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통신-젊은 예술가의 시선] 아직 꺼지지 않은 올림픽의 성화(1)
[독일통신-젊은 예술가의 시선] 아직 꺼지지 않은 올림픽의 성화(1)
  • 정은비
  • 승인 2016.04.15 2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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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한국인이고자 했던 베를린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1936년 독일 베를린올림픽. 악명 높은 독재자 히틀러 정권 당시 대부분의 메달리스트들은 독일, 영국, 미국 등 열강의 백인들이었다. 그러던 중 올림픽의 꽃이라 불리는 마라톤 경기에서 검은 머리칼의 아시안 금메달리스트가 등장했다. 2시간 26분 14초라는 마라톤 세계신기록이 세워지는 순간이었으니, 이 놀라운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한 관중들의 환호는 더 없이 열광적이었다. 심지어 은메달리스트인 영국인 선수를 가운데에 두고 금메달과 동메달을 목에 건 두 선수는 같은 국가의 아시아인이었다. 곧 기미가요가 울려 퍼지고 일장기가 올라갔다. 외신들은 세상에서 가장 승리감에 도취해 있을 두 선수의 얼굴을 기대하며 카메라에 담으려 했다. 하지만 당시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에게 메달을 받는 두 메달리스트들은 세상에서 가장 비통한 얼굴로 머리를 숙이며 눈물을 흘렸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이 열렸던 베를린올림픽스타디움 ⓒEunbi Jeong

두 선수의 이름은 ‘손기정(Sohn Kee-Chung)’과 ‘남승룡(Nam Sung-yong)’. 하지만 올림픽 공식 기록사에는 ‘손 기테이(Son Kitei)’와 ‘난 소류(Nan Shoryu)’로 이름이 남았다.

제11회 베를린올림픽은 1936년 8월 1일부터 16일까지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개최됐다. 히틀러의 개회선언 하에 총 49개 국에서 온 3천963명의 선수들이 19개의 종목에 참가했다.

당시 마라톤은 42.195km로 정규코스가 정해진 후 2시간 30분대의 기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2시간 30분대가 인간체력의 한계라는 인식이 있었다. 이런 배경에서 손기정 선수가 2시간 30분대의 벽을 깬 것은 국제 육상계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이후에도 손 선수는 공식·비공식기록으로서 2시간 25분대까지의 기록을 지속적으로 보유했다. 마라토너로서의 그의 실력을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손기정 그 자신 역시도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손기정 선수는 가슴에 단 부끄러운 일장기를 가린 한국인으로 초등학교 교과서에 설명돼 있다. 올림픽 당시에도 손 선수는 일본식 이름이 아니라 한국어 이름으로만 서명했으며, 이름 뒤에는 한반도 형상의 지도를 그리기도 했다. 모든 인터뷰에서도 항상 자신은 한국인이라고 밝힌 손 선수는 독일의 국빈방명록에도 한글로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었는데, 그의 이런 행동은 서슬 퍼렇던 일제강점기 시절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경기장 내부의 기념비에 새겨져있는 ‘36 베를린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일부. 중간 지점에 마라톤 42.195m 일본인 금메달리스트로 등록 된 손 선수의 이름이 보인다.
(MARATHONLAUF 42.195m SON JAPAN) ⓒEunbi Jeong

경기 이후에도 손 선수는 일본 선수단이 여는 축하파티에 참석하지 않고 베를린의 조선인 두부공장에서 열린 우승 축하모임에 참석했다. 안중근 의사의 사촌이자 독일의 한인사회 지도자이며, 독립운동을 후원했던 것으로 알려진 안봉근(독일명 : Fonkeng Han)의 공장에서 사발과 놋쇠그릇에 김치와 두부를 놓고 축승회를 한 손기정 선수는 이곳에서 난생 처음으로 태극기를 보았다고 한다. 1912년생인 그는 자서전에서, 태극기를 처음 본 순간 “온 몸에 뜨거운 전류가 흐르는 듯 나는 몸이 부르르 떨렸다”고 당시의 소회를 밝혔다. “탄압과 감시의 눈을 피해 태극기가 살아 있듯 조선 민족도 살아 있다는 확신이 마음을 설레게 했다”는 심경을 밝혔듯이, 그가 스스로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생각한다는 데에는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아직 겨울의 한기가 가시지 않은 3월, 베를린올림픽스타디움을 찾았다. 경기가 없어 한산했지만, 80년 전 이곳에서는 성화가 뜨겁게 타오르고 관중들은 떠나갈 듯 응원의 함성을 외쳤으리라. 결승점을 향해 달려오는 손 선수, 그리고 3위로 골인한 남 선수를 모든 이들이 두 눈으로 지켜봤다. 그리고 기미가요가 울려 퍼졌다. 두 선수는 비통함에 눈물을 흘렸고 말이다.
 
올림픽경기장 내부의 기념비에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 우승자(Sieger)들의 성과 국적이 새겨져 있다. 남자 육상부분 마라톤 우승자인 손기정 선수는 SON(손)과 JAPAN(일본)으로 소개돼 있다. 1910년 8월 22일 일제의 강제병합으로 나라를 잃은 손 선수와 남 선수는 일본 국적과 일본식 이름으로 경기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고 손기정 선수는 생전에 일본올림픽위원회가 국제올림픽위원회에 손 선수의 국적변경을 신청하면 공식기록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일본올림픽위원회는 이를 들어주지 않았다.
독일인들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손 선수 개인사는 마음이 아프지만 역사는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1936년의 손기정 선수 국적이 한국으로 변경된다면, 일제의 한국 강제점령 사실이 억압적이지 않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전쟁 중에 벌어진 나치의 반인륜적 만행과 부끄러운 과오를 진심으로 사죄하고 후대에게 철저히 교육시키는 독일의 시각으로는, 일본이 제국주의 시절의 야욕에 대해 사죄할 기회를 한국이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손기정 선수가 한국인임을 알리는 데에는 베를린한인회의 역할을 컸다.
 
2010년부터 격년제로 열리는 ‘손기정 마라톤대회’가 그 대표적인 예다. 마라토너 손기정이자 한국인 손기정임을 항상 강조했던 손 선수의 정신과 마음을 기리기 위해 개최되는 이 마라톤대회는 한국인뿐 아니라 독일인 및 외국인도 상당수 참여하고 있다.(25호에 계속)

정은비 시민기자(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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