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play revolutions”

“20대 때 저의 꿈은 30대에 춘천에 젊은 친구들이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마련해서 돌아오자는 것이었어요.”
알플레이 직원들. 오른쪽 끝이 류홍렬 대표.

춘천 서면에 있는 창작개발센터에 위치한 기업 알플레이의 류홍렬(39) 대표의 말이다. 지난 2012년 회사 설립 후 올 4월에 서울 본사를 춘천으로 옮겨왔으니 그의 꿈이 이뤄진 듯 보인다.

알플레이는 웹, 여행, 가구 등 분야별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그 중 여행분야의 성과가 두드러진다. 여행하면 일반적으로 패키지여행을 떠올리지만 알플레이의 여행상품은 기존의 여행사와 차별화된다. 일명 자유여행플랫폼서비스. 예를 들면 여행상품을 구매할 때 픽업서비스, 시티투어, 특이한 마사지 등 아이템별로 따로 구매해 여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자유여행이 일반화된 요즘 항공이면 항공, 숙박이면 숙박, 개별적으로 구매해 여행하니까 저희는 현지에서 놀 것, 할 것, 즉 투어에만 집중해 여행상품을 개발하고 있죠.”

중국 산동반도의 다양한 여행상품을 특화한 산동패스, 필리핀 지역에서 발굴한 피코패스는 말 그대로 여행자들에게 대박상품이다. 특히 산동패스는 알플레이의 창업 아이템으로 한국어나 영어가 통용되지 않는 중국에서 류 대표가 답답해 처음 시도한 것이다. 시티투어버스를 만들어 돌린 것이 시초였다. 중국 산동성에서 시티투어버스의 상품성을 인정해 2012년에는 핵심관광사업으로 선정, 지금은 마케팅 등 다양한 관광분야까지 담당하게 됐다고 한다. 오늘 알플레이가 있게 한 일등공신이다.

“여행이 사람에게 주는 에너지는 굉장해요. 제 경험에 의하면 여행 전과 여행 후는 완전히 다릅니다. 사람은 늘 꿈을 꾸면서 살잖아요. 여행은 단기간에 그 꿈을 이뤄주는 것이라 생각해요.”
한림대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던 류 대표는 휴학을 하고 25살에 보라카이로 첫 해외여행을 떠난다.

“3백만원 들고 무작정 갔었죠. 보라카이를 가는데 생각으로는 마닐라에서 그냥 차타고 가면 될 줄 알았거든요. 사전지식이 없었죠. 그런데 경비행기를 타고, 또 배를 타고 가는 거에요. 그때부터였죠.”

상상 못한 경험은 그 후 2년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류 대표를 떠돌아다니게 했다. 남극부터 북극까지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

“보라카이에서 스킨스쿠버다이버 자격증 따고, 이집트 가서 마스터 따고, 그걸로 돈 벌고, 몽골여행 할 때는 한국어강사로 발음 교정해주면서 다니고, 현지에서 돈 벌면서 여행하는 요령이 차츰 생기더라고요.”

원시인류는 수십 수백만 년에 걸쳐 아프리카 대륙으로부터 시작해 끝없이 떠돌아다니며 삶의 터전을 마련해 왔다. 인간은 호모 비안스(Homo Vians: 여행하는 인간)인 것이다. 일주일에 3일은 서울지사에 다니고, 나머지 3일은 춘천본사에서 생활. 한 달에 한 번은 중국출장을 가는 그는 여전히 호모 비안스적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여행 후 조금은 ‘무모(?)’해졌다는 그는 여행사에 취업해 5년 후 창업하기로 결심한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주변에 좋은 능력을 가진 분들이 많아’ 비교적 순조롭게 자신의 목표를 이뤘다며 그는 공을 주변에 돌린다.

“처음 창업 당시 몇몇 분들과 인천의 한 봉제공장에서 시작했어요. 서울의 배화여자대학 창업지원센터에서 기틀 잡고 1년 지나면서부터 사업이 자리 잡히기 시작했죠. 창업멤버들이 자회사로 나가고 만 4년 정도 되면서 회사규모가 어느 정도 안정궤도에 올라섰습니다.”

류 대표의 회사에는 ‘실장님’으로 대표되는 드라마 남자주인공이 없다. 다시 말해 직급과 직책을 두지 않는다. 호칭은 다만 닉네임으로 불릴 뿐이다.
“나이나 직급에 상관없이 관계의 수평이 이뤄졌을 때, 20대가 보여주는 시너지는 생각보다 굉장합니다. 밖에서는 40대 정도 되면 관리자급이잖아요. 여기서는 입으로 근무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계속 자기 증명을 해가면서 일하는 곳이 알플레이죠.”

조직 자체가 자유로워야 생각도 창의적이 된다는 것이 그의 경영수칙이다. 물론 서열정리가 굳이 필요치 않다는 그의 생각이 정착되기까지 근 2년여의 시간이 걸렸단다.

“저희 회사는 출퇴근 자율에 주 4일제인데요. 주니어 1년차까지만 주 5일 금요일까지 근무합니다. 한 1년 정도 있으면 어디 가서든 자기 사업을 할 수 있게 단련을 받게 되는 거죠.”
팀 리더는 있지만 리더들이 필터링을 하지 않고 매주 목요일 구성원 전원이 모여 이야기 하는 곳. 한 가지 기획안이 나오면 100% 찬성이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회의하는 곳. 모두를 설득할 수 있어야 진정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회사의 대표가 하는 일은 구성원들의 최대치를 끌어내는 것이라고 봅니다. 회사의 가치도 거기에 있고요. 여기는 90% 이상 강원도 멤버인데,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을 베스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경북 안동이 고향이라는 류 대표는 대학 말고는 연고가 거의 없는 춘천에 ‘미쳤다’라고 고백할 만큼 애정이 깊다. 정체돼 있는 춘천이라는 곳을 먼저 문화예술 쪽으로 디자인해보고 싶어 한다.

그의 명함 한 귀퉁이에는 “We play revolutions”라는 문장이 있다. ‘큰 변화를 즐기면서 사람을 이롭게 하는 디자인을 만들어 보자’는 그의 모토를 읽을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그가 디자인하는 춘천이 어떤 모습일지 자못 궁금하다.

김정운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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