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산업사회에서 부자나라나 가난한 나라나 할 것 없이 농업을 유지해 가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잘 산다는 서유럽 국가들의 농업 관련 논의를 보다보면 이런 얘기도 나온다.
“포도주가 강을 이루고 치즈가 산을 이루는데, 농업 보조를 계속해야 하는가?”

나라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농업 인구 비율이 2% 남짓밖에 안 되는데도 그렇다. 쌀값을 포함한 농산물 물가를 정부가 관리하면서 아주 낮게 유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밥 굶지 않게 하자는 거다. 일종의 보편적 복지에 해당한다. 좋은 일이다. 또 노동자들 생활비가 적게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식료품값이 낮게 유지돼야 기업은 임금을 낮은 수준으로 잡아 둘 수 있다. 그래야 제품가격을 싸게 매길 수 있다. 외국에 물건 내다 팔 때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다. 역시 좋은 일이다.

다 좋은데 문제는 농민이다. 죽겠다고 아우성을 친다. 방법은 농민 숫자를 점차 줄이는 거다. 농가를 퇴출시키고 통폐합한다. 우수 농가를 선별해서 집중 지원한다. 이른바 경쟁력을 갖춘 소수 농가만 큰 규모로 농사를 짓도록 한다. 간단하고 분명하고 쉽다. 도태되는 소규모 농가, 소농은 게으르거나, 실력이 없거나, 자본이 없거나 하여튼 제 잘못이다. 제 잘못을 나라에 떠넘기려 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는 이와 같은 정부의 일관성 있는 정책기조에 대해서, 세금 내는 시민들이 얼마나 동의해줄 것이냐다. 과거 시민들이 농산물 수입 자유화에 반대하는 농민들 편에 서는 바람에 정부의 의지가 꺾이거나 왜곡되는 수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은근하고 끈기 있고 드러나지 않게, 노골적이지 않은 세련된 말과 논리로 시민들을 설득하고 암묵적 동의를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농가 구조조정은 이미 상당한 정도로 진행됐다. 최근 20년 새 약 40% 정도 농가 인구를 감소시켰다. 지금의 반 수준으로, 조금만 더 줄일 수 있다면 더 이상 농업문제로 나라가 시끄러울 일은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 여기에 가장 크게 이바지한 것이 바로 경쟁력이라고 하는 말 한 마디다.

‘경쟁력’이라는 단어는 마치 도깨비 방망이와 같다. 원하는 목표를 이루는데 이보다 더 좋은 수단은 없다. 이는 오랜 교육의 성과다. 그 어떤 저항도 ‘경쟁력’이라는 단어 하나로 다 무력화시켜버릴 수 있다. 콩나물시루 같은 좁아터진 교실에서 콩나물처럼 자라난 사람들이 드디어 이 사회를 가득 채우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경쟁에 내몰려 살아왔기 때문에 경쟁을 아주 당연한 것으로 내면화하고 있다. 장유유서(長幼有序), 어른과 아이는 순서가 있다는 고리타분한 생각에 기반을 두었던 연공서열 제도를 혁파하고 새 시대를 열어젖힌 장본인도 바로 이들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능력 있는 자가 대우받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서로에게 온정적이어서 서로 친밀하고 내 처지를 미루어 상대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어떻게든 돕지 못 해 안달하던 구시대 사람들은 궁지에 몰려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고 말았다.

농업은 산업화된 사회에서 경쟁력이 전혀 없다. 그런데 그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나 다 마찬가지다. 아니, 다시 정확하게 말해보자면 소농(小農), 혹은 가족농은 경쟁력이 없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나 다 마찬가지다. 농업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영역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할 만한 것들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다. 어떤 경쟁에서도 승자는 딱 하나뿐이다. ‘경쟁력’이라는 말이 누가 휘두르는 도깨비 방망이인지 분명하다.

비록 나는 지금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 해볼 수 없는 거대한 사회체제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기 때문에 뭔가 먹고 살만 한 ‘경쟁력’ 있는 품목을 찾아 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는 있으나, 사회가 이 따위로 굴러가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맨 먼저 폐기해야 할 것이 저 아무렇지도 않게 늘 입에 달고 사는 ‘경쟁력’이란 단어일 테고, 이를 대체할 올바른 단어는 ‘연대’나 ‘협력’ 같은 말이 아닐까 하는데, 한 번도 배우거나 해 본 적 없는 그 연대나 협력이라는 것이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처럼 불편하고 어색하기 짝이 없다.

※ 그 동안 ‘시골살이’란 코너 이름으로 글을 써온 백승우 시민기자가 앞으로는 ‘농업이 생명이다!’라는 코너로 글을 이어갑니다.
단순한 시골 이야기를 넘어 농업현실과 농업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필요한 까닭입니다.<편집자>

백승우 시민기자 (화천 용호리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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