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는 예술이 아니라 학문이자 인성교육”

 


난정서예학원. 지긋한 연세의 어르신 몇몇이 서예를 배우고 있다. 먹물이 짙게 밴 책상 앞에 시백 선생과 마주 앉았다. 시백 선생은 서예가 일상의 생활이라고 말한다. 현대에 들어와서 서예가 예술로 분류됐지만, 서예는 예술이 아니라 학문이며 인성교육이라는 것이다. 선생은 서예가 인성교육에 꼭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서예가 예술이 되는 것은 인성을 다스리는 교육이나 학문을 통해 대가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라고 한다. 선생은 동양 3국 중 우리나라만 서예를 예술로 분류해 교육하지 않는다고 아쉬워한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해 경신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미술부장으로, 홍익공전에서는 목칠공예를 전공하며 미술과 서예를 병행했다. 국전에 회화와 서예를 동시에 출품했는데, 회화는 입선을 못하고 서예만 입선을 한 것이 회화보다 서예에 더 집중하게 된 계기였을까? 대학에서는 회화를 더 많이 배웠는데 서예의 대가인 검여 유희강 선생을 만나면서 서예를 병행하게 됐다. “오늘도 그림을 그리며, 글씨를 쓰며, 하루를 보낸다.” 그가 들려준 시구다. 그렇게 20여년을 지내며 문인화와 전각을 병행했다.

근래 들어서는 우유팩을 이용한 새로운 장르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선생은 근래 크레파스를 이용해 그림을 그린다. 크레파스로 밑그림을 그린 다음 불에 은근하게 녹이는 기법으로 부드러운 색감을 창조해 내고 있다. 선생에게 장르를 구분하는 것은 이미 의미가 없다. 추상적으로 표현을 해내기도 하고 칼을 통해 선을 연출하기도 한다. 어떤 교육을 통해 나타나는 그림이 아니라 감성이 가르치는 대로 그림을 그린다. 소재를 불문하고 그림을 그리니 장르를 구분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선생은 서울 토박이다. 춘천으로 오면서 달라진 게 그림에 나타났다. 춘천이 가진 호수, 산, 물빛, 달에서 얻어지는 감성이 지대하다. 우유팩을 곧게 펴면 나타나는 선에서 산의 윤곽을 보고, 접혔던 면에서 실상과 허상을 보며, 그것을 춘천의 풍경과 대입시켜 나가는 작품을 하고 있다.

산과 강물, 강물 속의 그림자, 그 위를 가르는 오리배 등 모든 것이 우유팩의 접혔던 선에서 나타난다. 선생의 이야기는 거침이 없다. 전각을 하며 느낀 감성을 통해 도화(칼로 그린 그림)를 그리기도 한다. 이미 고희를 넘은 나이. 누구 눈치 볼 필요가 없다. 내 멋대로, 본대로 그리면 된다. 그러나 크레파스 작업을 할 때는 반드시 난로가 필요해 여름에는 작업을 하지 못한다며 아쉬워한다.

선생은 현대화된 새로운 형식의 문자도가 마지막 작품세계가 될 것이라고 한다. 문인화, 전각, 서예 등 선생이 했던 모든 작품이 한 곳에 들어가는 작품을 하려는 것이다. 선생을 존경하는 후배들에게 해줄 말을 물으니 예술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답한다. 살아가는데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어야지 어떤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선생은 춘천의 현실에 대해 예술이든 행정이든 갈등과 충돌이 많다며 모두가 좀 자제하면 좋겠다고 말한다. 원로로서의 염려가 느껴지는 말이다.

선생은 지난해 고희전을 열었다. 서예, 문인화, 전각, 서양화 등 여러 장르에서 대가의 경지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선생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다는 새로운 방식의 현대화된 문인화가 기대된다.
 
서예
 
월야
 
시백 안종중
1946년 서울 출생
경신고등학교, 홍익공전 졸업
2000년 강원서예상, 2010년 강원문화상 등 다수 수상.
2000년 강원일보 창간 55주년 기념 초대전 외 개인전 7회.
대한민국 현대서예문인화협회이사장, 대한민국전각학회 이사, 근역사가회 회장 등 역임.
저서로는 《노자 81송과 전각》

오동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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