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가 쿠바를 방문하면서 카리브 해역이 뜨거워지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외무장관도 쿠바를 방문했다. 국제정치에서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지만, 미-쿠바 간 54년 만의 악수는 서방으로부터 악의 축 따위로 폄훼 당해온 쿠바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미국의 쿠바 접근에는 봉쇄가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예전 같지 않다. 가장 최근 열린 미주대륙정상회의에서 중남미 국가들은 모두 쿠바의 회원가입을 지지했다. 쿠바를 손톱 밑 가시로 여기며 고립시켜온 미국이 자존심을 꺾은 진짜 이유다.

피델 카스트로는 미국을 배후로 한 테러와 암살로부터 용케 살아남은 지도자다. 이그나시오 라모네 《르몽드 디플로마띠끄》 전 편집인에 따르면, 지금까지 CIA가 개입한 반혁명 조직이 3백 개가 넘고, 피델을 겨냥한 공격은 6백 번이 넘는다고 한다. 또 비밀 해제된 자료를 보면, 80년대 초 뎅기 바이러스를 침투시켜 35만명이 감염돼 158명이 숨지기도 했다. 하지만 카스트로 정권은 건재했다. 국민의 지지가 정권을 보호했다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미국의 봉쇄는 경제발전을 가로막아 쿠바를 최빈국으로 전락시켰다. 수도 아바나마저 전기가 모자라고 수돗물을 마음대로 쓸 수 없을 정도다. 새로운 사회간접 시설은 꿈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조건 속에서도 쿠바는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공동체 건설을 위해 노력해온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교육과 의료, 여성, 흑인정책이 돋보인다. 흑인들에게 병역의무 복무기간을 줄여주는 대신 기초교육을 받게 한 뒤 대학에 진학시켰다. 흑인 지식인이 배출되고 빈곤층도 줄어들었다. 성평등과 기회균등에 따른 교육참여는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사회에 진출해 역량을 발휘하게 만들었다.

의료 지원정책은 당대 최고의 인류애의 실천이라 할 만하다. 쿠바 의료진은 지금도 아프리카 39개 나라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미국이 의료기나 약품 수입마저 ‘봉쇄’해 쿠바는 예방의학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 예방과 응급처치가 우선인 아프리카 국가들로부터 환영받는 이유다.

쿠바의 의료지원 시스템은 카트리나 대참사 때 1천여 명의 의료진을 현장에 보내겠다고 제안했다 부시로부터 거부당하면서 유명해지기도 했다. 아이티 대지진과 인도네시아의 쓰나미, 쓰촨성 대지진의 구호현장에 대규모 쿠바 의료진이 함께했다.

그간 서방 주류세계는 스스로 편협한 이념의 감옥에 갇혀 쿠바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쿠바민중은 나름대로 인류의 보편적 가치실현을 위해 노력해 왔다. 늙은 자본주의의 탐욕에 시달리는 지구촌에 쿠바 공동체의 경험이 한 줄기 바람이 되기 바란다.

고광헌 (시인·한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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