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통신-젊은 예술가의 시선, 두 번째 이야기] 전쟁의 상흔, 지붕 없는 교회(1)
[독일통신-젊은 예술가의 시선, 두 번째 이야기] 전쟁의 상흔, 지붕 없는 교회(1)
  • 정은비
  • 승인 2016.05.12 18: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일 통일 전 서베를린의 중앙역을 담당했던 동물원역(Bahnhof Zoologischer Garten)은 통일 된 베를린에서도 여전히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베를린 대부분의 교통이 통과하는 요충지이자, 유명 영화배우들도 즐겨 방문하는 명품숍이 줄지어 들어 선 쿠담거리와 인접해 있다. 쉬는 날이면 역사 바로 앞의 동물원이 가족과 연인들의 소풍장소로서 북적일 뿐 아니라, 이곳 광장에 독일 최대의 기념일인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이면 커다란 규모의 마켓이 들어선다. 독일의 주요 축구경기가 열리면 이곳에 스크린이 들어서 다 함께 응원을 하기도 한다. 이곳은 베를린 거주자에게는 소위 ‘만남의 광장’이고, 베를린을 찾은 관광객에게는 누구나 한 번쯤은 지나치는 주요 관광지다. 그런데 이곳에 지붕이 없는 흉물스러운 모습의 교회가 세워져있다면, 쉽게 믿을 수 있겠는가?

‘지붕 없는 교회’, ‘부서진 교회’, ‘깨진 교회’ 등 별명도 많은 이 교회의 본 명칭은 Kaiser-WilhelmGedächtniskirche로 한국어로는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라 부를 수 있겠다. 베를린의 5대 관광지 중 하나인 이 교회는 신관과 구관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현재 예배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름 35미터에 높이가 20.5미터인 신관은 2만1천292개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벌집모양으로 박아 콘크리트로 지어졌다. 이런 화려하고 독특한 겉모습 때문에 베를린 시민들은 신관을 ‘화장품 박스’나 ‘립스틱 통’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밖에도 황동 예수상과 8각형의 설교단, 그리고 5천여개의
파이프로 만든 오르간이 비치되는 등 예술성 덕분에 예배자는 물론이고 관광객들까지 모여들어 1천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교회는 늘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반면, 이 교회의 구관은 113미터 높이의 첨탑과 2천개가 넘는 신도석을 가진 교회로 1895년 9월 1일 축성되었다. 독일 제국의 황제였던 카이저 빌헬름 2세가 빌헬름 1세를 기념하기 위해 그의 생일인 1891년 3월 22일에 주춧돌을 놓았고, 교회의 디자인 공모를 통해 2천740m²의 벽을 모자이크로 아름답게 장식한 프란츠 슈베츠텐의 디자인이 채택되었다. 제국의 꿈처럼 높이 솟아오른 아름답고도 웅장한 교회의 운명은 안타깝게도 그리 오래 가지 못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3년 9월 23일 밤에 있었던 연합군의 공습으로 첨탑의 일부와 중앙현관만 남긴 채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된 것이다. 113미터였던 이 교회는 현재 63미터로 거의 절반에 이르는 높이가 무너졌지만, 정시에 울리는 종소리만큼은 그 시절의 위엄을 잃지 않은 듯하다. 지나던 사람들의 말소리를 잠시 멈추게 하고, 그들의 모든 시선은 간신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의 다 깨진 종루를 향하게 한다.

올해로 종전 71주년을 맞는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에서는 참 많은 역사가 이루어졌다. 파괴된 베를린은 동서로 나뉘어져 베를린장벽이 세워지는 불운을 겪는 동시에, 서독은 세계 최강국으로 눈부신 발전을 했다. 1990년 10월 3일 독일국민들은 그들의 손으로 직접 베를린장벽을 무너뜨리고 통일을 이루었다. 통일 후에 더 많은 사람들이 베를린을 찾을 수 있게 되었는데, 특히 냉전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은 베를린은 세계의 주요 정치인들과 문화인들이 즐겨 찾게 됨으로서 베를린은 특색 있는 도시로서 비약적 발전을 해왔다.

잘려나간 예수상의 팔

그러나 이런 북새통 같은 분주한 베를린의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는 70여 년 전 그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다. 바쁜 걸음을 재촉하던 베를린시민들, 쇼핑가방을 잔뜩 들은 관광객들, 한 손에 풍선을 들고 동물원을 향하던 어린이들의 제각각 삶과 시간들이, 다 부수어진 몸으로도 정시면 제 역할을 하느라 뎅뎅 거리는 교회 지붕으로 모이게 된다. 전쟁의 상처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안고 있는 이 교회를 마주했을 때 숙연한 마음이 들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교회는 70년이 넘도록 그의 참혹한 몸뚱이로 우리들에게 ‘전쟁의 잔혹함’을 고발하며 서 있다.

잘려나간 예수상의 팔

팔이 잘려나간 몰골의 예수상을 마주했을 때 비참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특정 종교인이 아니어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독일은 국민의 42.9%가 카톨릭교, 42%가 개신교로서 예수의 탄생일인 성탄절은 물론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사순절과 오순절까지 연휴로 지정하는 국가이다. 이런 국가에서 팔이 잘려나간 예수상을 복원 없이 70년이 넘도록 세워둔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한 무게가 죄책감이 되어 가슴을 누를 것이다. 이 예수상을 자신의 눈으로 마주해야한다는 것은 독일인들에게 분명히 고통이다.

세계2차대전 중 연합군의 공습으로 종루의 가장자리만 남은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Kaiser Wilhelm Gedächtniskirche)

참혹한 총탄의 흔적

날아오는 적군의 총탄을 피해 이 교회건물에 몸을 숨겼던 것일까. 사람 키보다 조금 높은 곳까지 총탄이 스치고 박혔던 자국이 선명히 나 있다. 얼마나 많은 목숨들이 이 교회 앞에서 스러져갔을까.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총부리를 겨눌 수밖에 없었던 70여년 전에 파란 눈의 젊은이들이 여기에서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을까. 총탄의 흔적을 어루만져 보는 지금의 독일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대들의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였을지도 모를 영혼들을 위해 묵념을 하고 있는 독일인들 옆에서, 이곳을 관광지 정도로 여기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소리조차 죄송스럽게 느껴졌다.

살점이 떨어져나간 교회의 벽면)

살점이 떨어져나간 교회의 벽면

칼로 도려내어진 것일까, 포탄의 불꽃에 입은 화상인 것일까. 교회의 몸통 부분 군데군데에 무너져 내린 벽면이, 마치 살가죽이 벗겨져 허연 뼈가 드러나려는 신음하는 병사의 모습과 닮아 더욱 처참하게 느껴진다. 시커멓게 살가죽이 타버린 듯 그을음이 역력하지만, 왜 이 교회는 깨끗하게 단장도 하지 않고 70년 전의 처참한 그 모습 그대로 서 있는 것일까?

 

 

독일에서 정은비 시민기자(타악기연주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