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번이나 대학은 중요하지 않아요. 그런 것들은 타인을 배려하는 용어는 아니지요.”
지난해 위암 투병소식을 알린 원영만 선생. 카랑카랑한 목소리, 소신 있게 던지는 자신감 있는 말투에서 그의 강건함이 묻어나온다. 반가웠다.
지난 1989년 설립돼 올해로 27년의 역사를 가진 전교조. 전교조의 살아있는 역사라 불리는 원영만 선생(63세)과 동지이자 든든한 조력자로 그와 함께 하고 있는 부인 황선희 선생(61세)을 만났다.

“처음 교사 발령을 받았을 때는 좋은 교사가 되고자 하는 생각이었어요. 제가 교직생활을 시작한 80년대는 학력고사 같은 시험으로 아이들은 물론 학교까지 일률적으로 줄세우기 교육을 강요했죠. 시험이 다가오면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암암리에 학교 오지 말라고까지 했었거든요. 단순히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차별 받는 그런 교육현장에서는 좋은 교사가 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초등학교 교사로 작년 8월에 퇴임한 황선희 선생은 좋은 교사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끊임없이 고민했다고 한다.
 

“자본과 경쟁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아이들은 경주마에요. 주변의 경치도 못보고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는… 이들에게 자신의 적성이 무엇인지, 진짜 희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런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 교사의 할 일이지요.”

전교조 결성으로 남편은 구속되고, 아내는 해임되고


아이의 꿈이나 적성이 무엇인지, 옆도 못보고 이웃이 어떤 사람들인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지 못하는 인생이 과연 옳은 것인가. 오직 성적과 경쟁만 가르치는 제도교육의 불합리함과 교육시스템에 분노를 느꼈다. 부부는 분노에 좌절하지 않고 같은 생각을 가진 교사들과 모임을 시작했다. 1985년부터 교사단체의 모임을 주도하면서 전교조 전신인 YMCA교육자협의회에 이어 전국교사협의회를 조직하고 1989년 전교조를 결성하게 된다. 1980년대 서슬 퍼런 군사정권하에서 조직을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국 전교조 시·도지부가 결성되면서 노태우 정권은 당시 전국에서 1천5백명의 교사를 해직시키고 많은 교사들을 구속했다. 그 중심에 원영만·황선희 부부가 있었다. 그 해 원영만 선생은 구속되고 황선희 선생은 해임됐다.
그렇게 학교에서 밀려난 부부는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전교조 활동을 함께하며 노동운동 등 사회 전반에 대한 구조적 인식을 넓혀갔다. 1994년 부부는 복직되고 5년 후 전교조는 합법화 되었다. 그 후 변함없는 열정으로 전교조 활동을 이어나간다.
 

아이들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교육적인 행위를 거부할 수 있는 용기, 아이들 중심으로 생각하면 어렵더라도 그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거죠. 손해를 보더라고 옳은 길이라 생각되면 당당하게 갈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후회 없이 가야죠.”

남들은 가지 않는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게 한 원동력이며 이유다. 또, 그 지난한 길에 동행해준 사람들에게서 힘을 얻고 감동을 받기 때문에 힘들어도 갈 수 있다고 웃으며 말하는 부부. 사람에 대한 애정이 가장 밑바탕에 있기에 가능한 일인 것 같다.
 

“인류의 역사를 봤을 때 우리나라가 해방된 이후 60~70년은 찰나에 지나지 않아요.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은 없어요. 낙숫물로 바위에 구멍이 뚫리듯 서서히 바뀌게 되지 않을까요. 전교조나 노동운동 하는 분들, 환경운동 등 각 분야에서 시민운동을 하는 분들이 많은데 서로 소통하고 연대한다면, 여기에 좀 더 힘을 모으면 변화는 금방 올 수 있습니다.”
어느 곳에 서 있느냐에 따라 보이는 풍경이 다르듯 사회에서 약자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때 ‘살만하다’, ‘행복하다’라고 느낄 수 있을 때가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말하는 원영만 선생. 그는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사회가 아닌 가장 돈 없고 가장 불편한 입장에서 봤을 때 평안한 세상을 꿈꾼다. 그 변화가 결코 먼 미래가 아닐 거라 장담한다.

전교조 활동을 통해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전교조 활동이나 조직활동을 통해서 가장 크게 얻은 것은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에 대한 가치가 커지고 더불어 인식이 확장된 것이죠. 다양한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볼 수 있으면 조직활동은 반드시 필요해요. 교사들의 모임, 연수 등을 통해서 또 다양한 집회에 참여하면서 다시 한 번 가졌던 올바른 시각에 대해 확인하고, 집회 자체에서 공부하고 끊임없이 의식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합니다.”

황선희 선생은 이제 막 교사생활을 시작한 새내기 교사들에게도 필요한 과정이 될 거라고 말한다. 자신 또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무뎌지지 않기 위해 날을 벼르고 있다고 한다.
교육과 사회전반의 문제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하면서도 부부는 서로의 말을 끊지 않았다. 한 쪽이 이야기를 하면 다 듣고 있다가 끝나면 보충하듯 설명해준다. 함께 험난한 세월의 파고를 잘 넘을 수 있는 힘을 엿볼 수 있었다.
부부는 올해 초 《동행》이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바둑용어 중에 복기라고 있죠? 이기던 지던 되놓기를 해서 바둑 돌 한 점 한 점 되짚어 보듯이 살아온 서로의 삶을 되짚어 보고 싶었어요. 우리가 걸어온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발자취를 보여주면 좀 더 쉽게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또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책을 쓰게 되었지요. 활동을 하느라 미처 함께하지 못했던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가 이렇게 고민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책을 읽고 자녀들의 반응이 어땠냐고 물으니 둘째 며느리가 “존경스럽다”라고 했다며 멋쩍게 웃는 부부. 책은 아내인 황선희 선생이 틈틈히 적어 놓은 일기와 그 동안 활동했던 자료들을 모은 것들이라 당시의 기록들이 생생하다.
사람들은 초심이 변하는 것을 경계한다. 그러나 원영만 선생은 ‘초심은 그때 당시 가졌던 마음이기 때문에 시대와 상황이 변하면 더 나은 생각으로 바뀔 수 있다, 더 넓게 세상을 보면서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며 원래 가졌던 마음과 변한 만큼 더 넓어진 생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시간이 흘러도 열정적 사고를 가진 부부의 비결인 것 같다.
원영만 선생은 전교조 활동가로 올 8월 정년퇴임을 한다. 황선희 선생은 지난해 8월로 퇴직했다. 원영만 선생은 조합활동을 마치면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는 기회를 많이 가지려고 한다.

“행복이라는 것은 자기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될 때 느낄 수 있는 거예요. 오늘을 행복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 줘야 해요. 내일 행복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면 내일도 행복할 수 없어요. 오늘 행복해야지 내일도 행복합니다. 행복을 누리면서 꿈을 찾아가야 해요.”
부부의 행복론이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시 <가지 않은 길>에서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라며 노래했다.
시처럼 원영만·황선희 부부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그들도 선택한 삶이 어떠했는지 물음표를 달았다. 그에 대한 답이 그들이 엮은 《동행》에 있을까?

 

 

 

김정운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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