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시장애부모연대 박복희 대표

4월 20일, 매년 돌아오는 ‘장애인의 날’이었다. 장애인 날에 맞춰 전국 각지에서 장애인 권익을 위한 기자회견과 여러 행사가 열렸다. 춘천에도 장애인 복지와 권익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단체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2012년에 장애인 활동보조인 이용시간 확충과 장애인 재활 스포츠센터 건립을 요구하며 춘천시와 큰 갈등을 빚은 ‘춘천시장애인부모연대’를 꼽을 수 있다.

발달장애자녀를 둔 부모들이 서로 힘을 보태 만든 ‘춘천시장애인부모연대’에서 6년째 대표를 맡고 있는 박복희씨(63세)를 ‘강원도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만나 장애를 둘러싼 여러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먼저 ‘춘천시장애부모연대’ 대표를 맡게 된 과정과 배경에 대해 말씀해 주실까요?

큰 아이가 건강하게 잘 커서 늦둥이지만 둘째를 낳아 키우는 것에 대해 큰 걱정을 하지 않았어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처음엔 또래 친구들보다 좀 늦는가 보다 생각했죠. 우리 정은이가 9살이 되던 해 더는 안 되겠다 싶어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게 되었어요. 그때 정은이가 발달장애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처음엔 내 아이가 장애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어요. 툭하면 울기만 하고, 평소 알고 지낸 사람들과도 잘 만나지 않았어요. 그러다 어느 날 기도하는 중에 ‘이 아이를 통해 나를 변하게 하려는 뜻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의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생각했죠. 그렇게 되기까지 3년이 걸렸어요. 생각이 바뀌니 우리 아이를 둘러싼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발달장애 아이들이 다른 장애를 가진 아이들보다 인지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다른 사람에게 의사전달을 못 합니다.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요구하거나 보장받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부모들이 나서서 필요한 것들을 공부하고, 행정기관에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또, 동원학교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다 보니 학부모회장까지 맡게 되었죠.

때마침 강원도장애인부모연대가 만들어지면서 함께 하자는 제안이 왔습니다. 그렇게 부모연대 활동을 시작했는데 벌써 6년째 춘천시장애인부모연대 대표를 하고 있네요.

동원학교도 졸업하고 정은씨가 이젠 성인의 나이가 되었는데요. 그 시간 동안 발달장애인을 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기가 참 어려웠을 텐데요.

20년 전만 해도 ‘장애는 부모 잘못이다, 내 잘못이다’라는 생각들을 많이 했지요. 하지만 지금 젊은 엄마들은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우리 아이를 위해 세상에, 시에 당당히 요구하기도 하고 많이 적극적입니다. 그런 부모들 마음이 발달장애 시설과 복지와 관련된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고 봅니다.

학생 때와 달리 성인이 된 정은씨를 둘러싼 환경이나 그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졌겠지요?

정은이가 학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발달장애 지원이나 시설들이 많이 부족했어요. 지금은 취학 연령기 아이들을 둘러싼 환경이 많이 나아졌지요. 문제는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입니다. 춘천에선 성인 발달장애인이 갈 곳이 없어요. 동원학교를 포함해 한 해 60~70여명이 교육시설에서 졸업하는데, 실제로 작업장이나 산업체에 고용되는 인원은 10여명 정도로 매우 낮습니다. 그 나머지는 주간보호소나 장애인 시설에 가야합니다. 하지만 춘천에는 주간보호소가 딱 세 군데뿐이에요. 이 세 곳 모두 이미 정원이 다 차서 더는 받을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장애인 시설로 보내려고 해도 춘천에는 시설이 없어 강릉이나 양양, 속초로 가야 합니다. 우리 정은이는 다행히 주간보호소에 보내고 있지만, 정은이와 같이 졸업했던 23명 중 20여 명은 보호소나 작업장에 가지도 못한 채, 가정에만 머물러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해보면 지금은 성인이 된 발달 장애인, 신체 장애인과 그 가족을 위한 주간보호소 확충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에요.

대표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우리 사회가 장애인 문제를 개인, 가족의 문제로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제 경험을 비추어 볼 때 장애인 부모 중에는 암 환자들이 많아요. 엄마도 사람이잖아요. 아이들 보호하랴, 집안일 하랴 몸이 정말 많이 힘듭니다. 피곤하다 보니 당연히 몸도 약해지고 이리저리 아픈 곳들이 많죠.

거기다 남편이나 가족들과 갈등도 만만치 않습니다. 어머니보다 아버지들이 아이 장애를 잘 받아들이지 못해 끝내 이혼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을 정도랍니다. 거기다 장애를 가진 자녀만 신경 쓰다 보니 비장애 자녀에게 상대적으로 소홀해지면서 가족 내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요.

대표님도 가족 간 갈등이 있었나요?

다행히도 남편은 저보다 정은이에게 더 잘했습니다. 1시간마다 전화를 해 항상 아이 안부를 묻고는 했죠. 남편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정은이 손발톱은 항상 남편 몫일 정도로 아이에게 참 좋은 아빠였어요. 또 제가 부모연대 일을 할 때도 묵묵히 제 활동을 지지해 주었죠. 그런데 우리 큰아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많습니다. 하루는 정은이를 돌보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정은이에게 막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있을 때, 큰아들이 그만 하라며 화를 내는 거예요. 정은이 때문에 힘든 엄마를 이해 못 하느냐고 큰아들에게 따져 물으니, 엄마만 힘든 게 아니라며 우는 겁니다. 큰 아이가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집에 친구들을 데리고 오곤 했는데, 친구들이 정은이가 장애인이란 말을 하는 것을 듣고는 더는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올 수 없었다는 말을 하더군요. 정은이에게 신경 쓰느라 큰아들에 대해서는 너무 소홀했던 거죠.

대표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장애인 관련 복지 시설도 중요하지만, 장장애인을 둔 가족들에 대한 지원도 시급해 보입니다.

다행히 2015년 11월에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됐고, 법령에 따라 강원도에도 발달지원센터가 2016년 하반기에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 센터를 통해 앞으로 장애인뿐만 아니라 그 가족 구성원에 대한 심리상담과 장애와 관련된 여러 교육 등 서비스 지원이 가능해 질 것 같아요.

장애인 시설지원이나 복지관련 예산확보 때문에 시청과 많은 갈등을 겪은 적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다른 지자체에는 이미 지원하고 있는 활동보조인 추가시간 확충, 장애인 재활 스포츠센터 등을 요구했던 겁니다. 많은 예산이 필요한 재활 스포츠센터도 장기적인 계획과 체계적인 준비를 통해 이용자에게 맞는 시설을 지어 달라 요청을 했을 뿐이에요. 현재 캠프페이지에 지어진 재활 스포츠센터는 이용자에게 너무 불편한 시설이라 실제로 장애인이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가 원한 것은 오래 걸려도 효과적인 시설을 요구했던 것이지, 누군가의 치적이 될 시설을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춘천에서 발달장애인과 관련해 더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위에서도 이야기를 했지만, 그 무엇보다도 주간보호시설 확충이 중요합니다. 가정에게만 장애인을 맡기지 말고, 우리 지역사회가 함께 지키고 보호하는 데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앞으로 계획이 있으시다면?

앞으로 만들어질 장애인발달지원센터에 운영위원으로 참여할 생각입니다. 센터에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이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보려 합니다.
 
강종윤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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