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더불어 내면을 돌보는 어린이집을 꿈꾼다

2년 전부터 가르치고 있는 한 남학생의 꿈은 ‘보육교사’다. 이 무뚝뚝한 남학생에게서 내가 알고 있는 보육교사의 모습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부드러운 미소와 나긋하고 상냥한 목소리…. 내가 그리는 보육교사는 그런 ‘여자 선생님’이었다. 성별에 따른 직업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보육교사=여성’이라는 편견과 도식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수소문 끝에 금년 3월까지 보육교사를 하다가 강원도육아지원종합센터에서 근무하는 사람을 소개받았다. 이번 호에서는 ‘금남의 직업’에 도전한 송진한(31세) 씨를 만나본다.

단지 ‘남자’이기 때문에 받게 되는 질문일 텐데요. 어떻게 보육교사를 하게 됐는지요.

사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그다지 하고 싶은 일도, 꿈도 없었어요. 그런데 운명이라고 할까요. 고등학교 2학년 때 과외 선생님이 유아교육을 전공했던 분이셨어요. 유아교육에 대해 두루 물어도 보고, 보육교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도 알게 되면서 이 일이 참 매력 있다고 느껴졌어요. 명절 때마다 어린 사촌동생들을 돌봤던 경험을 돌이켜보면, 그게 힘들거나 낯설지 않았거든요. 제겐 참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어요.

그럼에도, 보육교사나 간호사처럼 돌봄과 관련된 일들은 여전히 여성들이 다수잖아요. 어찌 보면 오랫동안 ‘금남의 영역’이었는데, 부모님들은 어떠셨나요.

어머님께서는 별 반대가 없으셨는데, 아버님께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워하셨어요. 덩치 큰 남자가 보육교사를 한다는 게 쉽게 그려지지 않으셨던 거 같아요. 그래도 막상 대학에 진학하고는 제일 많이 응원을 해주셨어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지요.(웃음) 그런데 막상 꿈꾸던 보육교사와 실제 보육교사 생활은 어땠나요. 동료로서 남자 교사들도 많지 않았을 텐데.

유아교육과에서도 물론이고 현장에서도 남성은 아주 드물지요. 제가 신입생 때 전체 100명 학생 중 남학생은 단 세 명뿐이었는데, 그나마도 한 명은 적성이 안 맞아 그만두었어요. 대학 때부터 학과에 온통 여자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교사로서 근무할 때도 여자 선생님들과 지내는 데는 어색함이 없었습니다. 물론 아직 사회적으로 남자 보육교사가 별로 없으니 주목을 받는 경우가 잦지요. 보수교육을 가면 남자가 저 혼자여서 질문을 독점받기도 합니다. 보육교사 대부분이 여성이다 보니까 남자 화장실까지 여성분들이 차지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땐 정말 당혹스럽지요.(웃음)

몇 해 전부터 보육시설에서 좋지 않은 소식들이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남성에 의한 폭력 사건도 많이 보도되고 있고요. 남자 보육교사라고 하면 선호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불편한 마음을 가진 부모님들도 계실 것 같은데요.

남자 교사의 채용이 잘 되는 편이지만, 사실 직장을 구할 때 많이 불안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다행히 예전 근무하던 어린이집 원장님이 남자 교사의 필요성과 역할을 이해하고 있는 분이라서 쉽게 채용이 됐죠. 하지만 같은 대학을 졸업한 남자 동기는 취업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요. 원서를 일곱 번이나 냈지만, 채용하겠다는 곳이 없어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저도 처음 근무할 무렵, 부모님들이 원장님께 여러 불만을 말했다는 것을 나중에 들었습니다. 참 고맙게도 당시 원장님께서 저를 믿고 부모님들을 설득해서 마음 편히 보육교사로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또 여성 동료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어요. 여자아이들의 배변과 옷 갈아입히는 것은 여교사들이 도맡아 주셔서 오해될 만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많이 배려해주셨습니다.

많은 아이를 1~2명의 교사가 돌봐야 하고, 근무시간도 길고, 본인 용변도 볼 시간이 없어 많은 교사들이 신장염, 변비에 시달린다고 들었어요. 사실 우리 사회가 보육교사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부모님들은 보육공간이 완벽하기를 바라는 것 같아요. 쉽게 말하자면 ‘집에서는 모기에 물릴 수 있지만, 보육원에서는 안 된다!’와 같은 거죠. 신발도 좌우가 바뀐 채 집으로 돌아가면 곧바로 연락이 옵니다. 신경을 써 달라고요. 외국 같은 경우는 보육시설과 가정 모두 아이 성장에 관여하고 호흡을 맞추지만, 우리 사회는 보육시설에 모든 것을 맡기려 합니다.

또, 유치원과 달리 어린이집은 보육교사 업무가 너무 많습니다. 보육시설 평가인증을 위해 갖추어야 할 서류도 어마어마해서 보육에 집중하지 못할 때가 많죠. 보육시설 현장에 맞춘 행정이 아니라, 행정을 위해 보육시설이 맞추어야 하는 구조입니다.


저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본 부모로서 반성이 됩니다. 그렇게 열망해서 보육교사가 되었고 또 적성에도 잘 맞았는데 최근에 이직을 하셨습니다.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었던 건가요?

보육교사를 둘러싼 여러 환경에 한계와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할까요. 어느 순간 나이 많은 남자 보육교사의 모습이 스스로도 좋게 보이질 않더군요. 그런 모습을 ‘연륜 있는 교사’로 인정하기보다, 낯설고 불편하게 보는 사회적 시선도 의식을 했겠지요. 요즘 세상이 한 사람의 벌이로 한 가정을 온전하게 부양하기 어려운 것도 있지만, 보육교사의 보수 체계는 특히나 많이 열악합니다.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돌보는 게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 일을 좋아했기 때문에, 제 경험을 살려서 다른 보육교사를 도울 수 있는 방법도 고민하게 됐는데, 마침 기회가 돼서 강원도보육지원종합센터로 옮기게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저도 아쉽네요. 현장에서 나이 들어가면서 나름의 역할을 하는 남자 보육교사의 모습은 어떨까라는 기대도 있고, 우리의 현실이 아직은 그걸 자연스럽게 바라보지는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렇다면, 선생님이 꿈꾸는 보육환경은 어떤 건가요?

사실 지금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보육시설에서 다양한 교육을 하기 매우 어려워요. 평가인증 제도가 많은 제약이 되기 때문이죠. 국가 지원을 받기 위해, 인정받는 시설이 되기 위해 많은 보육시설이 평가인증을 받고 있지만, 그 순간부터 운영의 자율성은 뚝 떨어집니다. 현실과는 좀 거리가 있지만, 만약 기회가 된다면 숲에 둘러싸여 아이들이 자연과 더불어 놀고, 자기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고 성장할 수 있는 보육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일에 대한 성별 경계가 희미해진 서구 선진국과 달리, 우리 사회는 여전히 남성과 여성의 일 사이에 분리선이 선명하다. 그래서 서로 다른 영역에 들어가면 한동안 호기심 어린 시선을 감당해야 한다. 시선만이 문제가 아니다. 보육이나 간병 등 전통적인 여성의 일은 급여체계나 노동환경이 열악하다. 여성이 많은 노동세계에 남성이 진입하거나 오래 머물지 못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 그가 만든 숲속의 작은 어린이집에서 자연과 더불어 자신의 내면을 살피며 행복하게 웃고 놀고 성장해갈 아이들을 떠올려본다. 그 한 편에서 중년이 된 어느 남자 선생님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날도 기대해본다.

강종윤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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