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봄 당시 강원대에서도 2~3천명이 시위 벌여
100여명 연행되고 17명 구속


올해로 5·18 민주화운동 36주년을 맞는다. 5·18 민주화운동은 한국현대사에서 민주주의의 진전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 세대 이상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임을 위한 행진곡> 기념곡 지정을 둘러싼 논란과 ‘북한 간첩들이 선동해 일어난 폭동’ 등의 왜곡을 보면 5.18 민주화운동이 단지 한 세대 전의 과거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최근 한국의 민주주의는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이 와중에 5·18민주화 운동을 해외에 알린 한 독일동포가 5·18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입국했다가 정부로부터 강제 출국 당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5·18기념재단은 “독일 교민 이종현(80) 한민족유럽연대 상임고문이 지난 12일 오전 항공편을 이용해 인천공항에 도착했지만, 석연찮은 이유로 인천공항출입국관리소에 억류됐다가 이튿날 낮 12시 30분 항공편으로 강제 출국됐다”고 13일 밝혔다.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사람’의 입국을 금지한다고 규정한 출입국관리법 11조에 근거해 이 상임고문의 입국을 불허한 것으로 알려졌다.

흔히 5·18 민주화운동이라고 하면 광주를 떠올린다. 광주가 5·18 민주화운동의 성지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역사를 어느 일정 시기나 공간만을 따로 떼어 보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은 1979년 10·26사건으로 박정희가 사망한 이후 민주주의를 회복하고자 했던 세력과 다시 권력을 장악해 유신체제를 유지하려고 했던 이른바 ‘신군부’ 세력이 대립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이었다.
1980년 ‘민주화의 봄’을 맞아 서울을 비롯해 전국에서 계엄철폐를 외치며 시위가 일어났다. 춘천도 예외는 아니었다. 춘천의 민주화운동에서 강원대를 빼놓고는 이야기를 할 수 없다. 당시 전교생이 4천명이던 시절, 많게는 2~3천명이 민주화 시위를 벌였다. 그로 인해 100여명이 연행되고 17명이 구속됐다. 계속적으로 확대되는 민주화 시위에 신군부세력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5월 15일 서울역에서 있었던 대규모 시위를 계기로 임계점이 넘었다고 판단한 신군부세력은 5월 17일 24시를 기해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이에 가장 격렬하게 저항한 곳이 광주였다. 그렇게 광주항쟁의 서막이 올랐다.
노태우 정권 당시 “광주학살 및 12.12 반란 주모자 노태우 퇴진” 시위 장면

당시 강원대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최윤(59·당시 영어교육과 2학년) 씨는 “비록 광주가 1980년 민주화운동에서 가장 처참한 희생을 치렀지만, 5·18 민주화운동은 광주에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신군부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맞선 전국적인 항쟁이자 운동이었다는 것이다. 5·18 민주화운동 36주년을 맞아 당시 춘천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는 일은 지역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그 의미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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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흥우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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