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춘천 새마을금고 김선호 이사장의 인생역전

“새마을금고는 협동조합의 형태로 지역에 뿌리를 두고 지역을 위해 금융사업을 하는 곳입니다.” 통성명을 마치자마자 김선호(56세) 이사장은 새마을금고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빠르게 설명한다.

“은행은 수익이 나면 주주와 직원들이 가져갑니다. 현재 메이저급 은행 대부분이 외국 자본 60% 이상이라 해외로 유출되는 자금이 심각한 수준이지요. 새마을금고는 지역 조합원들로 구성돼 출자금 배당형식으로 지역에서 자금순환이 이뤄집니다.”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는 목적이 김 이사장으로 하여금 20여년 간 새마을금고에 몸 바칠 수 있게 한 명분이다. 지금은 새마을금고의 위상이 높아져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지만, 아직도 협동조합의 장점이 널리 알려지지 못해 아쉽다고 김 이사장은 말한다.

지역이 살기 위해서는
자금이 외지로 나가지 않는 시스템 만들어야


“협동조합이라 하면 요즘 젊은이들이 다루기 힘든 내용들이 많은 게 사실이죠. 또 조합원들의 의견일치가 있어야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어 쉽지는 않아요. 프랜차이즈가 점점 많아져 지역에서 돌아야 할 돈이 외부로 나가고 있어 안타까워요. 지역의 젊은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개발하고, 그들의 인력을 가동하면 외지로 나가는 자금을 막을 수 있어요. 지역이 살기 위해서는 이런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노동자·농민·사무직 등 누구나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고, 그들의 소중한 자산이 국내에서 선순환되는 구조. 새마을금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또한 소외 받는 계층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꾸준한 장학금 지원사업이나 경로봉사, 연탄봉사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인터뷰 중간 중간 손님이 찾아오고, 휴대 전화가 울린다. 오전만 해도 추곡으로 외근을 다녀왔다는 그는 올해, 선출직인 새마을금고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비교적 젊은(?) 나이의 이사장이다.

화천 사창리에서 태어나 중학교 졸업 후 서울로 올라갔다. 새벽 4시에 학원에 다니며 공부했고, KT 전신인 전화국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88년 방통고를 졸업하고, 지난 2월에는 한림성심대를 졸업하면서 만학도의 꿈도 이뤘다.

군 제대 후 동국석유를 다녔어요. 한 10년 정도 있다가 서른다섯에 우두 새마을금고에 계약직으로 들어왔죠. 그때 여기 자산이 19억7천만원 정도였나? 춘천 시내 34개 마을금고에서 30위 정도였으니까 규모가 아주 작았죠. 파출부터 시작해 미친 듯이 일에 몰두했어요.1995년에 입사했는데, 1997년에 IMF가 터졌죠. 춘천시내 금고들이 줄줄이 구조조정하고 문 닫고 했죠. 보증 세워서 막 대출해주는 것이 당시 관행이었어요. 돈 빌려주고 못 받아 연체를 회수하기에 바빴죠. 그러나 채권관리를 잘 해서 다른 은행에서 대출을 안 할 때 양질의 채권자를 대상으로 대출을 하는 등 정신없이 그 전쟁 같은 시간을 보냈어요. 그때 우연히 《핑》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우물이 서서히 말라가는데 그걸 모르는 개구리. 마치 우리가 아닐까 싶었죠. 뭔가 하지 않으면 죽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빠르게 승진했지만, 구안와사로 위기를 맞기도

실무책임자로 인정받고 불과 2년 만에 과장에서 부장으로 승진했다. IMF를 기회로 만든 결과였다. 2003년 가맹점 사업을 벌이고, 지점확장을 하는 등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며 앞만 보고 달렸다. 그러나 좋은 일은 늘 나쁜 일과 함께 다닌다고 하지 않았던가. 구안와사 즉, 안면 신경마비가 왔다. 구안와사는 잠시 쉬어가도 좋다는 암시가 아니었을까. 다행이 얼핏 보기에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회복된 듯하다. 이후 배드민턴을 시작하고, 술도 줄여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고 한다.

극한까지 몰렸지만 강원도 내 57개 중 12위. 춘천에서 3위. 외부의 공적자금을 하나도 받지 않고, 대출 건전성으로 타 지역에서 벤치마킹할 정도로 튼실한 새마을금고를 만들었다. 김 이사장을 뿌듯하게 하는 자랑거리다.

김 이사장은 은행업무뿐 아니라 경매관련 공부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스스로 배움을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다. 채권관리사 자격증은 물론 증권관련 자격증도 두루 섭렵했다.

“배우는데 창피한 거 없습니다. 제가 방통고 졸업하고 올 2월에 한림성심대를 졸업했는데요. 배움이 짧아서 늘 공부합니다. 채권 공부할 때는 알 때까지 계속 묻고 또 물었죠.”
그의 근성이 묻어나오는 대목이다.

“‘무조건 솔직해야 한다’가 제 생활신조에요. 솔직해야 나중에 떳떳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내 자신을 초라하게 생각하면 남도 나를 초라하게 생각합니다. 절대 자신을 초라하게 생각하지 말고 당당하게 영업하라고 직원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멋있는 일을 하는구나’라는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죠.”

김 이사장이 직원들을 독려하는 방법이다. 2008년 잡쉐어링(일자리 나누기)이 한창일 때 임금을 40% 가까이 올려 직원들의 자긍심을 높인 것도 김 이사장의 의지였다. 이러한 책임자와 직원들 사이의 신뢰관계가 북춘천 새마을금고의 성장비결이다.

문화교실 운영 통해
지역의 문화공동체 역할 하고 싶어


“조합원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할지를 먼저 생각하고, 협동조합의 원리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죠. 금고는 특성상 가족구성원이 많아요. 그분들의 정년까지 보장해야 된다는 책임감도 있습니다. 요즘 일각에서는 앞으로 고객 품귀현상이 나타날 거라고 얘기하는데, 그런 것들도 미리 대비해야겠지요. 또 문화교실을 운영해 지역의 문화공동체 역할도 하고 싶습니다.”

참 의욕적이고 욕심 또한 많다. 이사장에 취임하면서 세운 목표다.

흙수저, 금수저 같은 말이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는 요즘, 현실에 낙담하고 있는 청춘들에게 메시지를 부탁했다.
“저는 워낙 잘난 것도 없고 하나에 미쳐서 다른 거 안 보고 살았어요. 자기가 있는 직장에서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어요. 저도 계약직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계약직원들의 불안감을 알죠. ‘열심히 일하면 조직은 반드시 너를 필요로 할 것이다’라고 얘기해 주고 싶어요. 그리고 기죽지 말라고.”

꼰대가 하는 말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울었고, 먹구름 속에서 천둥도 울었다. 치열하고 숨 막히게 세월을 살아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몸에 밴 버릇이라며 주차장까지 배웅한다. 어떻게 조합원들을 대하는지 눈치 챌 수 있는 대목이다. 지역의 문화공간을 마련해 고객들이 언제나 마을금고를 찾을 수 있게 하겠다는 그의 포부에 힘찬 파이팅을 보낸다.

김정운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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