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태? 시집에서 그런 이름을 본 기억이 없다. 당연하다. 한승태 시인은 아직 시집을 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시를 쓰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199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고, 꼭 10년을 채워 현대문학 신인상을 수상했다. 상당히 주목받을 만한 이력을 지니고 있는 그가 이제껏 왜 시집을 내지 않았을까?

시인은 현재 애니메이션박물관에서 큐레이터, 전시기획 등 전문적인 일부터 사무행정까지 살림을 도맡다시피 하고 있다.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후 열심히 작업에 몰두하던 그는 5년여 정도 직업으로 인해 시를 쓰기가 힘들었다. 민족사관고등학교의 홍보업무가 그의 직업이었다. 늘 일기처럼 시를 쓰지만 직업 때문에 어렵게 되자 불안감과 갈등이 많았다. 결국 1998년 직장을 그만뒀다. 생활패턴을 바꿔야만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김유정문학촌 전시기획, 영월 책박물관 설립기획 등 박물관 관련 일을 그때부터 했다. 그의 시의 1차적인 주제는 빛이었다. 인간 기원의 원류이며, 모든 만물의 기원인 빛에 관한 것이 그가 천착하는 시제다. 그 빛을 찾는 일이 그를 힘들게 했다. 10여년의 직장생활에서 그는 늘 내면의 고통과 씨름했다. 생활패턴의 변화를 통해 그 10년 동안 그는 현대문학 신인상이라는 시를 세상에 내 놓은 게 전부다.

그의 시는 당시에도 그의 마음과 책갈피 속을 떠날 줄 몰랐다. 2013년 또 다른 변화를 모색했다. 애니메이션박물관을 개장할 때부터 관여해 지금까지 애니메이션 박물관 일을 하고 있다. 그 속에서 또 다른 그의 시가 자라고 자신의 존재이유를 깨닫게 됐다.

지난날 책갈피 속을 떠날 줄 몰랐던 그의 시들이 이제는 세상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그가 처음으로 천착했던 빛이란 주제와 고정된 실체에 대한 거부감이 시집에 담길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이상은 아니다. 그에게는 이상이 없다. 그냥 시를 쓰는 일이 즐겁고 거기서 희열을 느끼기에 거창한 이상으로 치부하고 싶지 않다는 것으로 들린다. 오히려 그가 처음 시집에 천착하는 내용은 자본이 추구하는 모든 것, 휴식조차 다음의 착취를 위한 과정이라고 보는 어찌 보면 그의 표현처럼 편향적일 수 있는 주제다.

첫 번째 시집이 지금 문학동네에서 단장을 하고 있다. 9월쯤이면 나오지 않을까 감을 잡고 있다. 첫 번째 시집과는 다른 두 번째 시집의 원고도 마무리가 됐다. 아마도 두 권의 시집이 거의 동시에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가 시를 쓰는 이유는 무얼까?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의 시집 속에 담길 시 한 편을 미리 빌렸다. 그의 가족사가 담긴 이장(移葬)이라는 시다.

이장(移葬)

한 여름 윤달이 뜨고
한 가지에서 뻗어나간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저승과 이승을 가로질러
상남의 산골에서 내려오신 할아버지와
내린천 골짜기에서 나오신 작은할머니
城南의 시립묘지에서 오신 큰아버지 내외분
제일 가까운 해안의 뒷골목에서 유골 대신
몇 가닥의 머리카락만 보내오신 큰할머니와
공원묘지에서 나를 보내신 아버지

사촌들은 말없이 구멍을 팠다
야트막한 산은 마치 여자의 음부처럼 둔덕이었다
지관은 음택이라고 했다
나는 그게 왠지 음핵처럼 들렸다
잣나무 그늘에 누워 뼈를 말리는 망자들
나는 검불을 긁어모았다 여기저기
떨어진 삭정이는 꼭 집 떠난 큰할머니의 뼈 같았다
그나저나 어디로 가신 걸까요, 할아버지

알 수 없는 작은 벌레들이
나뭇가지를 갉으며 아기처럼 울었다
패철을 든 지관의 말에 따라
망자는 다시 동서남북을 가려 누웠다
망자의 집이 꼭 애기집 같았다
아내의 뱃속에서 둘째가 자꾸 발길질을 했다


한 시인은 춘천의 유적과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다. 중도 유적에 대한 안타까움과 청평사가 가진 스토리에 주목하고 있다. 그의 시 속에 청평사가 담길 날이 있을 것이란 예고다. 이제 두어 달 후면 한승태 시인의 시가 세상에 나온다. 그의 글에 감동한 사람들의 말이 증명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다. 한 시간 정도 짧은 대담을 하면서 느낀 그의 문학적 깊이로 볼 때 세상에 나올 그의 시집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시집 한 권 내지 못한 시인을 왜 인터뷰 하느냐고 묻는 시인을 보면서 진정한 작가란 무엇일까를 다시 생각해본다. 두어 달의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오동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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