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를린국제영화제’의 청소년영화 부문에서 한스 슈타인비흘러(Hans Steinbichler) 감독의 가 상영됐다. 안네 프랑크 역을 맡은 레아 반 아켄(Lea van Acken)은 독일 여배우였는데, 스위스에 본부를 둔 안네 프랑크 재단의 동의를 얻어 이 영화가 제작됐다. 영화 <안네의 일기>는 1959년에 미국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었지만, 2016년 독일에서 다시 만들어져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이 됐다는 사실은 시사해 볼 필요가 있겠다.

《안네의 일기》는 1947년 처음 출간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총 3천만 부 이상이 팔린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네덜란드의 ‘안네 프랑크의 집’은 연간 약 100만명의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다. 안네는 평범한 소녀였고, 그녀의 일기장은 개인적인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지극히 평범한 두 가지가 전 세계인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우리 모두는 안네의 ‘일기’를 읽고 눈가를 적셔야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강점기를 겪은 우리나라에도 ‘안네’들이 왜 없겠는가. 유태인 안네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인 안네’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책임을 공식적인 사죄와 반성을 하지 않는 일본에만 돌려도 되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 의해 많은 피해를 입은 중국은 ‘중국의 안네 프랑크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난징대학살을 조명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몇몇 중국인들이 불행한 일을 겪기도 했지만, 고작 6주라는 시간 동안 약 30만명을 무차별 학살하고, 생체실험을 자행하고, 여자들을 잔인하게 성노예로 삼았던 ‘난징대학살’이 점차 세상의 이목을 끌고 있다. 중국계 미국인 아이리스 장(Iris Jang)이 이 역사적 사실을 《난징의 강간(The Rape of Nanking)》이라는 책으로 출간했을 때, 특히 이에 분노하고 공감한 것은 유태인들이었다. 현재 서구권에서는 중국의 이 사건을 두고 ‘아시아 홀로코스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1947년에 《안네의 일기》를 처음 출간한 사람은 독일인이 아니었다. 1945년 전쟁에 패망했다고 해서 독일이 곧장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보상과 사죄의 뜻을 밝힌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전쟁 직후에 유태인들이 독일을 상대로 재산과 인명피해에 대한 재판을 신청했지만, 증거불충분과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라는 이유로 이기지 못한 사례도 있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안네 프랑크의 책장’을 지키는 독일인들을 보면서 우리는 이 문제를 전쟁범죄를 저지른 독일로부터 사죄를 받아 낸 유태인의 승리라는 측면에 국한할 수 없다. 이는 이웃에 살고 있을 것만 같은 평범한 ‘안네 프랑크’라는 소녀의 삶이 이유 없이 은신처에 갇힌 채 고통을 겪어야 했고, 끝내는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던 비극을 어떤 이유에서도 되풀이하지 말자고 온 세상에 남기는 메시지다.

‘안네 프랑크의 책장’에는 다음과 같이 이용자들에게 당부하는 글이 적혀 있다.

우리는 안네를 잊지 말아야 하고, 안네의 책장을 지키는 독일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곳은 프랑크푸르트의 시민들과 방문객들을 위해 24시간 열려있는 무료 도서관입니다.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고, 그 책을 집이나 가까운 벤치, 또는 카페에서 읽어주세요.

책을 깨끗하게 읽은 후에 다시 돌려주거나, 읽을 가치가 있는 다른 좋은 책을 책장에 놓아주세요.

아동도서들은 가장 아래층에 정리해주세요.

좋은 책을 발견하고 읽고 교환해가는 데에 많은 즐거움이 있길 바랍니다. 이 책장을 이용하는 모든 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은비 시민기자 (베를린·타악기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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