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에게 술 한 잔 사주는 것이 꿈”

우리나라에서 예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배고픔을 실천하는 일이라는 말이 있다. 하물며 가난한 예술인의 대명사라는 연극인으로, 그것도 지역에서 연극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부부라면 어떨까? 춘천을 무대로 그 어려운 길을 걸어온 부부 연극인을 만나다는 사실에 묘한 긴장감이 생겼다.
연극인 양흥주(46)·전은주(38) 부부. 이들은 춘천을 무대로 살아가는 전형적인 가난한 예술인이다. 양 씨는 1989년 고등학교 3학년 때 춘천지역 학생연합체인 청소년 극회 ‘이엉’의 6기 단원으로 테네시 윌리암스의 ‘유리 동물원’에서 연기를 시작하면서 전업 연극인의 길을 걷게 됐다. 그 후 1990년 ‘불감증’을 시작으로 수없이 많은 작품에 출연한 중견 연기자다.

<6월 26일>에서 열연 중인 양흥주 씨

칠수와 만수’, ‘금따는 콩밭’, ‘늙은 도둑이야기’ 등 춘천지역에서 연극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이 떠올리는 거의 모든 연극이 그의 작품이다. 강원대학교 환경학과를 졸업한 양 씨는 연극인과 직장인을 병행하다 1999년 이후에는 감정평가사로서 연봉 3천만원이 넘는 번듯한 직장인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는 2010년 10여년의 직장생활을 접고 본격적으로 가난한 예술가의 길을 선택했다. 아내인 전은주 배우의 응원이 있었지만 상당히 힘든 결정이었다. 본격적으로 가난한 생활에 들어섰지만 마음만은 좋다는 양흥주 배우. 가난한 생활에 대해 아내인 전 씨는 환하게 웃지만 가슴에 남은 아픔이 오히려 더 과장스런 웃음으로 나타남을 느끼게 된다.
 
<전명출 평전>에서 열연 중인 전은주 씨

아내인 전은주 배우가 연극인의 길을 걷게 된 동기는 더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때 연극 한 편 본 적이 없었던 전 씨는 남춘천중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연극반에 들어가게 되면서 지금까지 연극인의 삶을 이어오고 있다. 이후 유봉여고를 다니며 ‘넋두리’ 라는 동아리에서 연극을 했고, 졸업과 동시에 극단 ‘굴레’에 들어가 활동을 했다.

극단 굴레에서 3년여 간 활동을 하던 23살, 당시 ‘연극사회’에서 공연을 하던 양 씨가 ‘칠수와 만수’를 통해 전국연극제에서 금상과 연기상을 받으면서 지금은 사라진 시립문화회관에서 앙코르 공연을 하게 됐다. 전 씨는 그 공연을 통해 연기를 너무 잘하는 선배 배우를 동경하게 됐고, 굴레에서 공연한 ‘땡볕’을 함께 하면서 호감을 가지게 됐다. 그런 배경으로 2002년 ‘언챙이 곡마단’을 함께 하면서 같은 해결혼에 이르게 됐다.

연극인 부부로서 살아가는 어려움은 ‘일이 일정치 않으며 수입도 일정치 않다’는 것이다. 선택을 받지 않으면 일이 없는 직업이다 보니 불안하고 조급함이 있다. 불안감이나 어려움을 극복하기가 사실 쉽지 않다고 양 씨는 솔직하게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활동할 때 일이 들어오지 않으면 불안감이 커진다. 그럴 때 그는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며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해 간다.

양 씨는 40살인 2010년 직장을 그만두었다. 인생의 터닝포인트에서 연극인으로서의 일생을 걸게 된 것이다. 사표를 내겠다는 남편의 말에 아내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전 씨는 지금은 당시의 판단이 옳았다고 말한다.

부부 연극인의 꿈은 무엇일까? 양 씨는 “연기자로 남고 싶다”고 한다. “무대가 아니더라도 길 위든 어느 공간이든 아무런 세트도 없고 조명도 없는 상황에서 모두를 공감시킬 수 있는 마치 광대와 같은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아내인 전 씨는 “연기를 잘한다가 아니라 한 인물을 진실되게 표현하고 싶다”고 말한다. 춘천이 기반이지만 연기를 위해서라면 어느 곳이나 간다는 부부 연극인. 그들은 춘천을 떠나지 못하는 마음을 가슴에 담아두고 산다. 후일 후배들에게 술 한 잔 사주는 것이 이들 부부 배우의 소박한 꿈이다.

얼마 전 개봉한 ‘철원기행’이라는 영화에도 출연한 바 있는 양흥주 배우는 꽤 여러 편의 영화에도 출연했다. 부부는 여덟 살 차이의 선후배이자 부부로서 평생의 동지로 살고 있다. 척박한 공연 환경에서 평생의 동반자로 연극인의 외길을 걷고 있는 양흥주·전은주 부부 배우가 언젠가는 부부만의 연기로 관객들 앞에 나설 날을 기대해 본다.

오동철 시민기자


양흥주·전은주 부부 프로필

전은주는 ‘금 따는 콩밭’, ‘하녀들’, ‘산골’,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명랑시골 로맨스 동백꽃’, ‘허난설헌’, ‘이수일과 심순애’, ‘홍도야 우지마라’, ‘전명출 평전’ 외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고, ▲2004 강원연극제 우수연기상 ▲2008 강원도연극협회 올해의 배우상 ▲2009 강원 연극제 최우수연기상 ▲2010 춘천연극예술상 ▲2011 강원연극제 우수연기상 ▲2015 강원연극제 우수연기상 ▲2015 전국연극제 연기상 등을 수상했다.
양흥주는 1990년 ‘불감증’을 시작으로 ‘산불’, ‘나발을 불었다’, ‘칠산리’, ‘늙은 도둑 이야기’, ‘오장군의 발톱’, ‘칠수와 만수’, ‘금 따는 콩밭’, ‘총각과 맹꽁이’, ‘이수일과 심순애’, ‘산골’, ‘귀환’, ‘봄·봄’, ‘허난설헌’, ‘전명출 평전’ 등 수십 편에 출연해, ▲1997년 제14회 강원연극제 연기상 ▲2001년 제19회 전국연극제 연기상 ▲2010년 강원 연극제 우수연기자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연극배우협회 강원도 지회장과 극단 연극사회 대표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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