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독립영화의 맏형, 고 이성규 감독

춘천 출신으로 우리나라 독립영화계에 큰 족적을 남기고 50년의 짧은 삶을 마감한 고 이성규 감독.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년 5개월이 넘은 지난 4월 7일 ‘제3회 들꽃영화상’ 공로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들꽃영화상’은 저예산 독립영화에 주는 상으로 2014년 시작되었다. 이 감독은 사후인 2014년 4월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선정하는 2013년을 빛낸 독립영화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감독의 생애는 한국 독립영화의 역사이고, 현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감독은 2010년 <오래된 인력거>로 아시아 최초로 암스테르담 다큐멘터리 영화제에 진출해 한국 다큐멘터리를 세계에 알리며 큰 화제를 모았다. <오래된 인력거>는 이 감독이 10년간이나 인도에서 거주하며 현대까지도 사실상 운송수단으로 남아있는 인도의 인력거를 인문학적 접근과 시적 영상으로 엮어낸 휴먼다큐다.

고 이성규 감독(사진제공=춘천다큐영화제 김혜선 조직위원장)

이 감독은 독립PD협회 초대회장을 지냈으며 DMZ영화제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그런 이 감독은 안타깝게도 2013년 영화 <시바, 인생을 던져>의 개봉을 준비하던 중 간암으로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인도에서 작업하던 중 간염에 걸렸다고 한다. 10년 넘게 인도에서 작업을 해오다 한국에 돌아와 디스크 치료를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가 간암을 진단받은 후 불과 몇 달 만에 세상을 떠나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이창재 감독이 임종이 임박한 호스피스 병동 사람들을 담은 영화 <목숨>의 촬영을 시작할 즈음 이 감독으로부터 자신의 마지막을 촬영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지만, 촬영 시작 일주일 만에 세상을 떠나고야 말았다. 이 감독의 유골 중 일부는 그가 평소에 그토록 다시 가고 싶어 했던 인도의 갠지스 강에 뿌려졌다.

춘천 소양로 기와집골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 이 감독은 한림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1990년 작가로 방송을 시작해 제3영상과 인디컴, 프리랜서를 거쳐 다큐멘터리 연출자로 활동하며 인도와 네팔전문가로 활약했다. 생전 이주노동자에 대해 관심이 높아 그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여러 편 제작하기도 했다. 2000년 제작한 독립영화 〈보이지 않는 전쟁-인도 비하르 리포트〉는 같은 해 서울인권영화제 및 한국독립영화제 본선 경쟁작에 오르기도 했다. KBS 수요기획으로 방영된 〈국경 없는 마을-안산 원곡동 사람들〉(2001년), 〈가리봉동 사람들〉(2002년), 〈신과 재혼한 여인들〉(2002) 등 10여 편의 다큐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의 삶과 인도의 종교문제를 다루어 큰 울림을 주었다. 2004년에는 3년 동안 인도네시아와 스리랑카 노동자 가족의 삶과 귀향 과정을 그린 휴먼다큐 〈어떤 귀향〉이 KBS 설날특집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이 감독은 한국 독립영화의 맏형이라 불린다. 그래서 이 감독의 갑작스런 죽음이 독립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그만큼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13년 12월 11일 춘천의 한 영화관에서 ‘한 사람만 모르는 특별한 개봉’이 있었다. 간암선고를 받고 급격히 증세가 악화된 이 감독이 〈시바, 인생을 던져〉 상영을 앞두고 관객이 가득 찬 모습을 보고 싶다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에 이 감독의 후배인 이성용(52) ㈜하우즈 대표가 지인들과 뜻을 모아 상영을 준비했다. 상영을 알리자 전국에서 관객이 몰려들었다. 500석의 좌석은 물론 복도까지 가득 메운 관객들 앞에 혼수상태에 빠져 사경을 헤매던 이 감독이 휠체어에 앉아 무대 인사를 했다. ‘춘천다큐멘터리영화제’ 김혜선 조직위원장은 사경을 헤매던 이 감독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국의 예술영화만 사랑할 것이 아니라 한국의 예술영화도 사랑해서 그런 영화들이 계속 순환될 수 있는 힘과 구조를 만들어 줘야 한다, 한국 독립영화의 르네상스를 만들어 주기를 부탁한다”는 유언과 같은 인사를 했다고 회상했다. 이 감독은 이날의 무대 인사를 마지막으로 다음날인 2013년 12월 13일 오전 2시 20분 세상을 떠나 춘천의 한 추모원에 영면해 있다.

이 감독의 마지막 영화 〈시바, 인생을 던져〉는 그 일주일쯤 뒤인 12월 19일 정식 개봉해 다양성 영화부문 관객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이 감독의 마지막 바람대로 한국독립영화는 마침내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이 감독과 함께 〈시바, 인생을 던져〉의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했던 진모명 감독(춘천다큐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제작한 독립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전국관객 500만을 넘기는 흥행기록을 세운 것이다. 이 영화는 다양한 국제영화제에 초대돼 여러 번 수상하는 성과를 이뤘다.

이 감독을 추모하고 한국 독립영화의 지속적 관심을 촉발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다. 2013년 춘천다큐멘터리영화제 준비위원회가 구성되어 3년 동안 영화제를 개최했다. 올해는 11월쯤 영화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춘천다큐멘터리영화제 김혜선 조직위원장은 “이 감독의 유지를 받들어 독립영화의 저변을 확대하고 독립영화 제작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업을 해나가고 싶다”며, 이를 위해 영화제와 함께 ‘다큐영상 아카데미’나 ‘다큐 캠프’ 등으로 미래 영상세대를 발굴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 위원장은 한국독립영화의 발전을 위해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는 물론 강원도나 춘천시의 지원도 촉구했다. 김 위원장은 전주국제영화제나 부산국제영화제의 사례에서 보듯 춘천다큐영화제가 국제적으로 발전하려면 자치단체의 지속적인 관심과 시민들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피카소나 반 고흐가 아니더라도 양구의 박수근 미술관이나 이외수 작가의 감성마을에서 보듯 예술가 한 사람이 지역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소외된 계층과 남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고민하던 고 이성규 감독의 시대정신은 춘천 문화예술의 한 축을 형성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 감독이 유언처럼 남긴 한국 독립영화의 르네상스가 춘천에서 꽃 피울 날을 기대해본다.

오동철 시민기자

취재에 도움을 준 춘천다큐영화제 김혜선 조직위원장과 관계자들께 감사드리며, 고 이성규 감독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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