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떠나지 않는 걸까?’ 처음엔 그게 참 기이했다.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터졌을 때, 원전 반경 수십km 이내에 살던 사람들 중 열에 아홉은 살던 곳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맨 먼저 떠 오른 생각이다. 사람 목숨보다 중요한 게 뭐라고 거기를 떠나지 않고 살까? 그때는 정말 몰랐다. 몇 년 후 내가 그들의 처지를 이해할 날이 오리라고는.

지금도 기억이 또렷하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거실 바닥에 둔 방사능 측정기는 계속 400nSv/hr가 넘는 수치를 기록하고 있었다. 침실에서는 600이 넘어갔다. 권고수치의 3배가 넘는 수치였다. 얼마 전 TV에서 봤던 후쿠시마 반경 30km 지점에서 잰 수치, 기자가 놀라면서 이런 곳에서 아이들이 살고 있다는 게 끔찍하다며 탄식을 했던 530nSv/hr 보다도 더 높았다. 아파트 후문 근처에서는 900nSv/hr 가까이 나오기도 했다.

내가 전에 살던 춘천의 어느 아파트 얘기다. 깜짝 놀라 나와 아내는 그 이후로 춘천의 다른 주거공간과 거리를 수없이 측정했다. 측정기가 잘못됐나 싶어 서울 지하철에서 측정을 해보기도 했다. 서울 지하철은 107nSv/hr였다. 춘천 지역이 다른 곳에 비해 훨씬 높은 방사능 수치가 나온다는 건 분명했다.

동네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어도 높게 나온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렇게 ‘춘천방사능생활감시단’의 활동이 시작됐고 이제 2년이 다되어 간다. 그리고 나는 후쿠시마 인근의 사람들처럼 여전히 춘천에 살고 있다. 이글을 쓰고 있는 오늘 아침, 내 진료실에서 측정한 수치도 350nSv/hr였다.

최근 의학 저널 랜싯(lancet)은 춘천처럼 저선량의 방사능에 장기간 노출되었던 핵발전소 근무자들을 26년간 추적 조사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결론은 저선량이라 하더라도 노출된 양에 비례하여 백혈병과 같은 고형암의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잰 수치들이 틀리지 않았다면 춘천에 사는 건 불덩어리 위에서 사는 것과 같다. 그런데 그 불은 뜨겁지가 않다. 그게 문제였다. 차라리 뜨겁다면 당장에 그 불덩어리 위에서 깜짝 놀라 내려올 것이다. 하지만 이 불은 기이하게도 냄새도 없고 보이지도 않으며 만질 수도 없다. 그저 무감하게 천천히 타들어갈 뿐이다.

나는 이제 이해한다. 후쿠시마 인근의 사람들은 떠나지 않은 게 아니라 떠나지 못했다는 것을. 사람은 바로 ‘장소’다. ‘이곳의 나’는 ‘이곳’을 떠나는 순간 ‘나’도 아닌 게 된다. 떠날 수 없다면 바꿔야한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어 이런 일이 생겼는지를 밝혀야한다. ‘춘천방사능생활감시단’에서 그런 자리를 마련했다. 5월 13일(금) 저녁 7시 꿈마루 청소년수련관이다. 방사능 전문가 이헌석(에너지정의행동 대표)씨를 모시고 토론회를 갖는다. 그동안 측정된 자료들도 공개할 것이다. 많은 춘천 시민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 오지 않으면 볼 수 없고, 볼 수 없으면 그 불 위에서 결코 내려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양창모 (가족보건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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