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난(54) 지부장. 미술을 전공하고 애니메이션 외주제작회사를 다니다가 학원을 운영했다. 결혼 후 닥친 IMF로 학원 문을 닫고 과외를 했으나 수익이 맞지 않고 고단해 학교급식소 조리사로 취직했다. 그렇게 10여년, 그녀는 학교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이들의 밥을 책임지는 일선에 있었다.

사진=김애경 기자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이상난·이명주·장은지의 삶

교무행정사, 과학실험실무원, 기숙사생활지도원, 전문상담사, 특수교육지도사, 조리원, 발명보조실무원, 전산실무원… 강원도교육청에 소속된 교육공무직의 직종명이다. 교육부에서 정리한 목록이 80여개, 그 가운데 학교비정규직으로 등록된 직종만 32개라고 한다. 이들은 급여체계부터 근무조건이 모두 다르다. 가히 비정규직의 백화점이라고 할 만하다.

지난 4월 1일부터 강원도교육청 앞에서 천막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강원도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강원지부의 이상난(54세) 지부장과 이명주(51세) 사무국장, 장은지(27세) 조직부장이 그들이다. 바람이 엉성한 천막을 사정없이 흔들어대고, 지나가는 차 소리에 말소리는 절로 높아진다. 한 달 가까운 시간, 이들을 학교가 아닌 교육청으로, 집이 아닌 천막으로 몰고 간 비정규직의 현실은 어떤가? 바른 배움과 가르침이 있어야할 교육 현장에, 어떠한 소외와 차별이 있었을까? 허름한 천막의 문을 열고, 이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본다.

고생이 많죠?

이상난 아니오. 사실 우리보다는 초창기에 일하셨던 분들이 더 고생 많았어요. 매년 계약을 해야 했고, 임금도 1년차나 10년차나 별 차이가 없었어요. 처음에는 학교장이 직접 고용하니까, 채용과정이나 임금체계가 더 다양하고 불안정했어요. 2012년부터 교육청 소속으로 채용하기 시작했고, 2013년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돼 조금 나아진 거죠. 그 과정에서 노조가 많은 역할을 했어요. 사실 급여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격적인 처우에 대한 심리적 고통이 컸어요. 급식소의 경우, 인원을 아주 최소한으로 배치하다 보니까, 한 사람이 병가나 휴가를 내게 되면 그게 고스란히 다른 동료들의 부담이 되는 거예요. 그걸 아니까 아프고 힘들어도 자리를 비우기 힘들어지죠. 경우에 따라서는 동료들끼리 다투기도 하구요. 서로 각박해지는 거죠.

 

 

비현실적인 최저인력배치가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의 한 축이군요.

이상난 맞아요. 대체인력제도도 운영하고 있지만, 인원이 시군마다 1~2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 달 전에 예약을 해야 쓸 수 있어요. 그런데 갑자기 사고가 나거나 아프면 결국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죠. 게다가 방학 때에는 급여도 못 받는 직종이 많아요. 그게, 우리가 하기 싫어서 일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농어촌지역 학교도서관 같은 경우는 방학 때 아이들이 어디 갈 곳이 워낙 없어 더욱 도서관을 열어야 하는데도 닫아두고 있거든요. 인건비 절감보다 사교육비 절감이 더 큰 문제인데 말이지요.
 
비정규직이 40% 넘지만, 학교 안에서
유령 같은 존재, 아이들에게조차 ‘을’ 취급


장은지 전체 교직원 가운데 학교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율이 40%를 넘어요. 급식소, 교실, 교문 앞, 교무실 등 학교 곳곳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회식이나 행사에서 이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로 취급받아요. 마치 유령처럼요. 스승의 날, 강사나 전문 상담사들도 감사의 인사를 받지 못합니다. 심지어 일부 학교에서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교사 이외에는 쓰지 못하도록 하고 있어요. 아이들에게 영화회화전문강사, 특수교육지도사처럼 그 어려운 호칭을 부르도록 하거나, 여사님처럼 모호한 호칭으로 부르기도 해요. 자칫 이런 호칭이 그 직업을 존중해주는 것 같지만, 실상 교사나 행정직 같은 정규직군과 비정규직군을 구별 짓는 것이죠. 실제로 생소한 그 명칭을 어떻게 아이들이 다 챙겨 부르겠어요. 그냥 “아줌마”라고 하게 되지요. 어른들이 부르는 방식대로, 아이들이 낮춰 부르는 거예요.

이명주 저는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갑을관계를 배우고 그 역할을 하는 게 문제라고 봐요. 학교에서 다면평가를 하느라 아이들과 학부모의 평가를 다음 해 고용지속 여부에 반영해요. 한 번도 보지 못한 영양사를 부모가 아이의 말만 듣고 평가한다는 것도 위험하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자신들의 ‘을’로 보고 있는 게 염려돼요. 벌써부터 아이들이 당연하게 차별 받을 사람과 그렇지 않을 사람의 구별을 배우는 거잖아요. 어떤 학교에서는 평가기간이 되면 강사선생님들께 피자를 사달라고 한대요. 안 사주면 평가를 나쁘게 주겠다는 거지요. 아이들의 평가에 자신의 생계가 달려 있으니 비정규직들은 자존심이 상하거나 부당해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요. ‘고용불안’이 아이들에게도 보이는 거예요. 똑같이 가르치는 일을 해도 누가 강사이고 누가 기간제교사인지, 차별이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학교는 그것을 방임하고 있고요.
 
아이들에게 배려, 존중을 가르치는 곳이 학교인데, 막상 그 ‘현장’에서는 그런 기본적인 예의가 없네요.

이상난 그런 셈이죠. 사람들은 비정규직으로 일하면, 그것이 단순히 부업이거나 임시적으로 하는 일이겠거니 하겠지만, 여기서 일하는 대부분은 생계로 이 일을 해요. 사람들은 이곳이 누군가의 온전한 직장이 된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필요에 따라 무수한 비정규직 직종을 만들어 놓고 정작 운영에서는 무책임한 거죠. 도교육청의 슬로건이 “모두를 위한 교육”이잖아요. 그런데 그 ‘모두’ 안에 우리는 해당되지 않는 것 같아요. 누리과정 때문에 도교육청이 힘든 건 알아요. 필요하면 고통분담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가끔 협상할 때 우리는 모두 ‘교육가족’이다, 그러니 어려울 때 ‘협조해 달라’라고 하지만, 왜 협조하고 배려하고 참아야하는 게 더 취약한 비정규직이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9급 기준으로 공무원들의 임금이 4.9% 상승될 때, 비정규직은 3.1% 상승돼요. 노조에서도 고민이 많았어요. 사실 최근 협상이 결렬된 것은 직종마다 다른 급여와 복리체계 때문이에요. 도교육청은 교육부가 정한 13개 직종에 대한 급여와 복리체계 개편을 제안했고 노조는 가입된 조합원의 전 직종으로 확대해줄 것을 요구한 겁니다. 우리 안에서 차별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모두를 위한 교육’에서 배제된 사람들,
직종이 비정규직일 뿐, 인격이 정규직의 반은 아니다!


이명주 학교 비정규직이 대부분 여성들이예요. 여성 비정규직의 상징이라 할 만하죠. 일하면서 제일 속상한 것 중에 하나는 우리가 하는 일의 직급이 비정규직이지, 우리의 인격이 정규직의 반은 아닌데 반쪽 취급당하는 거예요. 저 같은 경우 특수교육 아동을 바로 곁에서 돌보는 일을 하는데, 아이들 신변처리의 모든 과정뿐 아니라 아이의 감정변화에 대해서도 교사들보다 잘 알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부모를 만나는 것은 교사예요. 교사는 브리핑 전에 아이의 신변처리 결과만 지도사에게 확인하고 부모에게 보고하는 거지요. 실제로 면접 시험문제에서도 ‘학부모가 지도사에게 문의를 하면 어떻게 하느냐’라는 질문이 있는데 그 모범답안이 ‘담임선생님과 상의해 주세요’예요. 저도 그렇게 답하고 합격했고요. 교사는 쉬는 시간에 나가지만, 지도사는 한 순간도 아이와 떨어지지 않아요. 화장실도 밥도 아이를 챙기고서 겨우 급하게 처리하죠. 그런데도 우리는 허드렛일하고 보살피는 부차적인 존재로 인식되는 겁니다.
이명주(51) 사무국장. 작은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던 중, 아이가 백혈병에 걸려 오랜 시간 일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무사히 치료를 마쳤으나, 다시 학원을 할 여력이 없었다. 자활지원센터에서 특수교육지도사 과정을 마치고 학교에서 하루 종일 장애아동을 돌보는 일을 했다.
장은지(27) 조직국장. 그녀의 이동전화는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민원 전화로 많은 시간 통화중이다. 학교 현장 노동자는 아니지만 전화선 너머의 억울한 사연에 그녀의 마음이 먼저 아려온다.
 
내년 5월 문제가 다 해결된 상태에서 맞는 노동절이라면, 어떻게 보내고 싶으세요?

이상난 글쎄요. 노동절이 노동자들의 축제인데 우리는 매번 미해결 과제를 가지고 있어서 더 가열찬 투쟁을 외쳤던 것 같아요. 아, 문제가 다 해결되면 우리 조합원들과 나들이 가고 싶어요. 그동안 고생했고, 함께 하느라 힘든 마음 서로 아니까 한 번쯤 우리 노동자들의 생일날, 축제처럼 보내는 거예요. 이 천막을 나와 교육감도 함께 손잡고!

모든 노동자들이 차별 없이 합의할 수 있는 수준으로 문제가 해결된 어느 노동절이 우리 생애에 올까 싶다가도, 저 소박한 소원을 들으니 한 번쯤은 꼭 그런 노동절을 맞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옛날 독일 탄광에서는 지하 깊이 내려갈 때 카나리아를 먼저 내려 보냈다고 한다. 카나리아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곳까지가 공기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카나리아는 생존의 기준점 역할을 했다. 이 시대가 살만한가를 측정하는 기준은 더 취약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조건을 보면 된다. 비정규직은 노동계의 기준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살만한 세상이라면, 모두가 충분히 살만한 세상일 것이다. 세 명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는 온 몸으로 살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천막에서 버티고 있었다. 인터뷰를 하는 중에 장은지 사무국장의 전화 받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모 학교에서 조리사가 병가를 자주 낸다는 이유로 행정실장이 불러 무릎을 꿇렸다는 것이다. 안타까움과 서러움과 분노가 서로의 얼굴에서 읽힌다. 학교다, 다른 곳도 아닌. 아이들이 인간됨을 배워야할 곳에서 차별과 소외를 먼저 배운다. 우리 아이들도 자라서 노동자가 될 것이다. 그 아이들이 더 좋은 노동조건에서 일하도록 지금 어른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현재를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드는 일. 이 투쟁은 현재이면서 미래다.

허소영 시민기자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