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드러내는 것”

우리나라 현대사의 질곡을 간직한 경남 거창 출신의 백형민 예술감독. 백 감독이 춘천과 인연을 맺은 건 한림대에 진학하면서부터다. 백 감독은 1985년에 한림대 체육과에 진학하면서 이미 춘천에 정착할 마음을 가졌다. 그 계획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2003년 아들의 초등학교 진학과 함께 실행되었다. 그렇게 춘천과 인연을 맺었지만 늘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었다. 근래 들어 ‘나도 춘천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는데, 《춘천사람들》이 인터뷰를 해주는걸 보면 지역에서도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며 웃는다. 백 감독은 국립무용단에서 예술감독 직무대행을 했고, 지금은 ‘문화강대국’에서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1985년 한림대 진학으로 춘천과 인연

대학시절 백형민 감독은 전공보다는 동아리 활동을 더 열심히 했다. 우리나라 다큐멘터리 영화에 큰 발자취를 남긴 고 이성규 감독이 동아리 1년 선배다. 동아리에서 탈춤과 마당극을 하다가 1987년 12월 갑작스럽게 군대를 가게 됐다. 격동의 1987년. 갑작스런 입대영장은 아마도 그 당시의 동아리 활동과 관련이 있으리라.

군대에서 많은 책을 읽었다. 그중 한 권이 윤후명의 《내 빛깔 내 소리》라는 소설이다. 그 책을 통해 본격적으로 춤을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 제대 후 본격적인 춤 공부를 위해 국립무용단을 목표로 오디션에 참가했지만 두 번이나 낙방을 했다. 다행이 서울예술단에 들어가며 체계적인 춤 공부를 했고, 1994년 12월 세 번째 오디션을 통해 국립무용단에 입단했다. 백 감독은 당시 국립무용단에 들어간 것을 단지 행운이라며 겸손해 한다. 남자 무용수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백 감독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직무대행으로 활동하며 2012년 5월25일~26일 ‘국립무용단 50년 우리 춤 모음’을 구성해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공연했다.

백 감독은 지난 봄 녹우 김성호와 콜라보네이션으로 ‘풍경, 바람의 소리’를 몸짓극장에서 공연해 호평을 받았다. ‘풍경, 바람의 소리’는 음악을 하는 녹우가 하늘에 고하고 춤을 추는 백 감독이 땅의 사람들과 어우러짐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지난해부터는 평창동계올림픽 붐 조성을 위한 우리문화 알리기에도 참여해 전통 뮤지컬 ‘봄봄’의 안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백 감독에게 예술을 물었다. 한 마디로 되돌아온다. “예술은 드러내는 것”이라고. 누가 잘 드러내느냐가 고수냐 아니냐를 결정한다. 춤에 있어서도 하수는 열 가지를 가지고 표현을 하지만, 고수는 한 가지를 가지고도 표현하는 사람이라는 것. 예술은 비우기 위한 수도의 과정과 같다는 말로 들린다.


춘천, 문화를 생산해낼 공간이 필요하다

백 감독은 얼마 전까지 춘천민예총 춤협회장을 맡고 있었지만 지금은 활동을 접었다. 협회장이란 것이 예술과 관계없는 잡다한 일이 많은 자리라 춤에 전념하기 어려웠다. 백 감독은 이제는 생산적인 예술을 하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문화강대국’에서 연출기획을 하며 동부노인복지회관에서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강좌를 열기도 한다.
백 감독은 문화예술의 생산과 소비라는 측면에서 보면 춘천의 문화예술은 소비자에게 초점이 맞추어 있다고 지적한다. 자치단체장이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것과 연관이 있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느껴진다.

춘천이 문화예술도시로 거듭나려면 문화를 생산해낼 공간이 필요하다. 춘천만큼 문화예술인이 많은 도시가 없는데, 그 많은 자원을 활용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춘천시가 ‘창작공간 아르숲’을 운영하고 있지만 많은 예술가들은 공간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백 감독은 침체된 후평산업단지를 창작문화공간으로 만들면 문화예술의 생산과 소비가 함께 어우러지는 지역연계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란 대안을 제시한다. 백 감독의 바람과 대안처럼 춘천의 문화예술이 한 단계 발전하려면 행정의 노력과 시민의 관심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져야 할 것이다.

오동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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