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와 보니 어제 아이들이 갖고 놀았던 장난감들이 바닥 여기저기 놓여있다. 부엌 싱크대엔 어제 저녁을 먹고 끝내지 못한 설거지 거리가 쌓여있다. 밥통은 비어있다. 남편은 밥솥과 냉장고를 열어보고는 방으로 다시 들어간다. 몇 분되지 않는 그 짧은 시간동안 내 머릿속엔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간다. 갑자기 서운해지며 기분이 나빠진다. 왜일까? 남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단지 냉장고를 열어보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을 뿐인데. 나는 그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아, 거실은 엉망이고, 밥솥엔 밥도 없고 설거지 거리는 가득 차 있고, 도대체 이 여자는 집에서 하는 일이 뭐야. 나가서 힘들게 돈 벌어다주면 집에서 맛있는 반찬도 해놓고 청소도 깔끔하게 해놓는 게 기본 아닌가? 정말 마음에 안 든다.’

남편이 속으로 이렇게 말했으리라 생각하니 나도 슬슬 억울해지기 시작한다. ‘어제 저녁 아이들과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저녁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느라 나도 나름 지쳤던 건데 매일도 아니고 그럴 수도 있지. 그 정도 이해도 못해주나? 정말 너무하네.’ 혼자 이렇게 생각하다가 결국엔 ‘그래, 내가 참 게으르긴 한 것 같아. 남들도 다 힘들지만 부지런히 밥하고 청소하고 다하는데 문제는 내가 게으르기 때문이야’라며 죄책감마저 느끼고 나니 급기야 순식간에 우울해진다.

이렇게 나는 나 자신을 평가하고 판단하고, 남편의 생각을 추측하며 나 자신을 비난하고 남편 또한 나를 비난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후에 비폭력대화의 모델(관찰, 느낌, 욕구, 부탁)중 첫 요소인 관찰을 배우고 난 후, 내가 어떤 상황을 그저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관찰이 잘 안 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폭력대화에서는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생각도 관찰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내가 ~한 생각을 하고 있구나’라고 알아차리기. ‘내가 지금 나를 게으르고 형편없다고 비난하고 있구나. 남편이 나를 비난할거라고 추측하고 있구나.’ 이렇게 내가 생각에 빠져있다고 알아차리는 순간, 그 생각에서 빠져 나올 수 있게 되고, 남편을 내 맘대로 오해하지 않고 나 자신을 연민으로 대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살아가는 여러 상황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 추측을 하고, 판단을 내리고, 선입관을 가지고, 꼬리표를 붙이고, 평가를 하게 된다. 그렇게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는 사이 그 뒤에 감춰진 진실은 볼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어쩌면 스스로 상처를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가 어떤 색으로 세상을 덧칠하고 평가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쯤 생각해보자. 이제는 내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한 발짝 떨어져서 관찰하는 연습을 해보자.

서현정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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