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만 해도 마음 설레는 ‘자작나무 숲속 시 낭송회!’
걱정하는 나를 살려준 첫 낭송 친구

5월 28일 토요일, 아침부터 맑은 바람이 살랑이고 하늘은 푸르고 새들 소리는 싱그러웠다. 학생, 학부모 독서동아리 연합 문학기행을 준비하면서 마음은 돌 던져진 연못 속처럼 걱정으로 흔들거렸다. 과연 얼마나 신청할지, 시집들은 챙겨올지, 낭송은 제대로 할지…. 아~~~ 모르겠다.

하지만 기우였다. 예상 인원을 훌쩍 넘은 48명을 태우고 인제로 향했다. 자작나무숲까지 한 시간. 오르막길은 지옥훈련과 같았다. 모두들 원망 섞인 눈빛으로 “도대체 언제까지 걸어가야 해요?”하고 물어 온다. 내 마음의 연못에는 또 다시 걱정의 돌멩이가 하나 ‘풍덩!’ 던져진다.

드디어 명품 자작나무숲 안내소에 다다랐다. 이제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려온다.

와! 선생님! 저기 좀 보세요. 저게 다 자작나무예요?”

“어머 숲 속에 이런 곳이 있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아요.”


그랬다. 우리는 모두 자연에서 온 사람으로 자연이 주는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존재였다.

눈앞에 펼쳐진 하얀 수피와 초록으로 반짝거리는 자작나무 잎들의 향연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있으랴. 첫 번째 숲속 시낭송회를 열었다. 역시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마음의 문을 더 빨리 연다. 1학년 친구들이 가장 먼저 손을 든다. 한 친구가 ‘사과’라는 동시를 낭송하고 동시집을 선물로 받았다. 그러자 2학년 친구들도 나선다. 그렇게 첫 번째 숲속 낭송회는 도시락을 먹으며 마무리 짓고 자작나무숲으로 내려갔다.

이제는 한 시간 전의 그 고되고 원망스런 얼굴들이 아니다. 여기저기 탄성 소리!!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작나무 옆으로 가서 자작나무 수피를 매만져 보고, 안아 보고, 냄새를 맡아 본다. 자작나무 이 가지, 저 가지를 나는 상쾌한 동고비 지저귐과 자작나무 아래 조용히 피어 있는 작은 야생화들이 친구들의 귀와 눈을 사로잡는다.

정자에 올라 두 번째 숲속 시 낭송회를 가졌다. 이제는 서로 시를 낭송하겠다고 아우성이다. 드디어 학부모들 마음도 움직인다. 모두 준비해 온 오래된, 10년도 더 되어 빛이 바랜 시집을 펼쳐 낭송한다. 우리 모두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뭐가 그렇게 바쁜지 이렇게 시 한 편 읽을 몇 분의 여유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사는 구나.’ ‘맞아. 나도 옛날에 저 시 좋아했었지.’

잠시 숙연해진 마음을 다독이며 숲속 보물찾기를 했다. 도서관 선생님이 예쁘게 만들어 준 시 책갈피를 미리 함께 온 컵스카우트 대원들이 숨겨놓았다. 시 보물은 모두 20개로 모둠별로 다니면서 찾아와 정자에 다시 모여 찾아 온 시를 모둠 사람들에게 낭송해 주는 것이다. 끝내 시 보물 하나는 찾지 못했다. 시 보물을 손수 만든 도서관 선생님의 말씀, “그 시는 어떤 운 좋은 등산객에게 보물이 되겠지요.^^” 자연 속에 푹 빠져 있으면 우리는 이렇게 저절로 마음이 넓어지고 평화로워지는가 보다.

마지막 일정은 ‘내 마음의 보물찾기’다. 충분히 숲속을 즐기며 놀다가 마지막에 관제엽서를 쓰면 된다. 나에게 쓰는 편지, 나무나 야생화를 보고 그려도 되고, 친구나 가족에게 쓰는 편지도 좋다.

어렸을 적 《빨강머리 앤》을 열 번도 넘게 보면서 동경했던 자작나무 숲의 풍경! 오늘의 이 행사는 빨강머리 앤이 한 것이다. 아니 루시 모드 몽고메리(《빨강머리 앤》의 저자)가 한 것이다!! 바람에 일렁이는 자작나무 우듬지들의 물결을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도 따라 일렁인다.

이제 길을 내려오는 사람들의 얼굴은 올라갈 때와 다르다. 자작나무숲의 기운을 충분히 받아서인지 살아서 반짝이는 눈빛, 마음이 여여한 평화로운 얼굴들. 서로를 위해 주고 걱정해 주는 따뜻한 마음들. 고도로 함축된 시어들이 주는 사색과 문명에 길들여진 우리들을 그대로 무장해제 시키는 자작나무숲이 만들어낸 감동일 것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해줘 우리 인격을 고양시켜 주는 것은 오직 예술과 자연뿐인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도 나 혼자만은 아직 자작나무 숲에 있다. 시를 낭송하는 동안의 진지한 눈망울들, 떨리는 목소리들, 자작나무숲의 일렁거림, 경쾌한 새들의 지저귐, 분홍빛으로 나를 부르는 앵초꽃….

탁혜영(동내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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