대부분 막내거나 셋째 딸이거나 해서, 힘없고 못 생기고 몸이 불편한 경우가 많아. 즉 사회적으로 소수자이거나 약한 아이들이 고난과 역경을 통해 성장하는 것을 들으면서 정신적인 자양분을 채우게 되고, 스스로 고양된 존재가 되어가는 거야. 인형극을 시작할 때도 집중을 위해 박수로 환기시키거나 소리치지 않아. 조용히 리코더를 불고 있으면 아이들이 주변에 모여드는데, 가능한 아이들이 초대받는 느낌이 들도록 하는 거야.

발도르프를 배우고, 그 강사로 활동하면서 보람이라면?

음, 발도르프 교육에서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성장한다고 해. ‘되어간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아이들이 모방할 만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참 어렵고도 보람 있는 거 같아. 나의 말, 행동, 생각 하나도 가능한 의식하고 반추하게 되고. 언젠가 막내아들이 “엄마는 우리한테 한 번도 소리치고 혼내지 않으셨지요” 하는데, ‘아, 아이들이 나를 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다’라는 안도감도 들었어. 물론 매 순간이 시험이지. 그럴 땐 바로 반응하지 않으려고 해. 글쎄, 재작년보다 작년이 낫고, 작년보다 올해가 조금 더 ‘괜찮은 나’, ‘성숙해지는 나’를 발견하는 게 기쁨인 거 같아.

경술이 살짝 쑥스러운 듯 웃는다. 다른 사람이 말하면, 자기자랑이라고 입을 삐쭉 내밀만 한데, 경술이의 저 말에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루하루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성숙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반추한다는 친구의 삶을 어찌 존경하지 않겠는가.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어?

내가 원래 유치원 교사로 20년을 살다가 독립한지 5년차인데, 해마다 새로운 일이 내게 오는 거 같아. 그게 참 기쁘게 나를 흥분시켜. 발도르프에서는 문화, 예술, 체육활동을 학령에 맞게 구성하고 있는데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일상생활의 작업’을 되살리는 게 참 중요한 거 같아. 우리가 삶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서 살아가려면, 누군가로부터 대행 서비스를 받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고 쓰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장 담그기나 뜨개질, 인형 만들기 같은 게 ‘체험 프로그램’이 아니라 필요해서 만들고 직접 쓰기도 하는 ‘생활’이 되는 거. 언젠가 발도르프 유치원을 만들어서 아이들과 그렇게 하나하나 해보고 싶어.

단순한 ‘체험학습’이 아니라, 잃어버린 ‘일상생활’을 회복해 만들고, 쓰고, 스스로 성장시키는 주체가 되도록 돕고 싶어

차근차근 발도르프 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경술이의 인생에 초대받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조용하고 정갈한 리코더 소리가 들리고, 저마다 떠들어대던 아이들이 하나 둘 음악을 따라 자리에 앉습니다. 누구도 목소리를 높여 조용히 하라거나, 멈추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지요. 아이들은 저도 모르게 음악에 이끌려 통제나 명령 없이도 친구 옆에 자리를 잡으니까요. 모두 앉으면 오늘의 여는 시를 읊어주지요. 숨소리마저 낮게 시의 운율을 따라 옵니다. 이제 그녀는 인형 덮개를 열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옛날 어느 곳에 연이라는 아이가 살았습니다…” 아이들은 드라마틱한 모사나 요란한 효과음에 마음을 뺏기는 대신, 다만 연이와 버들소년 이야기에 깊이 들어갑니다.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걷었던 천을 다시 덮습니다. 아이들은 이제 이야기에서 분리돼 현실로 천천히 나옵니다. 나도 천천히 그녀의 삶에서 나옵니다. 나는 또 나의 삶을 그렇게 살아야 하므로… 내 친구지만, 그녀의 삶과 태도를 나도 닮고 싶습니다. 배운 대로 살아가려는 내 친구가 참 자랑스럽습니다.

 

허소영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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