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밖에서

                                                                         박용하

 
사람을 아끼는 일이 일 중의 일이라는 걸 알기까지는
여러 세월이 줄 서 기다리고 있었다
선하게 사는 것이 힘들었다
세상을 버리는 야심이
세상을 지배하는 야심보다 더 지고한 야심일 수도 있었다
남이 보라고 들으라고 울 수는 없었다
그것이 한계였지만 그것이 사랑이었다
성자는 따로 있었지만 외따로 있지는 않았다
남의 자식을 지 새끼처럼 키우는 성자가
대문 바로 앞에 산다는 것을 안 것도 한참 후의 일이었다.
나쁜 일은 생색내기 딱 좋았다
좋은 일은 얼굴을 들고 다닐 정도로 한가롭지 않았다
삶을 아끼는 일이 일 중의 일이라는 걸 알기까지는
눈먼 사랑과 죽음이 가버린 후였다
세상에 내 몸 아닌 것이 없겠건만
내 몸보다 귀하다고 여겨지지는 않았다
그것이 인간이 처한 천하 대사일 거라고 생각하니
하루가 천애 고아를 닮아 그저 슬프고 참담했다
 
 
권력과 자본과 문명과 속물성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박용하처럼 애쓰는 시인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세상을 버리는 야심이 / 세상을 지배하는 야심보다 지고한 야심일 수도 있었다”

세상에 대한, 그리고 시에 대한 시인의 태도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문장이다. 어떻게 하면 좋은 시를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TV에, 신문에 얼굴 한 번 더 내밀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시인이 대부분인, 진정성 실종시대에 박용하는 죽비 같은 존재다.

“남의 자식을 지 새끼처럼 키우는 성자가 / 대문 바로 앞에 산다는 것을 안 것도 한참 후의 일이었다”

자의식 과잉이다 싶을 정도로 자신에게 몰두했던 시인의 눈에도 이제 이웃이 들어오나 보다. 자조와 냉소로 점철되던, 차가운 그의 시세계가 조금은 따듯해질 것도 같다. <문밖에서>는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한 남자》에 수록된 시다.

정현우 (시인·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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