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함께 사는 소원을 이룬 H

또래 아이보다 깡마른 체형. 수줍어하는 성격 때문인지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하는 모습. 내가 느낀 H의 첫 인상이다. 무척 답답한 성격에, 말을 걸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 하던 반응까지 그 모든 것이 처음엔 너무 의아했다. 나름 아이들을 많이 봐왔다고 했지만 H 같은 아이는 처음이었다. H의 교과성적과 학습상태도 엉망이었다. 수학 학습상태만 봤을 때도 그냥 학교만 왔다 갔다 한 수준이었다. 고1 수학이론 내용도, 문제풀이 방식도 H는 거의 모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이 교육에 관심이 없어 공부하란 잔소리도, 학원 보낼 생각도 안 하는 부모님 때문이라 생각했었다.

H와 몇 번 수업을 하고 상담을 하면서 H의 태도와 학교성적에 대한 실마리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H는 아버지와 떨어져 살고 있었다. 춘천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녔건만, 아버지와 같이 지낸 시간이 1년 중 1달도 채 안 된다고 했다. H의 아버지는 이혼을 했다. 이혼 후 H를 키울 자신이 없던 H의 아버지가 H를 자기 누이에게 맡기면서 H의 춘천생활이 시작됐다고 한다.

부모 사랑이 절실한 초등학교 때, 그 어느 때보다 예민한 중학교 때, 어른과 아이 사이인 어정쩡한 고등학교 때까지 H는 따스함과 관심, 그리고 가족이 주는 위안을 느끼지 못하고 자란 것 같았다. H는 자라는 내내 고모 눈치를 보아야 했고, 사촌들과 차별 아닌 차별을 느껴야 했다. 하고 싶은 걸 참아야만 했고, 남들에게 고모를 엄마라고 이야기해야만 했다.
H가 자라면서 겪었을 일들을 생각하면 H가 참 애처롭고 딱했다. 그렇다고 H를 더 챙기거나 특별하게 대하려 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릇된 태도나 행동에 대해서 더 많이 꾸짖고 나무랬다. 배려가 도리어 아이에게 차별이 될 수 있다 여겼다. 어떠한 상황이든,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 않게 H를 지도하려 애썼다.

걱정과 달리 H는 나아지고 싶은 의지가 있었다. 당장 좋아지지 않더라도, 부탁한 과제나 학습은 반드시 해오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노력한 만큼 H의 실력은 나아졌다. 처음에는 학습부진아가 아닐까 우려했지만, H의 학습능력은 다른 아이들보다 뒤쳐지지 않았다. 참 안타까웠다. H가 다른 친구들과 같은 가정환경이었다면 어땠을까?

H는 대학 때라도 아버지 곁에서 다니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리고 수능에서 좋은 성적은 얻지 못했지만, H는 소원을 이룰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은 끝에 아버지와 같은 지붕 아래서 먹고 자며 대학을 다니고 있다. 대학 진학 후 소식이 뜸해졌지만, 이제라도 아버지와 티격태격 하며 정을 쌓아갈 H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진다.

강종윤 시민기자(학원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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