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쌀을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부른다. 자라고 있는 동안은 벼라 부르고, 그 열매는 나락이라고 하며, 도정을 하면 쌀, 상에 올라져 있으면 밥이라고 한다. 밥을 먹었다는 표현은 쌀로 지은 밥을 먹었다는 의미다. 고기를 배불리 먹었다고 밥을 먹었다고 하지는 않는다.

벼는 100여개 국가에서 재배되고 있지만, 아시아 지역이 전체 쌀 생산의 90% 정도를 생산하고 있다. 또한 전 세계 인구의 40% 정도가 주식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주식으로 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단백질의 1/4 정도를 쌀에서 섭취하고 있다.

쌀은 세계 5대 작물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작물로 우리나라 역시 중국만큼이나 역사가 깊어 밥이 주식으로 등장한 것은 쌀농사가 일반화된 삼국시대부터다. 쌀의 한자어를 나타내는 쌀 미(米)는 八과 八이 합쳐진 것으로 볍씨가 쌀이 되기까지 88번의 손길이 간다는 의미로 그만큼 공을 들였다는 뜻이다. 이렇게 힘든 작물이 왜 오랫동안 재배되었을까?

우선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높다. 다른 작물에 비해 칼로리가 높아, 방귀 한 번 뀌면 허전해지는 보리밥과는 다르고, 먹어봤자 속이 편치 않은 밀가루 음식과는 차원이 다르다. 거기다 벼를 재배하는 논의 공익적 기능도 탁월하다. 우선 비가 집중적으로 많이 내리는 장마철에는 논이 거대한 저수지와 같은 홍수조절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벼는 볏짚과 생산한 낟알 무게만큼이나 공기정화 기능을 하고, 논물은 자연적 냉각기능을 발휘하며 땅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로 순환된다. 이를 경제적 가치를 환산해보면 쌀과 볏짚 등의 수확물을 통해서 얻어지는 이익보다 3~4배가 넘는 것으로 검증되고 있다.

쌀로 지은 밥은 한식의 기본이자 핵심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 속이 비면 어깨가 내려앉고 등이 절로 굽는다. 뱃심 두둑해지려면 무엇보다도 끈기 있는 밥을 먹어야 한다고 믿는 정 많은 한국인들은 기운 없이 축 처진 사람에게 ‘밥은 먹었니?’ 라는 인사말로 위로를 건넨다.

‘밥맛’ 또한 무시할 수 없어 맛있는 밥이면 소소한 밑반찬만으로도 한 그릇 뚝딱 해치운다. 밥을 중심으로 한 식습관은 여러 가지 식품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게 하고, 특히 된장이나 간장, 김치 등의 발효식품과 식물성 식품의 섭취량을 높게 유지해줌으로써 우리 심성과 건강을 지켜주는 역할을 해왔다. 세계가 한식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TV를 켜면 맛집을 소개하거나 요리를 가르쳐 주는 프로그램이 넘쳐나지만 정작 밥은 홀대를 받는다. 1인당 쌀 소비량은 1980년 132kg에서 2014년 65kg으로 하루에 두 공기의 밥도 채 먹지 않고 있다. ‘한 솥밥 먹는’ 식구도 가족 중심에서 1인가구의 증가로 ‘혼밥족’이란 신조어도 태어났다. 이제 음식은 단순히 먹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소통의 수단, 사회를 들여다보는 수단이 되고 있다.

하지만 형태는 바뀌었어도 여전히 밥솥으로 한 밥을 먹고 나서야 하루의 건강을 유지하는 우리 식생활은 달라지지 않았으며, 밥에 담긴 전통적 정서 역시 아직은 우리 음식문화의 원형질로 남아있다. 우리네 밥상의 마지막 보루인 밥을 더욱 더 사랑할 때다.

채성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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