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하
여러 세월이 줄 서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을 지배하는 야심보다 더 지고한 야심일 수도 있었다
그것이 한계였지만 그것이 사랑이었다
성자는 따로 있었지만 외따로 있지는 않았다
대문 바로 앞에 산다는 것을 안 것도 한참 후의 일이었다.
나쁜 일은 생색내기 딱 좋았다
좋은 일은 얼굴을 들고 다닐 정도로 한가롭지 않았다
눈먼 사랑과 죽음이 가버린 후였다
내 몸보다 귀하다고 여겨지지는 않았다
그것이 인간이 처한 천하 대사일 거라고 생각하니
하루가 천애 고아를 닮아 그저 슬프고 참담했다
“세상을 버리는 야심이 / 세상을 지배하는 야심보다 지고한 야심일 수도 있었다”
세상에 대한, 그리고 시에 대한 시인의 태도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문장이다. 어떻게 하면 좋은 시를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TV에, 신문에 얼굴 한 번 더 내밀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시인이 대부분인, 진정성 실종시대에 박용하는 죽비 같은 존재다.
“남의 자식을 지 새끼처럼 키우는 성자가 / 대문 바로 앞에 산다는 것을 안 것도 한참 후의 일이었다”
자의식 과잉이다 싶을 정도로 자신에게 몰두했던 시인의 눈에도 이제 이웃이 들어오나 보다. 자조와 냉소로 점철되던, 차가운 그의 시세계가 조금은 따듯해질 것도 같다. <문밖에서>는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한 남자》에 수록된 시다.
정현우 (시인·화가)
정현우 (시인·화가)
junghyunwoo@chuns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