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중에 칼을 뜻하는 글자는 매우 많다. 대표적인 것이 刀(도)와 劍(검)이다. 칼날을 뜻하는 글자는 刃(인)인데, 칼에 여기가 칼날이라고 점을 찍어 표시한 글자다. 그러니 참을 인(忍)자를 보면 ‘참는다’는 것은 마음에 칼날을 품는 것이다. 견디거나 삭히는 것이 아니고 피 한 방울 생각할 수 없는 서슬 푸른 견딤이니, 다른 사람을 참게 하는 일은 삼갈 일이다. 忍에 言(말씀 언)을 더한 認(인정할 인)자는 마음에 칼날을 품고서 밖으로는 ‘인정한다’고 말하는 것이니 한자(漢字) 한 자, 한 자에 들어있는 선인들의 생각이 새삼 놀라울 뿐이다.

여러 종류의 전각칼

인장을 새길 수 있는 납석은 무른 돌이지만 그래도 돌은 돌이다. 전각석은 다양한 문양만큼이나 석질도 다양하다. 전각은 사람의 힘으로 납석에 글이나 그림을 새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각보다 상당한 물리적 힘을 요구하며, 무리하거나 칼이 잘 들지 않으면 자주 담이 들거나 인대와 어깨를 다치기도 한다. 따라서 잘 드는 전각칼은 전각의 수월성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아니할 수 없다.

과거 우리 선조들이 사용한 좋은 전각도는 보검을 만드는 방법으로 만들었다. 대장간에서 전각도 만한 쇠를 불려서 두 배로 늘인 다음 반을 접고, 또 불려서 두 배로 늘이고 반으로 접는다. 이런 작업을 50번 이상 반복하면 쇠안에 들어있는 불순물들이 강력한 탄성으로 공기 중으로 날아가 쇠의 질긴 성분만 남아 대단히 얇은 층이 무수히 쌓인 강력한 칼의 재료가 된다. 이것을 칼로 벼리면 웬만한 전각돌은 쓱쓱 파진다. 현재에도 이렇게 만들 수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제작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다.

처음 전각을 시작하던 1980년대에는 대부분의 전각가들이 탄소강으로 만든 칼을 사용했다. 쇠에 탄소가 지나치게 많이 들어 있으면 작은 충격에도 부서지지만 일정부분이 함유되면 오히려 강도와 경도가 강해진다. 다만 이 칼은 비교적 쉽게 문드러지기 때문에 자주 갈아야 하는 단점이 있다. 주로 기름숫돌과 사포에 갈아서 사용한다. 일본에서는 하이스(고속도강)라고 하는 쇠로 만든 전각도가 나왔는데, 하이스는 탄소강보다 질기기는 하지만 표면 강도가 낮아 자주 갈아야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초경합금(당가로이)칼이다. 초경합금은 탄소를 고압 프레스로 누른 것으로 철이 아니다. 이 재료는 쇠를 가공하거나 유리를 자르는 칼을 만들 정도로 강하다. 그러나 숫돌이나 사포에 전혀 갈리지가 않고 충격에 모서리가 잘 부서지는 단점이 있어 칼끝이 마모되거나 부서지면 버려야 했다. 그러나 다이야몬드 숫돌이 나온 뒤로는 마음껏 갈아 쓸 수 있게 됐다. 나는 쇠뭉치에 초경합금을 용접하고 끝을 연마해 칼로 벼려 전각도로 사용하고 있는데 그 강도가 옥을 새길 정도로 쓸 만하다.

청나라 말의 전각가 오창석은 스스로 둔도(鈍刀-둔한 칼)를 썼다고 했는데, 이것은 실제로 둔한 칼을 썼다기보다는 스스로 실력이 없다는 겸손의 표현이니 오해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오창석의 전각 작품을 보면 날카로운 칼이 아니면 새겨낼 수 없는 획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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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용석 (한국전각학연구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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