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16주년.
6.15남북공동선언은 1972년 7.4남북공동선언 이후 28년 만에 남북 두 정상이 만나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합의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16년이 지난 지금 남북관계는 과거로 회귀했고,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는 살얼음판이다. 《춘천사람들》은 6.15공동선언 16주년을 맞아 그동안 남북강원도의 교류와 협력을 위해 활동해온 (사)남북강원도협력협회 정선헌 이사장을 만나 6.15공동선언의 의미와 한반도 통일, 그리고 남북강원도 교류·협력의 성과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남북강원도협력협회 정성헌 이사장

6월 7일. 인터뷰를 위해 인제 서화에 있는 한국DMZ평화생명동산(이하 ‘평화생명동산’)을 찾았다. (사)남북강원도협력협회 정성헌(71) 이사장은 이곳 평화생명동산의 이사장이기도 하다. 양구, 인제를 거쳐 찾아간 평화생명동산. 구조물들이 이채롭다. 황호섭 사무국장으로부터 단절과 소통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인터뷰는 평화생명동산 내 서화재에서 1시간 가량 진행됐다.

6.15공동선언 이후 벌써 16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그러나 현재 남북관계는 꽁꽁 얼어붙고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6.15공동선언의 의의와 한반도 통일의 전망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6.15공동선언은 세계사적 측면에서 봐야 한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에 냉전이 해체되면서 내부 공존과 화해의 분위기가 마련됐고, 그 결과 1994년 김영삼-김일성 남북정상회담 합의로 이어졌다. 아쉽게도 김일성 주석의 급서로 당시의 정상회담은 무산됐지만, 2000년 김대중-김정일 남북정상회담으로 실현된 것이다. 따라서 6.15공동선언의 의의는 ‘화해와 공존의 길’을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국제적인 조건이 그때보다 더 악화됐다.
인제 서화에 있는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전경

그만큼 주체적인 노력이 더 요구된다. 우선은 내부통합이 시급하다. 그런 다음 다시 남북관계를 풀어나가야 한다. 어떻게 풀 것인가? 그 답은 단순하다. 북한과 상종하지 않거나 북한을 완전히 없애버리자는 것은 모두 비현실적인 것이고 감정적인 것이다. 상생의 관계로 풀어야 한다. 인내가 유일하고 현실적인 길이다.

이명박, 박근혜 두 정권을 거치면서 남북관계는 완전히 파탄이 났다.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여건이 다시 마련되면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가는 것이 좋은지를 물었다.

일단 원칙을 세워야 한다. 선경후정(先經後政), 경제가 먼저고 그 다음이 정치다. 쉬운 것을 먼저 하고, 어려운 것을 나중에 해야 한다. 거꾸로 하면 안 된다. 공동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것을 찾아야 한다. 다만 할 말은 하면서 진심으로 도와줘야 한다.

6.15공동선언 이후 강원도에서도 본격적으로 남북강원도 교류 및 협력을 위한 노력들이 전개됐다. 그 동안 남북강원도 교류·협력사업의 성과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 신뢰관계의 형성이라고 본다. 사업을 처음 시작하면서부터 내세운 원칙이 ‘현금은 없다’는 것이었다. 돈으로 맺는 관계는 좋지 않다.

말하자면 물고기를 잡는 것보다는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라는 말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들이 얼마만큼 진행됐는지 궁금했다.

남북강원도협력사업의 기본은 농업생산력 향상(농업)과 동해바다 살리기(수산업), 나무 심고 가꾸기(임업) 등 1차산업이었다. 농업분야에서는 삼일포와 금천리 협동농장 지원사업과 원산농민기술강습소 리모델링 사업을 들 수 있다. 또 두 차례에 걸쳐 못자리용 비닐 3만3천롤도 제공했다. 수산업분야에서는 2001년 이후 네 차례에 걸쳐 연어 치어 205만 마리를 방류했다. 영동내수면연구소와 삼척시내수면연구소에서 제공한 연어 치어들을 북고성 남강 지류인 후천강에 60만 마리, 안변군 남대천에 145만 마리를 방류됐다. 2003년엔 안변연어부화장을 건설해 2005년부터는 여기서 생산된 치어들을 방류하고 있다. 또 2008년엔 안변양어사료공장을 준공해 수산양식종합단지의 기틀을 다져갔다. 임업분야는 대표적으로 금강산의 솔잎혹파리 방제와 북강원도 전역의 잣나무넓적잎벌 방제를 들 수 있다. 솔잎혹파리 방제는 2001년부터 2008년까지 8차례에 걸쳐 1만1천100ha, 잣나무넓적잎벌 방제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7차례에 걸쳐 8천500ha에 이른다.

스포츠 및 문화교류도 활발히 추진됐다. 2005년 9월 27일부터 9월 29일까지 금강산에서 개최된 ‘남북강원도민속문화축전’은 남북강원도민들이 민족동질성을 회복하는 소중한 계기였다. 이 축전에는 도지사를 비롯해 택시기사, 환경미화원, 부·모자 가정, 수로원, 학생 등 각계각층에서 216명이 참여했다. 사물놀이, 민요, 전통무용 등 민속공연을 마친 남북강원도 주민들은 손을 마주 잡고 함께 삼일포 지역을 관광하기도 했다. 마지막 날인 9월 29일에는 금강산해수욕장 모래사장에서 씨름, 널뛰기, 활쏘기, 줄다리기, 농악 등 민속경연을 펼쳤다. 이어진 폐막식에서 남북의 강원도 주민들은 석별을 아쉬워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2006년에는 북한의 아이스하키 선수단과 태권도 시범단이 춘천을 방문했다. 3월 2일부터 3월 5일까지 북한 아이스하키 선수단 36명이 춘천을 방문해 남북친선경기를 가졌고, 4월 7일에는 북한의 장웅 국제태권도연맹(ITF) 총재가 인솔하는 태권도 시범단 48명이 춘천을 방문해 태권도 시범을 보였다.


정 이사장은 “다시 남북이 협력할 수 있는 조건이 되면 바로 재개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춰야 한다”며,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열쇠는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말했다. 또한 “확고한 역사인식으로 통일의 상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며, “한반도를 둘러싼 미·일·중·러 등 강대국에 한반도 분단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추궁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한반도 통일은 20세기 제국주의 잔재 청산이라는 세계사적 과제임과 동시에 새로운 체제를 여는 문명사적 과제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보는 북한을 설득하고, 보수는 미국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족분단 70여년. 이대로 간다면 남과 북은 완전히 이질적인 나라가 될 것이다. 아니, 이미 이질적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늦지는 않았다. 남과 북의 권력자들은 적대적 공존에 의존해 권력을 강화하고 엄청난 민족적 역량을 소진시키고 있다. 분단상태에 있는 한 한반도의 미래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또한 한반도 통일은 단지 남북한 우리 민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반도는 미·일의 해양세력과 중·러의 대륙세력이 충돌하는 지점에 서있다. 따라서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은 동북아, 나아가 세계평화로 나아가는 핵심적인 열쇠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성헌 이사장이 말하는 ‘세계사적, 문명사적 과제’가 더욱 무겁게 어깨를 짓누른다.

전흥우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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