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전통을 존중하고 과거사 반성에 철저한 나라라는 점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이미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전쟁의 처참함을 두고두고 반성하기 위해 이 붕괴 직전의 건물을 방치하고 있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 아닐까?

카이저빌헬름기념교회의 신관을 건축한 유명 건축가 에곤 아이어만(Egon Eiermann 1904∼1970)은 공모전에 당선되었던 1961년 당시, 붕괴의 위험이 있는 옛 교회건물을 철거하려고 했다. 100년이 넘은 건축물이 전쟁으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은 데다 그 아래를 다니는 지하철의 영향으로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으니 철거하겠다는 생각이 당연할 것이다. 실제로 교회의 신관에서 의자에 앉아 예배를 보면, 지하철이 지날 때마다 의자에 진동이 전해지는 것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교회 철거계획이 알려지자 시민들이 엄청나게 반대했다. 고통스러운 전쟁을 이겨낸 교회를 이렇게 철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전쟁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이 흉측한 건물을 가까이 두고 영원히 트라우마로 간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자 베를린 시와 정부가 함께 거들었고, 이 교회의 철거에 반대하는 모금 캠페인으로 420만유로(한화 약 63억원)가 걷혔다. 그렇게 살아남게 된 옛 건물은 새 건물과 함께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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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년부터 본격적인 보수공사를 시작해 2013년 말 서서히 다시 옛 건물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전쟁을 전후로 한 카이저빌헬름기념교회의 신·구건물이 나란히 서있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신 건물이 구 건물을 호위하고 있는 모습 같다고 말하곤 한다. 보수공사를 했지만 옛 건물의 외관이 달라진 곳은 없다. 날아간 지붕을 다시 씌우지도 않았고, 검게 탄 벽돌들을 깨끗하게 청소하지도 않았고, 절단 된 예수상의 팔을 다시 붙이지도 않았다. 이 불안정한 상흔들을 보존하며 보수공사를 하는 것이 비용과 수고 면에서도 아마 훨씬 더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교회의 상흔들은 아무것도 덧붙여지지도 채색되어지지도 않았다. 이 교회는 여전히 처참하고 흉측한 모습으로 우리들을 아프게 한다. 하지만 베를린시민들은, 독일인들은 이 상처투성이 교회를 사랑하고 있고 지켜가고 있다. 종전 후 70여 년 동안 베를린은 많은 역사를 거치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그리고 어떻게 미래로 나아갈 것인지 제시해주고 있다.

우리 한국에서도 자연적인 노화, 천재지변, 그 밖의 사고를 통해 크고 작은 문화유적지 손실이 있었다. 그때에 우리 국민들도 독일인들만큼이나 마음 아파했다. 많은 문화유적지들이 역경을 딛고 다시 그 가치를 보존하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았던 적도 있어 온 국민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시민들의 손으로 지켜낸 문화유적지는 당장은 역사적 가치만을 지켜낸 것으로만 보이겠지만, 위기의 순간에 문화유적지를 지키기 위해 마음을 모은 지금 세대의 이야기 또한 장차 가치 있는 감동적인 역사이야기로 남겨질 것이다.

우리 춘천에도 문화유적지를 지키기 위해 힘쓰는 사람들이 많다. 문화유적지의 가치를 알고 지키기 위한 마음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감동을 주고 자긍심을 갖게 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 눈앞의 경제적 이득과 문화유적지의 가치를 꼭 선택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두 가지가 공존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가장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다.
 

2008년 ‘푸른 빛 속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 (Berliner Kaiser-Wihlem-Gedächtniskirche in Blau)’ 축제 당시의 교회 신·구 건물 ⓒAlexander Hausdorf

베를린카이저빌헬름기념교회 근처의 명품숍 거리와 동물원에서 얻는 경제적 수입과 구 서베를린의 중심인 동물원역의 교통요충지로서의 이득을 비교한다면, 반파된 이 교회에서 벌어들이는 당장의 경제적 수익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기에, ‘베를린 동물원역’ 앞은 그 어떤 세계적인 도시도 흉내 낼 수 없는 특색을 갖춘 도시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음이 분명하다. 반파된 이 교회가 보고 싶어서 베를린을 찾는 관광객들이 정말 많다. 그리고 그들은 남은 시간을 명품숍 거리나 동물원에서 보내고는 한다. 이러한 역사가 담겨진 교회는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고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곳은 독일인들이 역사를 대하는 태도와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독일에서 정은비 시민기자(타악기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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