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촌(강촌, 방곡, 창촌, 수동)지역에는 효자·효부 정려각(旌閭閣)이 5곳이나 된다. 청산정씨 효자각, 사천목씨 효자각, 밀양박씨 효자·효부각, 평택임씨 효부각이 그것이다.

조선시대는 성리학적 정치이념을 근본으로 백성들에게 충과 효를 장려함으로써 사회질서를 유지했다. 각 지방마다 충·효, 열녀에 해당되는 사실이 있으면 고을 수령들이 자세히 조사해 중앙부처(예조)에 보고하고, 왕명으로 정려를 세우게 했다.

정려를 받게 되면 우선 집안의 영광이며, 마을의 경사였다. 그래서 정려각은 마을 입구 또는 집안 문중 땅 중 사방이 트인 곳에 설치해 가문과 마을의 표상으로 삼았다. 조선 후대에 와서는 외척의 정치개입과 사회혼란으로 많은 수의 정려가 임의로 세워지기도 했지만, 그 이야기만큼은 실로 현재에도 교육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청산정씨의 효자정려와 평택임씨 효부정려의 내용은 추운 겨울에 북한강에서 잉어를 잡아 병든 부모에게 봉양해 병을 고쳤다는 이야기이며, 사천목씨 효자는 형제사랑과 부모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밀양박씨 효자·효부는 추운 겨울 병든 부모를 위해 노루사냥을 하고, 화재로부터 부모의 목숨을 건졌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며칠 전 이러한 이야기를 간직한 정려각과 묘소를 다시 답사를 하다가 슬프고도 어처구니없는 일과 반가운 일을 동시에 목격하게 됐다.

슬픈 일은 밀양박씨 정려각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 당장 종손에게 전화를 했더니 작년부터 강촌지역의 가장 첨예한 사회문제인 열병합발전소 사업부지에 편입돼 철거돼 마을 안쪽에 새로 지었다는 것이다. 묘소를 이전했냐고 물었더니 안 했다고 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준 문화재로 등록돼 있어 사업허가를 받기 곤란하니까 업자들이 몰래 문중의 동의 하에 옮겨 지은 것은 아닌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한편,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들이 집을 뜯어 땔감으로 사용한 청산정씨 효자각은 당시 종부가 현판만 보존하고 있었는데, 청산정씨 문중에서 2014년에 창촌리 송곡대 정문 좌측에 반듯하게 다시 설립했다는 것이다.

한 지역에 사람과 기업이 입주를 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정신을 살펴보고, 그 지역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하여 원주민들과 함께 그 마을의 문화를 온전히 다음 세대로 전해야 할 것이다. 또한 문화재는 개인과 문중의 소유라는 개념에서 탈피해 우리 모두의 재산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함께 보존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희민 시민기자(강촌문화마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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