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오규원의 <한 잎의 여자>. 중학교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처음 읽고 쓰게 했던 시다. 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었음에도 다시 친구에게 이 시를 쓴 편지를 보냈던 것 같다. 아직도 그때 그 시를 읽었던 기억을 갖고 있던 친구는 물푸레나무가 너무 궁금했다고 한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과 식물원에 가서 물푸레나무를 처음 보고 그 한 잎의 솜털을 찾으려고 애를 쓰다 나뭇가지 사이로 비친 햇살에 반짝이던 잎 뒷면의 솜털을 보고 환호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최근 가벼운 트레킹을 하면서 물푸레나무가 ‘물을 푸르게 하는 나무’라는 뜻을 가진 아름다운 우리 이름인 것을 알았다. 한 잎의 여자처럼 나긋나긋할 것 같은 물푸레나무는 서당 어린이들에겐 공포의 대상인 회초리나 곤장이 되기도 하고, 또 야구방망이가 되기도 한다. 시에 대한 오래된 기억이 여러 의미로 확장되며 내 몸에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좌)여초서예관, (우)한국시집박물관 전시실
지난주에 인제 한국시집박물관과 여초서예관, 그리고 만해마을에 있는 만해박물관에 들렀다. 여초서예관과 한국시집박물관은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고 만해박물관도 멀지 않은 거리였다. 인제를 이야기하면서 박물관에 대한 정보를 접한 적이 별로 없어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세 박물관이 생소하면서도 반가웠다. 하지만 나흘이나 이어지는 연휴임에도 불구하고 방문객은 별로 없고, 박물관도 지루한 오후를 애써 견디는 듯 보였다.

여초서예관에서 여초선생의 다양한 작품을 보면서 재미를 만끽했다. 그 중 2012년 건축대상을 받았다는 건축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었다. 책을 만들면서 언젠가 책을 보고 토론도 가능한 공간을 같이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한국시집박물관은 외형에 맞는 다양한 시도를 외면하고 있는 듯 보여 안타까웠다.

해를 거듭할수록 출판시장은 열악해지고 독서 인구는 줄어든다고 한다. 새로운 개념의 독서문화운동이 그 대안으로 많이 거론되고 있다. 책 관련 공공기관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독서 문화를 적극적으로 향유하도록 돕는 일일 것이다. 공공기관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으려면 그 장소가 이웃집 드나들 듯 편하게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즈음 일반인을 대상으로 박물관이나 도서관에서 쉽게 들을 수 없는 인문학강좌나 공연 등 다양한 시도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어 반가운 마음이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딱딱한 열람실이 아닌 편하게 앉아서 책을 펼쳐볼 수 있는 공간. 독서교육이라는 딱딱한 의미보다는 말솜씨 좋은 사서 선생님이나 지역 활동가를 초빙해서 아이들을 책의 세계로 유혹해 보는 것은 어떨까? 책 한 권, 시 한편을 따라 걷는 지식의 미로에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 심어 놓고 지루하지 않게 도착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독서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물푸레나무의 열매에는 납작한 주걱모양의 날개가 붙어 있고 한꺼번에 수십 개씩 무더기로 달려 있다가 세찬 겨울바람을 타고 새로운 땅을 찾아 제각기 멀리 날아간다고 한다. 아이 적에 이러한 책 씨앗을 품고 새로운 땅으로 날아간다면 어떠한 환경에서도 튼튼하게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원미경 (도서출판 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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