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답다’는 것은 춘천이라는 공간이 갖는 독특함일 것이다. 외부사람에게는 춘천의 자존심을, 춘천시민에게는 자존감을 부여하는 것일 게다. 그러므로 춘천시라는 도시공간에 춘천다운 거리가 적어도 한 군데 정도는 있어야 한다. 아니면 춘천에 있는 여러 지명에 따라 춘천다움을 표현하거나 구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다양함을 추구할 수 있다면 더욱 더 다행한 일이다.

삼국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알려진 이곳의 역사성을 하나의 모티브로 삼아, 예를 들면 우두산이나, 맥국설이 있는 장소로부터 춘천다움을 형성한다거나 퇴계동의 퇴계 이황 관련 부분을 활용하거나, 대동여지도에 등장하는 정족천 상류의 무릉계를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무릉계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지만, 퇴계동의 금호·한주아파트 단지에 접근하는 교량의 이름이 무릉교인 것을 보면 누군가는 이곳이 조선시대 무릉계 구역에 속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방증이다. 좋은 자연을 가지고도 활용하지 못한다면 한심한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춘천하면 전국적으로 알려진 공지천도 있다. 오래전에 한 영화감독을 초청해 특강을 한 바 있다. 특강 전에 와서 점심이라도 같이 하자고 약속을 했는데, 시간이 임박해서야 학교에 들어왔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했더니 춘천에 온 김에 공지천이 보고 싶어서 공지천을 찾아갔더니 공지천이 없다는 것이다. ‘공지천이 없다니! 하천이 없어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지나갔지만, 타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지천의 이미지가 현실의 공지천과는 너무나 괴리가 컸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으리라고 본다. 나에게도 공지천은 연구나 학생들과 실습을 하는 공간이었다. 춘천하면 바로 공지천이 연상되기 때문에 공지천은 춘천을 대표할 만한 공간이다. 이 공간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일종의 화두였던 셈이다.

공지천 주변은 공원녹지로 가꾸어지고 여러모로 변모를 거듭했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한 때 포장마차가 밀집된 거리였지만 낭만적이지도, 경관이 아름답지도 않은 허름한 술집이 밀집된 곳이었다. 낮에는 썰렁하고 밤에만 주취에 울렁거리는, 주변 녹지공간과는 동떨어진 섬 같은 곳이었다. 현재는 주차장으로 변신했는데 역시 썰렁하기는 마찬가지다. 주차장 이외에는 대안이 없었을까마는 주차장을 만든다고 해도 공지천다운 주차장이 되어야 했다. 검은색 아스팔트 지면에 흰색으로 사각형 주차구획선만 그려진 공지천주차장은 공지천과 연관된 이미지를 도저히 그려낼 수가 없다. 차라리 공지천주차장이라고 하지나 말지. 공지천이라는 명칭을 앞에 두고 어찌 주차 구획선만을 그려 놓았는지 그 메마른 정서가 몹시 아쉽다.

선진국들은 각 도시마다 적어도 하나의 특징적인 가로를 가지고 있다. 시민의 자존심과 자존감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여러 형태가 있지만 예술의 거리라는 보편적인 명칭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자동차와 빌딩, 그리고 넓은 도로가 도시공간의 일반적인 모습인데 비해 이곳은 전형적인 도시공간의 모습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거리를 예술적으로 조성해 놓았다. 크고 작은 다양한 녹지공간과 더불어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놓고, 심지어는 등신대의 예술가상을 가로 곳곳에 두어 시민들로 하여금 생동감 있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그들과 무언의 대화도 나누고, 함께 온 동료들과 더불어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눌 주제를 넌지시 던져준다.

우리나라에도 안양시의 안양예술공원을 보면 아주 멋진 공간을 시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자연과 작품이 어우러져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훌륭한 공간이다. 안양시민들도 이 공간을 무척 사랑하고 상시적으로 산책을 즐기기도 한다. 춘천도 지혜를 모아 약사천과 같은 공간을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 좀 해보자.

박봉우 (강원대 명예교수·숲과문화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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