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은 99%, 생각은 50% 한국인



아우슈비츠, 마리퀴리부인, 교황 바오로 2세, 쇼팽. 그를 만나기 전, 내가 그의 나라와 문화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고작 몇 가지 키워드뿐이었다. 우리의 일제강점기처럼, 러시아의 압제를 받았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많은 희생자를 낳은 곳 정도가 덧붙여질 정보였다. 강원대 국어국문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보이체흐 루빈스키(Wojciech Lubinski, 34세) 씨의 나라 폴란드다. 그는 폴란드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다가 한국 문화와 한국사를 만났고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마침 국제교류를 맺고 있는 한국 내 대학을 찾던 중 2012년 강원대 국어국문과 석사과정에 입학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춘천살이 4년 이야기와 더불어, 그의 조국 폴란드에 대해서도 들어본다.

한국 생활이 4년째로 접어든 것 같은데, 어떠세요? 한국 문화나 음식,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은 없는지요.

네, 별다른 어려움은 없어요. 무엇보다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시고, 관심 가져 주셔서 힘든 점은 없어요. 다만, 여기 여름 날씨는 정말 힘들어요. 폴란드도 4계절이 있고 여름은 덥지만, 여기처럼 ‘끈적끈적’하다고 할까 그런 느낌은 아니거든요. 이제 곧 그렇게 덥고 습도도 높아질 거라 생각하니 벌써부터 걱정이에요.

보이체흐 씨가 웃으며 얼굴을 살짝 찡그린다. 고온다습한 한국 여름 날씨가 그냥 덥고 건조한 유럽의 여름과 달라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처음 한국에 왔던 9월, 버스를 타고 한낮에 도착했던 춘천은 그렇게 후끈거리는 열기로 그를 맞았다고 한다. 춘천의 첫인상은 어땠느냐는 이야기에 환영받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춘천에 도착해서 너무 더우니까 물을 사러 이마트에 갔는데, 거기서 흘러나왔던 음악이 쇼팽이었어요. 참 반갑고, 왠지 환영받는 느낌이었어요. 무엇보다 한국 분들이 참 친절했어요. 길을 물어보면 지도를 열고 열심히 가르쳐주거나, 전화를 해서라도 알려주려고 하더라고요. 거기다 춘천은 공기도 좋고, 조용하고, 가까이 산도 있고, 호수도 있고 참 아름다워요.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과 폴란드는 외세 열강의 침략을 끊임없이 받으며, 끝내는 독립국이 된 나라, 전후 어려운 여건을 딛고 신흥 산업국으로 발돋움 하고 있는 나라라는 측면에서 유사하다. 그에게 한국, 그리고 춘천은 어떻게 비슷하고 또 어떻게 다를까?

한국 음식은 맵고 짜고 한데, 폴란드 음식은 대체로 달고 맵지 않아요.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저는 매운 음식을 좋아해요. 음식 중에 여기 만두나 순대, 특히 감자전은 우리 폴란드에서 먹던 것과 참 많이 비슷해요. 제 고향이 비엘코폴스카(Wielkopolska)주, 포츠난(Poznań)시인데, 감자가 많이 나는 곳이에요. 그런 점에서 강원도와 많이 닮았죠? 도시로 보면 포츠난 인구가 60만명 정도 되는데 교육도시예요. 춘천과 비슷한 분위기인 셈이죠. 처음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역사적인 경험이 비슷하다는 점이었어요. 주변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고,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았고, 많은 희생자를 냈고….

그의 국적이 폴란드라는 것을 들었을 때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아우슈비츠’였다. 우리에게 일본이 있었다면, 폴란드의 20세기는 독일의 인종학살이 있었다. 역사학도인 그에게, 또한 전후 세대로서 전쟁을 겪지 않은 그에게 독일과 아우슈비츠는 어떻게 이해되고 있을지 궁금했다.

제 고향과 아우슈비츠는 7시간 정도 거리에 있어요. 저도 한 번 가본 적이 있는데, 그날 하루 종일 그 장면들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마음 아프고, 슬프고….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타인’에 대한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저희 할머니도 2차 세계대전 때 독일로 끌려가셔서 노역을 하셨다고 해요. 여전히 독일에 대한 분노와 거부감이 크세요. 그러나 젊은 세대는 현재의 독일과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과거를 잊어서는 아니에요. 아직도 전범재판을 하고 있고, 전범들을 찾고 있으니까요. 이젠 그들도 많이 늙어서 거의 90세를 넘긴 우리 할머니와 비슷한 연령이니까, 꼭 형벌을 받게 하겠다는 게 목적이 아니라, 우리에게 그때를 잊지 않게 하는데 의미가 있는 거 같아요.

새로운 세대는 새로운 꿈을 꿔야 하리라. 다만, 우리는 과거의 어떤 과오나 학살에 대해서도 제대로 사죄하고 단죄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리고 어느덧 ‘잊힌 역사’가 되어 가지 않을까 하는 점에서 두렵고 슬픈 마음이 어둡게 깔린다. 분위기를 바꾸며 그에게 물었다. 한국(춘천)의 좋은 점들과 아쉬운 점을 꼽아달라고.

한국의 제일은 좋은 사람들이예요. 나쁜 사람들을 못 만났어요. 제가 운이 좋았나요? 두 번째는 음식이에요. 맛있는 게 엄청 많고 다양해요. 닭갈비, 삼계탕, 안동찜닭, 그리고 짜장면까지…. 폴란드에 가기 전까지 새로운 것들이 자꾸 발견될 거 같아요. 또 배달도 있어요. 어디서나, 무엇이든 배달되는 것. 그리고 참 편리해요. 버스나 전철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요. 인터넷도 이용자 중심으로 잘 되어 있고요. 안 좋은 거는…여기 여름 날씨는 여전히 적응이 어려워요.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너무 바빠요. 일도 많고, 야근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을 거예요. 저는 서울 다녀오면 왠지 피곤해요^^. 한국엔 다 있는데, ‘여유’가 적은 거 같아요. 그래서 한국 사람들 모두에게 2주간 가족과 휴식을 보낼 수 있는 폴란드식 바캉스를 전해주고 싶어요.

서울 다녀오면 피곤하다는 그의 말에 ‘춘천사람’ 다 되었다고 웃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입맛은 99% 한국사람, 생각은 아직 50% 정도라고 한다. 그의 웃음이 어느덧 우리의 웃음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박사과정을 마치면 그는 고국 폴란드로 돌아가 폴란드인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학, 문화를 가르치게 될 것이다. 조금 더 치밀하게 한국어를 공부해서 윤동주의 서시를 폴란드어로 번역하고 싶단다. 요즘은 구운몽을 읽고 있는데 한자어가 많아 이해가 쉽지는 않다. 서예를 배우고 있는 이유도 조금 더 그 시절의 본질적인 삶에 가까이 가서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와 우리의 서울을 지도에서 직선으로 이으면 7천822km가 된다. 머릿속에 쉽게 헤아려지지 않는 거리지만, 이 폴란드 청년을 만나고 나니, 바로 옆 나라 같이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폴란드는 아우슈비츠의 슬픈 나라만이 아니었다. 보이체흐 씨의 폴란드는 이런 나라다.

자연이 남아있고, 유럽 고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요, 그리고 역사적인 건물과 숲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에요. 산악과 호수, 평야가 따로 따로 있어 한 나라에서도 여러 곳을 경험할 수 있어요. 아픈 과거를 잊지는 않지만 이제, 새로운 꿈을 꾸는 곳이지요.

허소영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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