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빠른 나그네도 가끔 자신이 사는 동네 구석구석을 모르는 경우가 있다. 내가 산다고 내 마을을 정말 잘 알 것 같지만 그것은 내 눈에 띈 곳일 뿐이다. 어쩌면 보고 싶은 곳만 보고자 하는 사람의 심리 때문일 것이다. 바쁜 일상에 봐도 그냥 지나치는 것이 요즘의 사정이니, 어쩌면 내 사는 동네도 잘 모르는 것은 당연지사일 게다.

춘천에 몇 십 년을 살아도 지름물이라는 못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지름물’은 ‘질우물’에서 음차의 변화로 불리는 이름이다. 한자로 하면 도정리(陶井里)라고 한다. 질그릇 도(陶)자에 우물 정(井)자를 쓴다. 이쯤 되면 ‘아~하!’하고 다들 아는 체를 할 것이다.

아주 아득한 옛날 이곳에 옹기와 도자기를 굽던 가마터가 있었다. 질그릇을 굽기에 좋은 토질의 흙이 나고, 질그릇을 구울 때 사용했던 우물이 있어 ‘질우물’ 또는 ‘지름물’이라 했다. 이곳 사람들은 아직도 그렇게 부른다.

지름물 사람들은 《도촌동약(陶村洞約)》이라는 오래된 마을규약을 가지고 있다. 질그릇을 굽던 마을에서 비롯된 이름을 한자로 바꾼 것이다. ‘질그릇마을’이 변해서 도촌동(陶村洞)이 된 것이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니, 스스로 마을규약을 만들어 질서를 유지했다. 그래서 도촌동의 약속으로 규약집을 만들고, 《좌목(座目)》이라 해서 마을사람들의 성씨와 직위와 자손 등의 가계를 기록해 두었다. 《도촌동약》과 《좌목》이라는 책은 지름물사람들이 살아온 내력을 볼 수 있는 책이다. 《도촌동약》 내용은 이렇게 엮어졌다.

<마을 자치 향약의 대동곗날 화목을 도모하는 일>. 봄 삼월과 가을 구월. 계원이 차례로 술을 담그고, 음식을 만들고 하루를 즐겁게 회의를 한다. 술에 취해 잡담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주정하는데 대해서 벌을 주는 일. <해가 바뀌어 상하유사를 서로 바꾸는 일>. 맡은 바 일을 게을리 했거나 남을 업신여기고 폭력을 쓴 자에 대하여 벌을 내리는 일.(《도촌동약》 <동헌(洞憲)>의 일부)

지름물 사람들이 어떻게 마을을 이끌어 왔는지 볼 수 있는 자율규약이 잘 나타나 있다. 봄가을로 마을 화전놀이와 단풍놀이가 있었는데, 주정을 하거나 규약을 어기면 벌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때문일까? 이 마을사람들은 마을 입구에 난 돌로 된 벽 안을 성문안이라고도 부른다. 돌벽은 성문바위라 부르고 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길은 성문길이다. 지름물마을을 스스로 이상향으로 만든 것이다. 성문(城門)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면 그들만의 이상향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마을입구 성문바위에 이렇게 한시를 써 놓았다. 옮기고 번역해 본다.
 

陶山日光追憶傳(도산일광추억전)
도산에 햇빛은 추억처럼 전하고
城門月影古今同(성문월영고금동)
성문의 달그림자 언제나 같구나
柳柳靑靑法谷聲(유유청청법곡성)
버들잎 푸르고 뻐꾹새소리 들리니
錦錦色色香華村(금금색색향화촌)
비단처럼 색색이 향기롭고 빛나는 마을


혹자는 맥국의 성문안이라 하기도 하나, 지름물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이상향을 일컬었던 듯하다. 여기서 도산(陶山)은 지내리 뒷산을 일컫고, 마을 안에는 월형동(月形洞) 또는 월영동(月影洞), 뻐국재라는 소지명도 있다.

 
성문바퀴, 지름물(지내저수지), 도촌동약과 좌목

이학주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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